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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전력난 해법"…美 해군 퇴역 항모 원자로, 데이터센터 전력원 재활용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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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전력난 해법"…美 해군 퇴역 항모 원자로, 데이터센터 전력원 재활용 추진

신규 원전 53조 원 vs 퇴역 원자로 3조 원…건설비 90% 이상 절감 가능
2035년 AI 전력 수요 30배 폭증 전망 속 '군함→민간 발전소' 전환 제안 주목
핵확산 우려·군사 기밀 장벽 넘어야…USS 니미츠 5월 퇴역 앞두고 논의 본격화
 USS 니미츠(CVN-68) 모습.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USS 니미츠(CVN-68) 모습. 사진=로이터
미국에서 퇴역 해군 함정의 원자로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원으로 재활용하는 방안이 공식 제안됐다. AI 산업 급성장으로 전력 수요가 폭증하는 가운데, 신규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드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절감할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지난 29(현지시간) 텍사스 소재 에너지 기업 HGP 인텔리전트 에너지(HGP Intelligent Energy LLC)가 미국 에너지부(DOE)에 퇴역 해군 원자로를 활용한 AI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 프로젝트를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450~520MW 전력 생산, 건설비 20억 달러 수준


HGP가 제안한 '코어헬드 프로젝트(CoreHeld Project)'는 퇴역한 미 해군 원자로 2기를 테네시주 오크리지 국립연구소 인근에 설치해 AI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하는 계획이다. 이 원자로들은 항공모함과 잠수함에서 수십 년간 안정적으로 가동된 가압경수로(PWR) 방식으로, 450~520메가와트(MW)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HGP 측은 전체 발전소 건설 비용을 18~21억 달러(25900~3조 원)로 추산했다. 이는 메가와트(MW)100~400만 달러(14~57억 원) 수준으로, 신규 민간 원자력 발전소 건설 비용의 극히 일부에 해당한다. 미국에서 가장 최근 완공된 조지아주 보글(Vogtle) 원전 3·4호기는 약 368억 달러(53조 원)가 투입됐고 완공까지 15년이 걸렸다.

그레고리 포레로(Gregory Forero) HGP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미 안전하고 대규모로 이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투자자와 전략적 파트너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AI 전력 수요 2035년까지 30배 급증 전망


이 프로젝트가 주목받는 배경에는 AI 데이터센터의 폭발적인 전력 수요 증가가 있다. 딜로이트(Deloitte)에 따르면 미국 내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20244기가와트(GW)에서 2035123GW30배 이상 급증할 전망이다. 블룸버그NEF도 미국 전체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현재 40GW에서 2035106GW로 약 300% 늘어날 것으로 분석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미국 데이터센터가 2030년까지 전력 수요 증가분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알루미늄, 철강, 시멘트, 화학 등 에너지 집약 산업 전체 전력 소비량을 합친 것보다 많은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원자력은 24시간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고 탄소 배출이 없어 데이터센터용 전력원으로 재조명받고 있다. 다만 신규 원전 건설에는 막대한 비용과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돼 현실적 대안으로 부상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핵연료 확산 우려·군사 기밀이 최대 장벽


HGP의 제안이 실현되려면 상당한 규제 장벽을 넘어야 한다. 미 해군 원자로는 93% 농축 우라늄-235를 사용하는 무기급 고농축 우라늄(HEU)을 연료로 쓴다. 연료봉에서 추출될 경우 핵무기 제조에 전용될 수 있어 핵확산 우려가 제기된다.

해군 원자로 기술 자체도 미국 국방 분야에서 가장 엄격히 보호되는 기밀 가운데 하나다. 현행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인허가 체계는 군용 원자로의 민간 재활용을 염두에 두지 않고 설계됐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HGP가 첫 발전소 부지로 오크리지를 선택한 것은 이런 장벽을 고려한 결과로 풀이된다. 오크리지 국립연구소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했고 이후 미 해군 최초의 원자력 추진로 개발에도 기여한 핵심 핵 연구시설이다. 해군 원자력 인력 출신 전문가 풀도 풍부하다.

한편 USS 니미츠(CVN-68)가 오는 5월 퇴역을 앞두고 있어 해군 원자로 재활용 논의에 시동이 걸렸다. 니미츠함은 1975년 취역 이후 50년간 현역으로 복무한 미 해군 최고령 핵추진 항공모함이다. 지난 16일 워싱턴주 브레머튼 기지에 최종 귀환했으며, 내년 4월 버지니아주 노퍽 해군기지로 이동해 퇴역 절차에 돌입한다.

헌팅턴 잉걸스 인더스트리즈(HII)는 지난 23일 니미츠함 비활성화 및 연료 제거를 위한 3350만 달러(482억 원) 규모 계약을 체결했다. 니미츠급 항공모함 10척이 향후 수십 년간 순차적으로 퇴역할 예정이어서, 퇴역 원자로 처리 문제와 함께 재활용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제안이 AI 시대 급증하는 전력 수요와 노후 군함 처리 비용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주목하는 분위기다. 다만 핵확산 우려와 규제 장벽이 상당해 프로젝트 실현 여부는 미 에너지부의 검토 결과에 달려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