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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트럼프 찬물에도…포스코·삼성, 美 스타트업 손잡고 '전고체'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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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트럼프 찬물에도…포스코·삼성, 美 스타트업 손잡고 '전고체' 승부수

美 연비규제 완화에 시장 위축 우려…유럽·글로벌 수요는 여전히 '견조'
팩토리얼·솔리드파워, 韓 소재 기업과 맞손…차세대 배터리 공급망 '밀월' 가속
미국 매사추세츠주(州)에 위치한 배터리 스타트업 '팩토리얼 에너지'의 전고체 배터리.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전기차 규제 완화로 시장 불확실성이 커졌지만, 미국 혁신 기업들은 포스코퓨처엠·삼성SDI 등 한국 기업과 손잡고 '꿈의 배터리'라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진=팩토리얼 에너지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매사추세츠주(州)에 위치한 배터리 스타트업 '팩토리얼 에너지'의 전고체 배터리.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전기차 규제 완화로 시장 불확실성이 커졌지만, 미국 혁신 기업들은 포스코퓨처엠·삼성SDI 등 한국 기업과 손잡고 '꿈의 배터리'라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진=팩토리얼 에너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 전기차 산업을 향해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가장 최근의 행보는 바이든 행정부 시절 설정된 기업평균연비규제(CAFE·Corporate Average Fuel Economy) 기준을 완화하겠다는 공약이다. 트럼프의 이러한 '마이웨이'식 행보에도 불구하고, 세계 전기차 산업은 미국 내 혁신 기업들의 전고체 배터리 기술 진보에 힘입어 묵묵히 전진하고 있다.

특히 포스코퓨처엠을 비롯한 한국 기업들과 미국 스타트업 간의 전략적 제휴가 이 기술 전쟁의 핵심 동력으로 부상했다. 미국 클린테크니카(CleanTechnica)의 분석을 바탕으로, 정책적 불확실성 속에서도 가열되고 있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 경쟁과 한미 기업 간의 협력 구도를 심층 분석한다.

美 정책 'U턴'…엇갈리는 시장 전망


올해 미국의 연방 에너지 정책은 급격한 'U턴'을 겪으며 전기차 판매 모멘텀을 혼란에 빠뜨렸다.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원 사격 아래 지난 여름 7500달러(약 1100만 원) 규모의 연방 전기차 세액공제 혜택을 폐지했다. 이 조치로 인해 세액공제가 종료된 9월 30일 이후 미국 내 전기차 판매량은 급격한 감소세를 기록했다. 이는 공공 정책이 당파적 정치 논리에 상대적으로 덜 취약한 유럽 및 여타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 판매가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인 현상이다.

미국 시장의 장기적인 전망이 마냥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전기차 배터리 비용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으며, 미국 완성차 업체들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등의 도입을 통해 향후 수년 내에 더 저렴한 보급형 전기차를 생산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동차 업계 관계자들은 단기적인 전망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CAFE 규제 완화가 내연기관차의 초기 구매 비용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와, 결과적으로 전기차 판매를 더욱 위축시킬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정책적 난기류 속에서 '전고체 배터리(Solid-State Battery)'가 판도를 바꿀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전고체 배터리는 명칭 그대로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에 사용되는 액체 전해질을 배제한 기술이다. 대신 첨단 세라믹이나 기타 고체 물질로 만들어진 전해질을 사용한다. 소형 전고체 배터리는 이미 존재하는 기술이지만, 이를 전기차용으로 대형화(Scaling up)하는 것은 연구개발(R&D) 측면에서 난제 중의 난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업계 이해관계자들은 이 기술에 막대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왔다. 비용 절감과 주행거리 향상, 충전 시간 단축은 물론,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의 치명적 약점인 독성과 화재 위험을 제거할 수 있는 잠재력 때문이다. 또한 전고체 배터리는 더 가볍고 에너지 밀도가 높아 자동차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들에게 설계의 유연성을 대폭 확대해 줄 수 있다.

포스코·팩토리얼, '전고체 동맹' 결성


전고체 배터리 분야에서 완성차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대표적인 혁신 기업은 매사추세츠주에 본사를 둔 스타트업 '팩토리얼 에너지(Factorial Energy)'다. 이 회사의 'FEST(Factorial Electrolyte System Technology)' 반고체(semi-solid-state) 배터리는 2021년부터 업계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었으며, 당시 메르세데스-벤츠와 스텔란티스가 이 신기술에 관심을 표명한 바 있다.

스텔란티스는 2024년, 팩토리얼의 FEST 배터리를 탑재한 '닷지 차저(Dodge Charger)' 전기차 시범운행(field a fleet) 계획을 구체화했다. 당초 2026년으로 예정되었던 이 계획은 미국 자동차 전문지 모터트렌드(Motor Trend)의 보도에 따르면 2027년으로 다소 지연된 상태다. 그러나 올해 초까지만 해도 스텔란티스는 FEST 배터리 투자에 대한 성과를 조기에 실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왔다. 팩토리얼은 이에 그치지 않고 '솔스티스(Solstice)'라는 브랜드명으로 100% 완전 전고체 배터리 개발을 위한 R&D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최근의 진전은 한국 포스코그룹의 배터리 소재 계열사인 '포스코퓨처엠'과의 협력이다. 양사는 전고체 배터리 기술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비구속적(non-binding) 합의이기는 하나, 그 함의는 단순한 기술 제휴를 넘어선다. 양사는 이번 MOU를 통해 전기차뿐만 아니라 로보틱스,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 등 차세대 산업의 동력이 될 전고체 배터리용 소재 개발에 있어 포괄적인 협력을 모색할 계획이다.
홍영준 포스코퓨처엠 부사장(기술연구소장)은 이번 협력에 대해 "팩토리얼이 보유한 배터리 기술력 및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의 파트너십, 그리고 포스코퓨처엠이 가진 양극재 및 음극재 소재 경쟁력을 바탕으로 차세대 전고체 배터리 사업에서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팩토리얼 측은 포스코와의 협력이 자사의 전고체 배터리를 위한 신뢰할 수 있는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팩토리얼이 보유한 한국 내 생산 시설과 매사추세츠 본사 시설을 상호 보완하는 구조가 될 것이다.

삼성SDI·BMW도 가세…판 커지는 기술 전쟁


팩토리얼은 미국 내 전고체 배터리 혁신의 단적인 예에 불과하다. 콜로라도주에 위치한 스타트업 '솔리드 파워(Solid Power)' 역시 BMW와의 협력 관계를 한층 강화하며 경쟁 대열에 합류했다. BMW는 올해 초 솔리드 파워에 대한 투자가 결실을 맺을 단계에 이르렀음을 시사했으며, 지난 10월 보다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했다. 클린테크니카의 10월 30일 보도에 따르면, BMW와의 최신 협력 단계에서 솔리드 파워는 자사의 황화물계 고체 전해질(sulfide-based solid electrolyte)을 삼성SDI에 공급하게 된다. 삼성SDI는 이 전해질을 활용해 전고체 배터리 셀을 제조할 예정이다.

캘리포니아 기반의 퀀텀스케이프(QuantumScape) 또한 주요 플레이어다. 폭스바겐 그룹의 배터리 자회사인 파워코(PowerCo)는 지난해 퀀텀스케이프의 신형 전고체 배터리 테스트를 진행했다. 폭스바겐이 퀀텀스케이프의 주요 투자자임을 고려하면 예견된 수순이었다. 더 나아가 퀀텀스케이프는 올해 전통의 소재 기업 코닝(Corning)과 새로운 배터리 제조 벤처를 설립하며 전선을 확대했다. 두 회사는 두카티(Ducati) 모터사이클을 통해 전고체 기술을 시연하는 파트너십을 선보이기도 했다.

중국 등지에서도 배터리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팩토리얼, 솔리드 파워, 퀀텀스케이프와 같은 미국 혁신 기업들은 전고체 배터리 시대를 이끌어갈 충분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설령 그 무대가 미국 본토가 아닌 글로벌 시장이 될지라도 말이다.

학계의 연구 개발 노력 또한 멈추지 않고 있다. 올해 초 아르곤 국립연구소(Argonne National Laboratory) 연구팀은 리튬 메탈 전극을 활용한 전고체 배터리 성능 개선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소 측은 "리튬 메탈의 모든 원자가 충·방전에 관여하여 더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기 때문에, 기존 흑연 전극보다 에너지 밀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LLZO(리튬·란타늄·지르코늄·산소) 고체 전해질이 리튬 메탈 전극의 훌륭한 후보 물질임을 지적하며, 전극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전해질 성능을 향상할 수 있는 갈륨이나 알루미늄 같은 첨가제를 식별하는 것이 다음 단계의 과제라고 밝혔다.

현재 미국의 연방 정책이 혼란스러운 상황임을 고려할 때, 이러한 연구 성과들이 미국 내에서 즉각적인 상용화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수 있다. 오히려 유럽의 완성차 업체들이 그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로 해당 연구는 미국 에너지부(DOE) 산하 자동차 기술 사무국(Vehicle Technologies Office)의 지원과 '에너지 저장을 위한 미-독 협력 프로그램'을 통해 수행되었다. 캘리포니아대 산타바바라 캠퍼스가 LLZO 소재를 제공하고, 독일의 하인츠 마이어-라이프니츠 연구소(Heinz Maier-Leibnitz Zentrum)와 체코 과학원 핵물리학 연구소가 분석에 참여하는 등 연구 단계에서부터 글로벌 공조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