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델리티 보고서, 미국 근로자 4명 중 1명 분산 계좌 방치… RMD 미납 시 25% 세금 폭탄
시장 침체기 강제 매도가 '수익률 변동 위험'으로 번지면 회복 불가능
시장 침체기 강제 매도가 '수익률 변동 위험'으로 번지면 회복 불가능
이미지 확대보기배런스가 19일(현지시간) 보도한 피델리티(Fidelity)의 '2026년 은퇴 계획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퇴직연금 보유자의 4분의 1이 여러 직장을 거치며 흩어진 계좌를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계좌를 방치하면 73세부터 시작되는 의무 최소 분배금(Required Minimum Distribution·RMD) 계산이 어긋나고, 기한 내 인출하지 못하면 미인출액의 25%에 달하는 소비세가 부과된다. 배런스는 같은 날 별도 기고를 통해 시장 침체기에 은퇴를 맞이하는 사람들을 위한 재정 전략 7가지도 함께 제시했다. 핵심 메시지는 명확하다. "계좌는 지금 당장 합쳐라. 그리고 은퇴 초기 5~10년은 포트폴리오에서 최대한 돈을 빼지 마라."
이미지 확대보기25%짜리 청구서, 흩어진 계좌가 만드는 세금 함정
피델리티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근로자들은 경력 기간 동안 평균 6곳의 고용주를 거친다. 이직할 때마다 옛 직장의 401(k) 계좌를 새 직장이나 개인 퇴직 계좌(IRA)로 옮기지 않고 그냥 두는 사람들이 상당수다. 보고서는 그 이유로 관성, 목돈 이동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여러 회사에 나눠두면 분산 투자가 된다는 오해를 꼽았다.
인출 기한(통상 연말)을 어기거나 금액이 부족하면 미인출 금액의 25%를 소비세로 내야 한다. 2년 안에 스스로 오류를 바로잡더라도 10% 소비세가 부과된다. 뱅가드(Vanguard) 조사 결과, 지난해 RMD를 제때 인출하지 못한 뱅가드 IRA 투자자가 전체의 약 7%에 달했으며, 이들이 낸 평균 세금 벌금은 1,100달러(약 161만 원)를 웃돌았다.
"한 곳에 모으면 자동화 가능"… 로스 전환은 주가 하락기가 기회
피델리티 퇴직연금 분배팀 책임자 샴 강글라니(Sham Ganglani)는 "모든 자산이 한 곳에 있어야 RMD 자동화 서비스가 제 기능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73세가 되면 원하는 시점에 인출 계획을 미리 설정해두면 시스템이 매달 적정 금액을 자동 이체하고, 해마다 달라지는 인출 기준액도 알아서 갱신한다"며 "규정 위반에 대한 불안 없이 편리하게 관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계좌 통합 외에 배런스가 주목한 전략이 로스(Roth) IRA 전환이다. 기존 IRA에서 로스 IRA로 자금을 옮기면 전환 금액에 그해 소득세가 붙는다. 그런데 주가가 하락해 계좌 잔액이 줄어든 시점에 전환하면 과세 기준 금액이 낮아진다. 이후 로스 계좌 안에서 자산 가치가 되살아나면 그 수익은 비과세다. 배런스는 "현금 여유가 있고 직장에 재직 중인 사람에게는 시장 침체기가 오히려 유리한 전환 시점"이라고 짚었다. 로스 IRA는 최초 가입자 생존 기간 동안 의무 인출 규정 자체가 없다는 점도 장점이다.
수익률 변동 위험, 은퇴 초기 하락장에서 팔면 손실이 굳는다
배런스는 이 위험을 줄이기 위한 첫 번째 수단으로 '현금 완충지대' 구축을 꼽았다. 주가가 폭락했을 때 주식을 어쩔 수 없이 파는 상황을 막으려면 최소 1~3년 치의 생활비를 현금이나 단기 채권 등 변동성이 적은 자산에 미리 따로 떼어두는 방법이다. 사회보장 급여의 조기 수령을 검토해 포트폴리오 의존도를 낮추는 것도 이 맥락에서 제시됐다.
지출 구조 재설계도 주요 전략에 포함됐다. 주거비와 식비 같은 필수 지출은 연금 등 고정 소득으로 충당하는 '소득 보장 설계'를 강화하고, 침체기에는 여행이나 취미 같은 재량 지출을 5~10% 일시적으로 줄이면 포트폴리오 수명을 크게 늘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세무 전략 측면에서는 하락장이 오히려 기회가 된다. 배런스는 자산 가치가 낮아진 시점에 로스 IRA로 전환하면 평소보다 적은 세금으로 미래의 비과세 혜택을 확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은퇴 시점을 수개월 늦추거나 파트타임으로 전환해 현금 유입을 유지하는 방법, 시장이 저점일 때 미리 정해둔 자산 배분 원칙에 따라 주식 비중을 회복하는 포트폴리오 재조정도 7가지 전략에 포함됐다.
배런스 기고문은 "연금 상품은 복잡성과 비용 탓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지만, 일시납 즉시연금(SPIA·Single Premium Immediate Annuity)은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예측 가능한 소득 흐름을 확보하는 수단으로서 특정 상황에서 유효한 선택지"라고 밝혔다.
"분산 계좌는 다각화가 아니다"… IRP 복수 계좌도 같은 함정
배런스는 여러 금융기관에 계좌를 두면 분산 투자가 된다는 통념도 정면으로 반박했다. 분산 투자는 다양한 자산을 보유함으로써 이뤄지는 것이지, 여러 증권사에 계좌를 나눠두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고 밝혔다. 미국 증권투자자보호공사(SIPC)는 계좌 유형별로 50만 달러(약 7억 5300만 원)까지 보장하는데, 주요 증권사들은 이를 훨씬 웃도는 초과 보험에 가입해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다만 현금성 자산은 예외다.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보호 한도가 예금자 한 사람 앞에 은행마다 25만 달러(약 3억 7600만 원)이므로, 그 이상을 현금으로 보유할 때는 여러 은행에 나눠 예치하는 것이 실질적인 보호 수단이 된다.
이 같은 논리는 한국의 개인형 퇴직연금(IRP)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직할 때마다 새 금융기관에 IRP 계좌를 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내 주요 금융사들이 계좌 이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해지 없이 계좌를 옮길 수 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계좌가 분산될수록 운용 현황 파악이 어려워지고, 연금 수령 시점에 세금 계산도 복잡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런스와 피델리티 데이터가 가리키는 결론은 단순하다. 노후 재정은 은퇴 당일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이전에, 그리고 은퇴 직후 처음 몇 년 동안의 판단으로 결정된다. 흩어진 계좌를 모으고, 하락장에서 팔지 않으며, 지출을 탄력적으로 조율하는 것. 거창한 투자 기술이 아니라 이 세 가지를 지켜내는 것이 노후 재정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어선이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