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핵 질서가 흔들리는 순간, 한국의 독자 핵무장 전략
이미지 확대보기동아시아의 기존 억지 질서는 미국의 확장 억지와 동맹의 자동성을 전제로 유지돼 왔다. 위기 상황에서 미국이 자동으로 개입하고, 그 개입이 핵 억지로까지 연결된다는 믿음이 질서의 기초였다. 그러나 미중 패권 경쟁이 장기화되고, 미국의 글로벌 전략이 선택과 집중으로 이동하면서 이 자동성은 점점 조건부로 바뀌고 있다. 일본의 잠재적 핵보유국화는 바로 이 균열 위에서 등장한 결과다.
잠재적 핵보유국이라는 인식이 억지를 바꾸다
일본은 이미 대규모 플루토늄 보유량과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력 기술, 정밀 제조 능력을 갖추고 있다. 플루토늄 보유량은 일본 국내에 약 9톤과 영국과 프랑스 재처리 시설에 위탁 보관하고 있는 약 36톤 등 총 45톤 수준이다. 핵탄두 1기에 필요한 플루토늄이 약 6~8kg이라고 본다면 5,000기 이상 핵탄두 제작이 가능한 물량이다. 여기에 헌법 해석의 변화, 장거리 타격 능력 확보, 국방비의 구조적 증액이 더해지면서 핵 옵션은 더 이상 이론적 금기가 아니다. 핵무장을 선택하지 않더라도, 핵무장을 선택할 수 있는 국가로 인식되는 단계로 일본은 이동하고 있다. 잠재력 그 자체가 억지의 일부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핵무기 보유와 비보유의 이분법을 무너뜨리고 있다. 이제 억지는 핵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핵을 선택할 수 있는가에 의해 좌우된다. 일본은 비핵국가의 외형을 유지한 채, 잠재적 핵보유국으로 계산되는 위치에 올라섰다. 이는 동아시아 핵 질서가 질적으로 전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중 패권 경쟁이 일본의 전략 공간을 확장시키는 구조
일본의 전략적 공간이 넓어진 배경에는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구조적 환경이 있다. 중국은 일본의 핵 잠재력을 반복적으로 문제 삼으며 자국의 핵 전력 증강과 군비 확대를 방어적 조치로 정당화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핵무기 보유량은 600기에서 1500기로 급증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일본의 잠재력은 중국에게 위협이자 동시에 명분이다.
미국의 태도 역시 단순하지 않다. 공식적으로는 일본의 비핵 원칙을 지지하지만, 동시에 일본이 더 큰 안보 부담을 떠안기를 기대한다. 이 이중적 태도는 일본에게 핵 옵션을 직접 사용하지 않고도 전략적 자율성을 확대할 공간을 제공한다. 미중 경쟁은 일본을 억제하는 구조이면서 동시에 일본의 선택지를 넓혀주는 역설적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일본의 잠재적 핵보유국화가 한국을 더 취약하게 만드는 이유
이 같은 변화가 한국에 갖는 의미는 명확하다. 그것은 일본이 핵 옵션을 가진 잠재 국가로 계산되기 시작할수록, 한국은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 위치에 놓인다는 것이다. 일본은 핵을 보유하지 않아도 핵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전략적 발언권을 확보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비핵국가로서 미국의 확장 억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에 머물러 있다.
확장 억지는 약속이지 능력이 아니다. 미중 경쟁이 심화될수록 미국은 개입의 비용과 위험을 더 엄격히 계산하게 되고, 그 순간 동맹의 자동성은 흔들린다. 이 상황에서 일본은 잠재적 핵 옵션을 통해 협상력을 유지할 수 있지만, 한국은 동일한 지렛대를 갖고 있지 않다. 이 불균형은 위기 시 선택권의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의 독자 핵무장 전략은 왜 다시 현실 의제가 되는가
이 지점에서 한국의 독자 핵무장 전략은 이념이나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로 돌아온다. 한국이 핵무장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일본이 이미 핵 옵션을 가진 잠재 국가로 계산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다시 제기된다. 일본이 핵을 선택하지 않아도 핵을 선택할 수 있는 국가로 인식되는 순간, 한국의 비핵 상태는 상대적 취약성으로 전환된다.
독자 핵무장 전략이 곧 즉각적인 핵무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선택지의 존재다. 국제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는 약한 국가가 아니라 선택지가 없는 국가다. 조건부 핵무장 전략은 최악의 상황에서 핵무장이 가능하도록 제도적·기술적·정책적 경로를 준비하고, 그 가능성을 전략적으로 인식시키는 접근이다. 선택지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억지로 작동한다.
자동 억지 이후의 세계에서 한국이 준비해야 할 것
동맹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동맹을 신앙처럼 소비하는 것은 위험하다.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될수록 동맹의 작동 방식은 더 계산적으로 변할 것이다. 일본은 이미 이 같은 변화를 읽어내고 잠재력을 통해 자율성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만이 기존 질서에 머물 수는 없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핵 질서는 이미 움직이고 있다. 일본은 이미 계산되고 있고, 중국은 이를 명분으로 삼고 있으며, 미국은 선택의 폭을 넓히고 있다. 이 같은 구조 속에서 한국의 독자 핵무장 전략은 급진적 주장도, 먼 미래의 가설도 아니다. 그것은 자동 억지가 무너진 이후 한국이 생존과 협상력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준비해야 할 대비 전략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결론을 서두르는 것이 아니라 선택지를 준비하는 것이다. 선택지를 가진 국가만이 억지를 신뢰받을 수 있고, 협상력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협상력을 가진 국가만이 전쟁을 피할 수 있다. 한국의 독자 핵무장 전략은 바로 그 출발점에 놓여 있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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