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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스테이블코인법, 美 달러 패권 강화 도구로 전락…외국 발행사 규제 복종 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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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스테이블코인법, 美 달러 패권 강화 도구로 전락…외국 발행사 규제 복종 강요

2500억 달러 시장 장악 나선 美, 재무부가 외국 규제 승인·철회 권한 보유…한국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본격 추진
스테이블 코인. 이미지=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스테이블 코인. 이미지=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암호화폐 친화 정책을 내세우며 서명한 스테이블코인 규제법이 실제로는 미국 달러 패권과 규제 주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밖 암호화폐 업계가 기대했던 개방 규제와 달리 미국 우선주의를 관철하는 통제 장치라는 지적이다.

배런스는 지난 19(현지시간) 하워드 피셔·로버트 맥팔레인 변호사가 기고한 분석기사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의 완화된 규제 분위기는 국제 암호화폐 거래자들을 위한 화해의 손길이 아니라 미국 글로벌 지배력을 주장하는 또 다른 도구"라고 진단했다.

달러 패권 유지 위한 스테이블코인 규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18일 서명한 지니어스법(Genius Act·미국 스테이블코인을 위한 국가 혁신 수립 및 안내법)은 결제나 송금 수단으로 사용되는 디지털 자산인 스테이블코인 규제 체계를 마련한 법안이다. 미국 상원은 지난 6176830으로, 하원은 717308122로 각각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의 핵심은 달러 패권 확보에 있다. 법안에 따르면 외국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미국에서 스테이블코인을 판매하려면 미국 금융기관에 미국 고객들의 유동성 수요를 충족할 만큼 충분한 준비금을 보유해야 한다. 이 준비금은 필연적으로 미국 국채 형태를 띠게 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러한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백악관이 발표한 팩트시트는 "스테이블코인이 세계 기축통화로서 미국 달러의 지속적인 글로벌 지배력을 보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법에 따라 스테이블코인이 미국 자산에 연동돼야 하므로 국채 수요가 증가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대다수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달러 표시 자산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의도는 이런 상황이 계속 유지되도록 보장하는 데 있다는 분석이다.

외국 규제체제 승인·철회 권한 보유한 미국


달러 지배력뿐 아니라 미국 규제 감독의 우위 확보도 이 법안의 핵심이다. 외국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미국인에게 스테이블코인을 판매하려면 지니어스법에 따라 미국 법률 체제에 광범위하게 복종해야 한다. 외국 발행사들은 미국 감독기관에 등록해야 하며, 본국에서 미국 재무장관이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미국과 비교 가능한 수준의 규제·감독 체제를 갖춰야 한다.

지니어스법에 따르면 재무부가 외국 규제체제가 비교 가능한 규제 구조를 갖췄는지 판단하는 시스템을 수립하기 위해 더 상세한 규칙을 제정하도록 돼 있다. 이는 사실상 미국 정부에 외국 규제 방식에 대한 거부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외국 체제들은 미국의 요구에 부합하는 법적 구조를 채택해야 한다.
더욱이 재무부 승인은 영구적이지 않다. 법안은 명시적으로 지속적 검토를 요구한다. "재무장관이 해당 외국의 규제체제가 더 이상 이 법에 따라 수립된 요건과 비교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할 경우" 승인이 철회될 수 있다.

아시아·아프리카 중심 성장하는 암호화폐 시장


암호화폐 경제는 미국 밖에서, 특히 잘 정비된 금융 시스템이 없는 지역에서 상당한 성장을 경험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중남미에서 암호화폐 채택이 가장 많이 늘어났으며, 미국을 훨씬 앞질렀다. 암호화폐 투자자 가운데 약 60%가 아시아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블록체인 기업 컨센시스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나이지리아(84%), 남아프리카공화국(66%), 베트남(60%), 필리핀(54%), 인도(50%) 등 신흥시장 응답자 절반 이상이 지난해 암호화폐 지갑을 보유하고 있었다. 반면 일본, 아르헨티나, 캐나다,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에서는 3명 중 1명도 디지털 자산을 구매한 적이 없었다.

스테이블코인 시장 규모는 약 2500억 달러(367조 원)로 평가된다. 지난해 스테이블코인 거래량은 83000억 달러(12190조 원)에 달해 같은 기간 비자 결제액 99000억 달러(14500조 원)에 근접했다.

미국 패권 유지 의도에 실망하는 글로벌 업계


미국 국내 사안이 이들 국가의 법적 구조 수정을 요구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미국 당국의 재검토가 이뤄져야 할까. 이 요건은 법안에 명시돼 있다.

게리 겐슬러 전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의 이른바 암호화폐 전쟁이 끝나면 더 개방적이고 평등한 시스템을 기대했던 외국 암호화폐 업계는 실망할 수 있다. 아랍에미리트(UAE)의 지불토큰서비스 규제와 유럽연합(EU)의 암호자산시장 제도가 지니어스법보다 앞서 시행됐으며, 다른 지역들도 암호화폐 중심지로 자리매김하려 시도하는 상황에서 미국 규제 당국의 규제 주권에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미국이 글로벌 디지털 자산 시장에 동등한 참여자로 참여하려는 게 아니라, 미국 달러와 미국 규제를 기본 글로벌 표준으로 삼는 패권국으로 군림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글로벌 경제의 모든 측면에서 미국 시장을 중심에 두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암호화폐도 예외가 아니라는 분석이다.

한국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추진


한국도 이런 글로벌 흐름 속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를 본격 추진하고 있다. 국내 20~50세 인구의 27%가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있으며, 업비트·빗썸 등 국내 5대 거래소가 보유한 암호화폐 총액은 100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6월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발의하면서 제도화 논의가 본격화됐다. 법안은 자기자본 5억 원 이상 주식회사에 정부 인가를 거쳐 발행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한국은행은 비은행권의 무분별한 발행을 우려하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필요하고 발행에 반대하지 않지만, 비은행 기관 발행 시 통화정책 실효성을 저해하고 유동성 부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발행되면 달러 수요가 늘어나 외환 관리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미국 지니어스법으로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문이 빠르게 열리는 상황에서 한국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형구 한양대 교수는 "미국이 규제를 철폐하면서 새롭게 열리는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기회의 문은 빠른 속도로 닫히고 있다""네이버, 카카오, 삼성전자 등 플랫폼 및 산업과 연결하면 원화 스테이블코인도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국내 주요 시중은행들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한 공동 연구를 추진 중이다. KB국민·신한·우리·NH농협·IBK기업·Sh수협은행과 금융결제원은 지난 4월 스테이블코인 분과를 신설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미국의 달러 스테이블코인 주도권 강화가 한국 등 비기축통화 국가들의 통화 주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육성이 통화 주권 수호 차원에서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다만 글로벌 시장에서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90% 이상을 점유하는 상황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경쟁력 확보는 쉽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