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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제재의 역설... 中, ‘28나노 장벽’ 넘어 HP 공급망 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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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제재의 역설... 中, ‘28나노 장벽’ 넘어 HP 공급망 뚫는다

본토 28나노 양산 기업 5곳으로 확대... 사실상 기술 자립 '분기점' 도달
HP, 메모리 공급난에 中 CXMT 채택 검토... "美 제재 우회로 열리나"
기술 행사의 벽 전시에는 각각 '12/16Gb'와 '16/24Gb' 용량과 '10667Mbps'와 '8000Mbps'의 데이터 속도를 가진 CXMT LPDDR5X와 DDR5 메모리 칩이 탑재되어 있다. 사진=CXMT이미지 확대보기
기술 행사의 벽 전시에는 각각 '12/16Gb'와 '16/24Gb' 용량과 '10667Mbps'와 '8000Mbps'의 데이터 속도를 가진 CXMT LPDDR5X와 DDR5 메모리 칩이 탑재되어 있다. 사진=CXMT
미국의 전방위적인 수출 통제에도 불구하고 중국 반도체 산업이 기술 자립의 분기점으로 불리는 ‘28나노(nm)’ 공정을 완벽하게 장악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나아가 세계 2PC 제조사인 HP가 중국산 메모리 탑재를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던 미국의 '반도체 봉쇄망'에 균열 조짐이 감지된다.

10(현지시간) 테크놀로지 플러스와 Wccftech 등 외신은 중국 본토에서 28나노급 이상 반도체를 양산할 수 있는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이 SMIC를 포함해 최소 5곳으로 늘어났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보고서에 따르면 HP는 글로벌 D램 공급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중국 창신메모리(CXMT) 제품 도입을 추진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마지노선’ 28나노 붕괴... , 범용 반도체 생태계 완성


업계는 중국의 28나노 공정 장악을 기술 자립의 신호탄으로 해석한다. 28나노는 평면형 트랜지스터(Planar FET) 기술로 구현 가능한 가장 미세한 공정이자, 비용 대비 성능(가성비)이 가장 뛰어난 구간이다. 전 세계 반도체 수요의 약 70%가 이 구간에 집중돼 있어, 해당 기술을 확보하면 가전, 자동차, 산업용 센서 등 내수 시장에 필요한 칩 대부분을 자체 조달할 수 있다.

현재 중국은 최대 파운드리인 SMIC(중신궈지)를 필두로 화홍반도체(Hua Hong), 넥스칩(Nexchip) 등이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하며 수율 안정화에 성공했다. 특히 SMIC는 미국의 장비 규제 속에서도 7나노 공정 기술까지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단순한 범용 기술 확보를 넘어선 상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반도체 시장 분석가는 “28나노 공정 마스터는 중국이 미국의 제재 속에서도 생존을 넘어 자립단계로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며 전기차(EV)와 사물인터넷(IoT) 등 핵심 산업에 필요한 칩 공급망을 중국이 내재화했다는 의미라고 진단했다.

HBM에 쏠린 삼성·SK... 틈새 파고드는 中 CXMT


중국의 공세는 메모리 시장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AI(인공지능) 열풍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이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에 주력하면서 발생한 범용 D램 공급 부족 사태가 중국 기업에는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BofA 보고서에 따르면 “HP가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의 물량 부족 탓에 아시아와 유럽 시장용 제품에 한해 CXMT 메모리 탑재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HP가 중국산 메모리를 채택할 경우, (Dell)이나 레노버 등 다른 PC 제조사들 또한 원가 절감과 공급 안정성을 위해 중국산 비중을 늘릴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CXMT는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시장 점유율 확대를 꾀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CXMT2026년까지 월 웨이퍼 생산량을 30만 장 수준으로 늘리고, 상하이 증시 상장(IPO)을 통해 약 42억 달러(6조 원)를 조달해 설비 투자에 나설 계획이다.

美 제재의 역설... "범용 칩 시장, 중국이 장악하나"


미국 국방수권법(NDAA)은 안보 우려를 이유로 중국산 반도체 조달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HP는 민감한 미국 시장을 제외한 아시아·유럽 지역 제품에 중국산 칩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제재를 우회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는 기업들이 안보 논리보다 공급 안정성가격 경쟁력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NDAA는 미 정부 기관이 중국산 칩(SMIC, YMTC, CXMT )이 포함된 제품을 구매하는 것을 금지할 뿐, 민간 기업이 비()미국 시장에 판매하는 제품까지 강제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기업 논리상 '가성비'가 뛰어난 중국산 범용 칩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제재가 첨단 AI 칩 분야에서는 중국의 발목을 잡았을지 모르나, 오히려 범용 칩 시장에서는 중국 기업들의 자생력을 키워주는 역설적인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한국 기업들이 수익성이 높은 HBM 등 첨단 공정에 집중하는 사이, 중국이 그 빈자리를 빠르게 잠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 등 시장조사기관은 2026년 중국의 레거시 반도체 생산능력 점유율이 전 세계의 약 40%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첨단 칩을 막으려다 범용 칩 시장을 중국에 내주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관계자는 중국이 28나노 파운드리와 범용 D램 시장을 장악한다면, 전 세계 전자제품 공급망의 대중국 의존도는 더욱 심화할 것이라며 한국 반도체 기업들도 첨단 기술 초격차 유지와 함께 범용 시장 방어 전략을 재점검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