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회복세지만 중기 성장률 3%로 둔화…공공부채도 '빨간불'
"AI·기술주 과열, 25년 전 닷컴 버블 수준 근접"…금융시장 급락 우려
"AI·기술주 과열, 25년 전 닷컴 버블 수준 근접"…금융시장 급락 우려

국제통화기금(IMF)의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8일(현지시각) 워싱턴DC에서 열린 밀켄연구소 주최 행사에서 한 연설에서 세계 경제를 이같이 진단했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모든 징후는 세계 경제가 여러 충격으로 인한 극심한 압박을 전반적으로 잘 견뎌냈음을 보여준다"고 말문을 열었다. 올해 초 시장을 지배한 비관적인 경기 침체 예측이 빗나갔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는 "많은 경제가 우려했던 것보다는 나았지만, 우리가 필요로 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말로 현재 처지를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실제로 IMF는 세계 경제가 극단적인 무역 전쟁의 파국은 피해갔다고 평가했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세계는 지금까지 보복 관세가 오가는 무역 전쟁으로의 추락을 피했으나 개방성은 큰 타격을 입었다"고 지적했다. 미중 갈등이 불러온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세계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기조 속에서 세계 경제의 핵심 동력이었던 중국 경제가 "꾸준히 둔화"하고 있는 점은 구조적 위험 요인이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 3.7%에 이르던 세계의 중기 성장률이 이제는 3% 수준까지 떨어진 배경에는 중국의 성장 둔화가 자리하고 있다. 앞으로 세계 경제 성장률 역시 2025년 3.0%, 2026년 3.1% 성장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회복력 뒤에 숨은 '금융 시장' 시한폭탄
그러나 실물 경제의 겉보기 회복세와 달리 더 심각한 경고음은 금융 시장에서 울렸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특정 시장을 지목하지는 않으면서도 현재의 "완화한 금융 환경"이 곳곳의 위험 신호를 가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인공지능(AI)과 기술주 열풍에 힘입어 이달 들어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운 미국 증시가 대표적이다. 그는 "오늘날의 가치 평가는 25년 전 인터넷 붐 당시의 강세장에서 보았던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고 직접 경고하며, 현재 자산 시장이 기초 체력보다는 과도한 낙관론에 기대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만약 "급격한 조정이 일어나면, 긴축 금융 환경은 세계 성장을 끌어내리고 취약성을 드러내며, 특히 개발도상국이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현재의 완화한 금융 환경이 "고용 창출 둔화를 포함한 일부 둔화 흐름을 가리고는 있지만 막지는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같은 맥락이다.
전통적 안전자산인 금값이 온스당 4000달러를 넘어섰고, 워싱턴의 연방정부 업무정지(셧다운)가 현실화된 것 역시 시장의 깊은 불안감을 드러낸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이러한 금 수요가 "세계의 회복력이 아직 완전히 시험받지 않았다는 신호"라며, 현재 통화용 금 보유량이 전 세계 공식 외환보유고의 20%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겉보기의 안정과 달리, 시장 참여자들은 잠재적 충격에 대비해 안전자산으로 몰려가고 있는 셈이다.
IMF의 처방…미·중·유럽에 각기 다른 해법 제시
이러한 복합 위기를 풀기 위해 IMF는 세계 경제를 이끄는 주요 3개 축인 미국, 중국, 유럽연합(EU)에 맞춤형 정책 처방을 제시했다. 불가리아 출신인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유럽을 향해 경쟁력을 높이고 "미국의 민간 부문 역동성을 따라잡기 위해" 필요한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할 '단일 시장 책임자' 임명을 생각해보라고 촉구했다.
세계 2위 경제 대국인 중국에는 "재정-구조 개혁 꾸러미"로 민간 소비를 크게 늘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한 "새로운 성장 모델로 바꾸고 경제를 부양해야" 하며, 이를 통해 "재균형을 막는 최근의 실질 환율 하락에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고질적인 연방 재정 적자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재량 지출을 넘어서는 꾸준한 조치'를 포함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과 함께, 퇴직 연금 같은 상품에 대한 세금 우대 조치 확대를 통해 가계 저축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연설을 마무리하며 세계 경제의 예상 밖 굳건함 이면에는 수많은 위험과 불확실성이 여전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각국 정책 책임자들이 자만하지 말고 신중하며 발 빠른 대응에 나설 것을 거듭 촉구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