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디코드] TSMC, 잇단 '산재 사망'…유가족 "젠슨 황, '피의 칩' 외면 말라"

'대만의 호국신산(護國神山)'으로 불리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가 잇따른 산업 재해 사망 사고 탓에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TSMC는 '국가대표급 반도체 기업'으로 평가받지만, 최근 신공장 건설 현장에서는 추락, 감전, 물체 낙하 등 사고가 잇따라 단기간에 1명이 숨지고 다수의 중상자가 발생했다. 심지어 지난 6월에는 엔지니어가 과로 때문에 돌연사한 사례까지 나왔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가 참석한 것으로 알려진 11월 8일(현지시각) 사내 운동회 당일, 산업 재해 피해 유가족과 노동단체들이 행사장 입구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고 라인 투데이가 보도했다. 이들은 "TSMC의 산업 안전 약속은 공염불에 그쳤다"고 규탄하며, 젠슨 황 CEO에게도 "대만 노동자들의 피와 땀 위에 만들어진 칩"이라며 직접 책임지고 관리·감독할 것을 촉구했다.

업무상해피해자협회, RCA직원관리지원협회, TSMC 사망자 유가족 등은 공동 성명을 내고, "TSMC 공사현장의 희생자를 애도하고, 노동자의 인권을 지켜달라"는 공개 메시지를 내걸고, TSMC 대표에게 항의 진정서를 전달했다.


이들 단체에 따르면, 지난 6월 3일 TSMC 사망자 유가족 황(黃)씨 등이 주주총회 현장을 찾아 TSMC의 웨이저자(魏哲家) 이사회 의장에게 직접 진정서를 전달했다. 당시 사망자는 과로가 원인인 돌연사로 알려졌으며, 유가족은 개선을 요청했다. 당시 웨이 의장은 "산업 안전을 철저히 하고 피해 가족을 위로하겠다"며 "단순히 돈으로만 일을 처리하지 않고 국제 기준에 맞는 현장 안전제도를 도입해 시공 안전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황씨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호소한 바 있다.
그러나 노동단체들은 "TSMC의 약속은 5개월이 지나도록 이행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오히려 TSMC 이사회가 최근 사고를 두고 "책임을 피하려는 태도"를 보였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최근 자이(嘉義) 공장에서 추락, 감전, 붕괴 사고가 잇따라 발생해 1명이 숨지고 여러 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 9월에는 TSMC 18공장(Fab 18)에서 또다시 근로자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유가족 황씨는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다. 계속 사고가 터지는데, TSMC는 완전히 시늉만 하고 있다"며 "형식적으로 얼버무릴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단체들은 TSMC 경영진을 향해 "웨이 의장이 주주들 앞에서 한 약속은 빈말이었는가?"라며 "지난 5개월간 어떤 실질적 개선을 했고, 산업 안전 개혁을 진정으로 실행했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들은 TSMC가 약속한 △국제 기준에 맞는 현장 안전제도 도입 △실질적 직업재해 피해자 보상 및 가족 위로 △근로조건 개선 및 과로 방지 대책 이행 △대외적 투명성 강화 등이 실제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운동회는 '근로자 건강 챙기기'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는 잇따른 재해와 과로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하며, "TSMC의 '개선 의지'가 일시적 발표에 그치지 않음을 행동으로 보여 달라"고 촉구했다.

특히 이들은 TSMC의 최대 고객사인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를 직접 겨냥했다. 협력사로 생산을 위탁한 젠슨 황 CEO를 향해 "당신의 AI 및 GPU 제품이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 위에 만들어지고 있다면, 이를 그냥 수용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며, "TSMC가 산업 안전과 노동자 건강을 이행하도록 어떻게 독려할 것인가?"라며 직접 책임지고 관리·감독할 것을 요구하는 공개 발언까지 했다.

노동단체들은 운동회 당일 TSMC 대표에게 진정서를 전달하고, 산업 재해 근로자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노동 안전과 인권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호소했다.

노동계는 이번 행동을 기회로 TSMC와 IT산업 전반의 산재·과로·직업 안전 관리가 실제로 개선되길 촉구했다. 이번 TSMC의 논란은 단순 산업재해를 넘어, 국제 반도체 공급망의 사회적 책임과 기업의 인권·안전 경영, 또 노동자 보호 체계의 투명성 문제가 중요한 시험대에 올랐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