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실리콘 디코드] 엔비디아 '배짱 AS' 논란…"부러진 핀 쓰라니, 집 태울 셈인가"

글로벌이코노믹

[실리콘 디코드] 엔비디아 '배짱 AS' 논란…"부러진 핀 쓰라니, 집 태울 셈인가"

RTX 5080 산 지 하루 만에 안전장치 '뚝'…사측 "고객 탓" 교환 거부
4090 발화 잡겠다던 '신규 규격'도 휘청…AI가 불량 판독 의혹까지
최근 한 소비자가 구매한 직후 커넥터 고정 클립이 파손된 엔비디아 'RTX 5080' 그래픽카드 사진을 온라인에 공개했다. 엔비디아 측이 이를 '고객 과실'로 규정하며 교환을 거부하자, 전작의 발화 악몽을 기억하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안전성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레딧(Reddit) 캡처이미지 확대보기
최근 한 소비자가 구매한 직후 커넥터 고정 클립이 파손된 엔비디아 'RTX 5080' 그래픽카드 사진을 온라인에 공개했다. 엔비디아 측이 이를 '고객 과실'로 규정하며 교환을 거부하자, 전작의 발화 악몽을 기억하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안전성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레딧(Reddit) 캡처
시가총액 5조 2000억 달러(약 7600조 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자사의 최신 그래픽카드인 '지포스 RTX 5080 파운더스 에디션'의 초기 불량 대응을 두고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전원 커넥터의 핵심 안전 장치인 고정 클립이 파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엔비디아 측이 이를 '고객 유발 손상'으로 규정하며 교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해당 소비자는 엔비디아가 안전장치가 결여된 제품 사용을 강요하며 "내 집을 태우려 하고 있다"고 격분했다. 이번 사건은 엔비디아가 전작인 RTX 4090의 발화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야심 차게 도입한 신규 전원 규격 '12V-2x6'의 내구성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안전장치 '뚝'…황당한 파손


미국 IT 전문 매체 톰스 하드웨어(Tom’s Hardware)는 7일(현지 시각) 미국의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Reddit)의 'PCMR' 게시판에 올라온 한 사용자의 사례를 집중 조명했다. 지난 4일 게시된 이 글에 따르면, 해당 사용자는 RTX 5080 파운더스 에디션을 구매한 뒤 케이블을 처음으로 제거하는 과정에서 12V-2x6 커넥터의 '고정 클립'이 떨어져 나가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고정 클립은 전원 플러그를 소켓 내부에 단단히 고정시키는 닻(anchor)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단순한 부속품이 아니라, 케이블이 장력에 의해 뒤로 밀려나거나 헐거워지는 것을 방지하는 유일한 기계적 안전장치다. 엔비디아는 과거 RTX 4090 시리즈에서 발생한 광범위한 케이블 용해 및 발화 사고의 주원인을 '불완전한 체결'로 지목한 바 있다. 즉, 커넥터가 완전히 밀착되지 않을 경우 화재 위험이 급격히 증가한다는 사실을 제조사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정작 체결을 보장하는 부품의 파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이다.

"정상이다" AI가 답변했나

엔비디아 고객지원센터의 대응 과정은 논란을 더욱 키웠다. 공개된 상담 내역에 따르면, 엔비디아 측은 처음에 파손된 커넥터 사진을 보고 "사진상으로는 모든 것이 완전히 정상(totally normal)으로 보인다"며 사용해도 안전하다는 취지의 답변을 내놓았다. 그러나 사용자가 과거 커넥터 발화 사고들의 위험성을 언급하며 강력히 항의하자, 사건을 상급 부서로 이관한 뒤 최종적으로 "고객 과실에 의한 파손"이라며 보증 수리를 거부했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와 레딧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엔비디아의 고객 지원 시스템이 '인공지능(AI)'에 의존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육안으로도 명백히 고정 클립이 파손된 사진을 두고 "정상으로 보인다"고 답변한 것은 사람이 직접 검토했다면 나오기 힘든 실수라는 지적이다. 세계 최고의 AI 칩 기업이 정작 자사 고객 서비스에서는 AI의 부정확한 진단으로 소비자의 안전 우려를 묵살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다시 도지는 '4090 악몽'


이번 사건은 RTX 50 시리즈의 전원부 신뢰성에 대한 우려가 단순한 기우가 아님을 시사한다. 엔비디아는 RTX 40 시리즈의 12VHPWR 커넥터 결함을 개선하기 위해 이번 RTX 50 시리즈부터 핀의 길이를 조절하고 체결력을 강화한 '12V-2x6' 표준을 도입했다. 그러나 신규 규격 역시 내구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톰스 하드웨어에 따르면, RTX 5080의 고정 클립 파손 이슈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앞서 또 다른 레딧 사용자가 파손된 클립이 장기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지 문의하는 글을 올린 바 있으며, 전원 공급 장치(PSU) 쪽 케이블이 녹아내렸다는 신고와 최상위 모델인 RTX 5090의 커넥터 손상 사례도 산발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아직 명확한 패턴으로 굳어지지는 않았으나, 근본적인 설계 결함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제조사마다 딴판인 'AS 고무줄'

엔비디아와 파트너사들의 일관성 없는 보증 정책 또한 소비자들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RTX 4090 발화 사태 당시 엔비디아는 서드파티(제3자) 어댑터를 사용한 경우에도 RMA(수리 및 교환)를 허용하는 등 비교적 포용적인 정책을 폈다. 그러나 기판 파트너사들의 대응은 제각각이었다.

일례로 MSI는 케이블모드사의 어댑터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RMA를 거부했다가, 소비자가 상담 내역을 공개한 뒤에야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최근에는 쿨러마스터의 한 담당자가 RTX 5070 Ti 장착을 위해 "12V-2x6 플러그의 일부를 분해하라"는 위험천만한 조언을 했다가, 사측이 공식 사과하고 해당 커넥터 판매를 중단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재 문제의 RTX 5080 사용자는 "첫 번째 케이블 분리 시도에서 발생한 기계적 결함을 오남용으로 몰아가는 것은 부당하다"며 엔비디아 측에 진단 재고를 강력히 요청한 상태다. 7600조 원의 기업 가치를 자랑하는 엔비디아가 정작 소비자의 안전과 직결된 하드웨어 품질 관리와 사후 지원에서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AI 거품' 논란과 함께 하드웨어 명가로서의 신뢰도에도 금이 가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