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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中 반도체 인수 불허” 강수… 엔비디아 통제망은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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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中 반도체 인수 불허” 강수… 엔비디아 통제망은 ‘구멍’

美, 안보 이유로 HieFo 인수 자산 180일 내 강제 매각 명령

‘수출 금지’ RTX 5090 중국서 대량 유통… 동남아 우회로 뚫려
미국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중국계 자본의 미국 반도체 자산 인수를 강제로 무산시키는 ‘철벽 방어’에 나서고 있지만, 수출 통제에도 최첨단 인공지능(AI) 칩인 엔비디아의 ‘RTX 5090’이 중국 시장으로 대량 유입된 정황이 확인됐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미국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중국계 자본의 미국 반도체 자산 인수를 강제로 무산시키는 ‘철벽 방어’에 나서고 있지만, 수출 통제에도 최첨단 인공지능(AI) 칩인 엔비디아의 ‘RTX 5090’이 중국 시장으로 대량 유입된 정황이 확인됐다. 이미지=제미나이3
미국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중국계 자본의 미국 반도체 자산 인수를 강제로 무산시키는 ‘철벽 방어’에 나섰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의 철통같은 수출 통제에도 불구하고 최첨단 인공지능(AI) 칩인 엔비디아의 ‘RTX 5090’이 중국 시장으로 대량 유입된 정황이 확인됐다. 2026년 새해 벽두부터 미·중 기술 패권 전쟁이 ‘막으려는 창’과 ‘뚫으려는 방패’의 치열한 모순(矛盾)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트럼프의 행정명령 “안보 위협… 180일 내 다 팔고 떠나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일(현지시각) 행정명령을 통해 중국 국적자가 지배하는 기업 ‘하이 포우’(HieFo)에 대해 미국 반도체 제조업체 엠코어(Emcore)로부터 인수한 자산을 전량 매각하라고 명령했다. 이번 조치는 미국 외국투자심의위원회(CFIUS)가 해당 거래를 국가 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으로 규정한 데 따른 결정이라고 CNBC가 이날 보도했다.

미 재무부 발표에 따르면, 델라웨어주에 법인을 둔 하이 포우는 지난해 4월 엠코어의 디지털 칩 사업부와 웨이퍼 설계·제조 시설을 290만 달러(약 41억 원)에 인수했다. 그러나 이 거래는 CFIUS에 사전 신고되지 않은 ‘미신고 거래’였다. CFIUS는 사후 조사를 통해 하이 포우의 실질적 지배주주가 중국 국적자임을 확인했다.

핵심 쟁점은 ‘인듐 인화물(Indium Phosphide)’ 기술이다. 엠코어는 자율주행과 방산 무기체계의 핵심 부품인 자이로스코프(항법 시스템)와 센서 등을 제조하는 기업이다. 미 정부는 엠코어가 보유한 인듐 인화물 칩 제조 기술과 지식재산권(IP), 전문 인력이 중국으로 유출될 가능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에서 하이 포우에 “180일 이내에 인수한 모든 자산을 처분하라”고 지시했다. 아울러 즉시 엠코어의 기술 정보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중국 자본이 미국 내 기술기업을 인수해 핵심 기술을 빼내가는 우회로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미국의 강력한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다.

중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글로벌타임스는 전문가 발언을 인용해 “근거 없는 매각 명령은 기술 경쟁에 대한 워싱턴의 불안감을 반영한다”고 반발했다.

‘구멍 뚫린’ 통제망… AI용으로 둔갑한 게이밍 칩


미국 정부가 자본 투자를 틀어막는 사이, 제품 수출 통제선에서는 허점이 드러났다. IT 전문 매체 Wccf테크는 3일 “수출이 금지된 엔비디아의 차세대 그래픽처리장치(GPU) ‘GeForce RTX 5090’이 중국 시장에서 대량으로 목격됐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 내에서 유통 중인 RTX 5090 제품들은 MSI와 기가바이트 등 주요 제조사 제품으로 확인됐다. 특히 상자에 중국 수출용 허가 모델을 뜻하는 ‘v2’ 라벨이 붙어 있지 않아, 서방 국가에서 판매되는 일반 제품이 밀수된 것으로 파악된다.
유통 경로는 동남아가 지목된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등 미국의 직접적인 수출 통제 대상이 아닌 동남아시아 국가를 경유해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는 방식이다. 일각에서는 중국 AI 기업들이 ‘컴퓨트 임대(rental compute)’ 방식을 악용해 클라우드 형태로 컴퓨팅 파워를 확보하거나, 제3국에서 하드웨어를 조달하는 ‘세탁 과정’을 거친 것으로 분석한다.

가격 720만 원까지 폭등… 글로벌 시장 왜곡 심화


문제는 단순한 밀수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 기업들은 높은 메모리(VRAM) 용량을 갖춘 RTX 5090을 분해·개조하여 AI 연산용으로 전용하고 있다. 기존 소비자용 냉각 장치를 떼어내고 서버용 블로워(Blower) 팬을 장착해 데이터센터에 투입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중국발 수요 폭증은 글로벌 시장 가격 왜곡으로 이어지고 있다. Wccf테크는 “RTX 5090의 가격이 최대 5000달러(약 720만 원)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AI 열풍이 모든 고성능 GPU 물량을 빨아들이면서 전 세계 일반 소비자가 제품을 구하기 어려운 품귀 현상이 심화하는 것이다.

한편 올해 미·중 기술 전쟁은 ‘자본’과 ‘우회로 차단’이라는 두 가지 전선에서 동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CFIUS 권한을 강화해 중국계 자본의 미세한 침투까지 걸러내는 한편, 제3국을 경유한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동맹국 압박 수위를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엠코어 매각 명령과 RTX 5090 밀수 사태가 한국 기업도 주목할 이슈라고 입을 모은다. 미국의 기술 통제가 강화될수록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중국 사업 리스크 관리와 대체 시장 확보라는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의 강력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어둠의 경로’를 통해서라도 AI 패권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어, 2026년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기술안보’의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