남아시아서 영향력 확대 나선 베이징, 뉴델리 '포위' 전략 본격화

방글라데시에 집중 공세…유누스 정부 출범 후 회담 급증
FT 조사 결과, 중국 관리들은 무함마드 유누스 임시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8월부터 14개월 동안 방글라데시 정치인들과 최소 7차례 고위급 회담을 했다. 이는 인도의 오랜 동맹이었던 셰이크 하시나 전 총리의 지난 5년 임기 때 8차례와 비슷한 수준이다.
중국의 외교 공세는 방글라데시 이슬람 정당 자마트-에-이슬라미까지 뻗었다. 이 당의 고위 인사인 시예드 압둘라 무함마드 타헤르는 올해 2월 베이징을 찾아 중국 공산당 지도부를 만났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이 자마트 고위 지도자를 부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정부 고위 인사처럼 대접받았다"고 말했다.
유누스 총리는 올해 3월 중국을 국빈 방문해 시진핑 주석을 만났다. 이는 그의 첫 해외 국빈 방문이었다. 반면 유누스 총리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올해 4월 방콕 지역 회의 부대 행사에서 단 한 차례 짧게 만났을 뿐이다. 샤피쿨 알람 유누스 총리 대변인은 "지난해 12월 인도에 양자 방문을 요청했지만, 긍정적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파키스탄·네팔·스리랑카로 확대하는 베이징 네트워크
중국의 외교 활동은 다른 남아시아 국가들에서도 활발하다. 중국 관리들은 올해 파키스탄 측과 22차례 고위급 회담을 했으며, 이는 지난해 30차례와 비슷한 수준이다. 네팔과는 올해 최소 6차례, 스리랑카와는 최소 5차례 고위급 회담을 했다.
특히 올해 6월 중국 쿤밍에서 열린 방글라데시-중국-파키스탄 3자 회담은 뉴델리에 큰 우려를 안겼다. 이 회담에서 세 나라는 투자부터 인프라까지 모든 분야에서 협력하고 공동 작업반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이샤크 다르 파키스탄 외무장관은 지난 8월 기자들에게 "스리랑카도 이 협력체에 들어올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글로벌타임스에 기고한 류종이 학자는 "빠르게 바뀌는 국제 환경 속에서 남아시아와 인도양 지역은 구조를 다시 짜고 있다"고 분석했다.
무기 지원으로 드러난 전략 의도
중국의 남아시아 공략은 무기 지원으로도 나타났다. 올해 5월 인도-파키스탄 국경 충돌에서 중국산 항공기와 미사일, 정보 공유가 파키스탄을 도와 인도 전투기 최대 6대를 격추했다고 이슬라마바드 관리들이 밝혔다.
지난 8월 파키스탄군은 중국산 Z-10ME 공격 헬기를 처음 들여온 외국 군대가 됐다. 같은 달 중국조선해양국제공사는 파키스탄용 한고르급 디젤-전기 잠수함 8척 가운데 3번째를 진수했다. 파키스탄 공군은 오는 2026년 말까지 중국산 J-35 스텔스 전투기 30여 대를 들여오는 방안도 협의하고 있다.
방글라데시도 파키스탄 공군이 지난 5월 인도 전투기를 격추할 때 쓴 것과 같은 중국산 J-10 비거러스 드래곤 전투기를 사들이는 방안을 중국과 논의하고 있다고 유누스 측 인사들이 전했다.
윤선 스팀슨센터 중국 프로그램 국장은 "중국의 무기 인도는 인도-파키스탄 관계에서 더 많은 균형을 가져오려는 노력으로 파키스탄의 역량을 강화한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관세로 약해진 인도, 중국에 기회 제공
인도가 중국의 공세에 더욱 약해진 배경에는 미국과의 관계 악화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인도산 수입품에 50% 관세를 매겼고, 지난달에는 인도 노동자와 기술 기업들이 널리 쓰는 H-1B 비자에 10만 달러(약 1억 4100만 원) 수수료를 신설했다.
싱가포르 국립대 남아시아연구소의 아미트 란잔 연구원은 "인도가 지금 강한 위치가 아니기 때문에 중국은 이를 이용할 좋은 때라고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예일대 남아시아학과의 수샨트 싱 강사는 "인도는 주변에 적대 세력들이 줄을 서고 있다는 두려움이 분명히 있다"며 "인도가 이를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경제 협력 카드로 영향력 넓혀
중국의 남아시아 공략은 일대일로 인프라 프로그램을 통한 투자 약속도 포함한다. 방글라데시는 중국과 함께 인도 국경 인근 전략 요충지인 티스타강 지역 개발 사업을 재개했으며, 중국이 방글라데시에서 두 번째로 큰 항구인 몽글라항을 현대화하고 확장하도록 허용했다.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3자 회담에서 "중국은 방글라데시 제품에 무관세를 적용해 발전 기회를 만들고 있다"며 "반면 미국은 35% 관세를 매기는데 이는 불합리하고 비윤리적"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방글라데시 관세는 이후 20%로 내렸다.
다카 소재 정책대화센터의 콘다커 골람 모아젬 연구국장은 "방글라데시는 항상 중국과 긍정적 경제 관계를 유지했다"며 "하지만 바뀌고 있는 것은 정치 관계로, 인도에서 멀어지고 중국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의 화해도 돕고 있다. 두 나라는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때 맞섰던 사이다. 올해 2월 두 나라는 50년 만에 직접 무역 관계를 다시 열었고, 지난 8월 다르 파키스탄 외무장관과 잠 카말 칸 상무장관이 다카를 찾았다. 이는 10년 넘게 없었던 고위급 방문이었다.
하지만 방글라데시평화안보연구소의 샤프카트 무니르 선임연구원은 "파키스탄과 다시 관계를 맺으려는 노력이 있다"면서도 "1971년 문제를 관계 개선을 위해 제쳐둘 수 없다는 데 폭넓은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올해 4월 다카에서 열린 양국 외교 차관 회담에서 방글라데시는 파키스탄에 1971년 군의 만행에 대한 사과와 수십억 달러 배상금을 요구했다.
중국 외교부는 "남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의 가까운 이웃"이라며 "포용, 안보, 번영을 바탕으로 한 공동의 미래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또 "어떤 나라와의 우호 관계 발전도 제3자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인도와 중국은 지난 8월 관계 개선을 모색했다. 왕이 외교부장이 뉴델리를 찾았고, 10일 뒤 모디 총리가 7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을 찾아 상하이협력기구 회의에 참석했다. 하지만 스팀슨센터의 대니얼 마키 선임연구원은 "이는 일련의 활동, 특히 무역과 투자에서 앞으로 나아갈 방법을 찾으려는 전술적이고 계산된 바람"이라며 "인도가 중국에 대한 생각과 걱정을 근본적으로 다시 보는 것이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학생 혁명을 이끌고 국민시민당을 만든 나히드 이슬람 대표는 올해 8월 베이징을 찾았다. 그는 "중국에게 방글라데시는 새로운 정치 재편의 일부"라며 "베이징은 훨씬 앞을 내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슬람 대표는 "중국이 우리를 우선시한 이유는 우리가 젊은 정치 세력을 대표하고 방글라데시의 미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