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관공·전기기사 실업률이 4년제 대학 졸업자보다 낮은 '역사적 이변'
"커뮤니티 칼리지 3% 급증 vs 사립대 1.5% 감소"…학자금 부담에 진로 전환
"커뮤니티 칼리지 3% 급증 vs 사립대 1.5% 감소"…학자금 부담에 진로 전환
이미지 확대보기워싱턴포스트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각) 미국 노동통계국 자료를 인용해 2025년 직업훈련 전문대학 졸업자(배관공, 전기기사, 파이프 설치공 등)의 실업률이 학사학위 소지자보다 낮아지는 역전 현상이 1년 중 6개월 동안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1990년대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이래 처음이다.
대졸 실업률 2.8%, 전문대는 3.8%로 격차 최소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학사학위 이상 소지자의 실업률은 2.8%를 기록했다. 고등학교 졸업자는 4.0%, 전문대 졸업자를 포함한 일부 대학 교육 이수자는 3.8%로 나타났다. 대졸자와 고졸자 간 실업률 격차는 1970년대 이후 가장 좁혀진 상태다.
인디드 고용연구소 북미 경제연구 책임자인 로라 울리히는 "노동시장 침체가 주로 화이트칼라에 집중돼 있다"며 "비즈니스, 전문 서비스, 기술 분야 노동자들이 타격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제조업과 건설 분야는 오랫동안 인력 부족에 시달려왔다. 과거 이런 직업이 경제 안정성과 전문성 측면에서 뒤처진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울리히 책임자는 "이제 그런 편견이 걷히고 있다"고 말했다.
AI가 바꾼 고용시장 지형도
변화의 배경에는 인공지능(AI) 기술 확산이 있다. 스탠퍼드대학교 최근 연구에 따르면 소프트웨어 개발자, 고객서비스 담당자 등 AI에 가장 노출된 직종에서 22~25세 고용이 2022년 이후 13% 감소했다.
앤스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최고경영자(CEO)는 향후 5년 내 신입 화이트칼라 일자리의 절반이 AI로 대체될 것으로 전망했다. 링크드인의 라이언 로슬란스키 CEO는 지난해 12월 인터뷰에서 "기술과 노동시장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5년 경력 계획을 세우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라며 노동자들의 적응력을 강조했다.
반면 블루칼라 일자리는 AI 위협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건설업계 단체인 미국건설협회(ABC)의 아니르반 바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젊은이들이 AI가 블루칼라보다 화이트칼라 생계를 위협한다는 사실을 똑똑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커뮤니티 칼리지로 몰리는 학생들
미국 전국학생정보센터 자료에 따르면 지난 가을 커뮤니티 칼리지 등록률은 전년 대비 3% 증가했다. 4년제 공립대학 증가율(1.4%)의 두 배가 넘는다. 사립 4년제 대학 등록률은 1.5% 이상 감소했다.
건설, 제조, 의료 등 인력 부족 분야의 직업훈련 과정을 선택하는 학생이 늘었다. 미국건설협회는 올해 건설업계에 34만9000명의 신규 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임금 측면에서도 기술직이 경쟁력을 갖췄다. 노동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배관공, 배관공, 전기기사, 보일러공 등 도제 과정이 필요한 직종의 평균 시급이 2023년 미국 전체 평균 시급 31.50달러(약 4만5700원)를 넘어섰다. 승강기·에스컬레이터 수리공은 시급 평균 48달러(약 6만9600원) 이상을 받는다.
학자금 대출 부담도 젊은이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 교육데이터이니셔티브에 따르면 미국 학자금 대출자의 평균 잔액은 4만2600달러(약 6180만 원)를 넘는다. 바수 이코노미스트는 "막대한 학자금 빚에 시달렸던 부모를 둔 젊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기술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단순히 렌치 돌리는 일 아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트라이카운티 기술전문대학의 갈렌 디헤이 총장은 지난 가을 등록률이 2024년 대비 4% 증가했다고 밝혔다. 첨단 제조, 의료, 경영, 컴퓨터 서비스 분야 학생이 늘었고, 간호학과에는 대기자 명단이 길게 이어졌다.
디헤이 총장은 "전체 학생의 10% 가까이가 이미 학사 또는 석사 학위를 보유하고 있다"며 "AI 시대에 새로운 기술을 배우려는 중년 노동자들이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21세인 케일럽 클레먼트는 이미 트라이카운티에서 메카트로닉스 전문학위를 받고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스파턴버그 BMW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트라이카운티의 이중 등록 프로그램을 통해 기계·전기 기술과 고급 수학을 무료로 배웠다. 그는 "단순히 렌치를 돌리는 일이 아니다"라며 "손으로도 일하고 머리로도 일한다"고 강조했다.
역전 현상은 일시적일 수도
조지타운대학교 교육노동력센터의 제프 스트롤 소장은 이번 변화를 "역사적 이례 현상"으로 규정했다. 그는 "구조적 단절인지, 2~3년 후 세계가 어떻게 될지를 보여주는 징표인지가 문제"라고 말했다.
센터의 '좋은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는 향후 5년간 "경제 기회가 점차 고등교육과 훈련 수준이 높은 노동자들에게 유리할 것"으로 전망했다. 좋은 일자리의 중간 연봉을 8만2000달러(약 1억1900만 원)로 설정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31년까지 좋은 일자리의 15%만 고졸자에게 제공되고, 66%는 학사학위 소지자, 19%는 고졸 이상 4년제 학위 미만 학력 소지자에게 돌아갈 것으로 예상됐다.
연방준비은행 클리블랜드 지점의 2025년 보고서는 "수십 년 동안 대졸자는 통상 고졸자보다 낮은 실업률을 보였고, 더 빠르게 일자리를 찾았으며, 더 안정된 고용을 경험했다"면서도 "최근 고용 자료는 대졸자의 상대적으로 쉬웠던 구직 전망 시대가 끝났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한국도 유사한 흐름…청년 고용률 3년 연속 하락
한국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5년 1~10월 평균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45.13%로 2022년 이후 3년 연속 하락했다. 청년 실업률은 6.1%로 전년 5.9%에서 반등했고, 청년 취업자는 전년 대비 17만8000명 감소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고졸 실업률(5.5%)이 대졸 실업률(6.7%)보다 낮아진 상황이다. 고학력 청년을 중심으로 장기 실업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 5월 기준 최종 학교 졸업 후 1년 이상 미취업 청년 비중은 46.6%로 전년 동기 대비 1%포인트 증가했다.
2024~2025년 기준 서울(94.7%), 대구, 인천 등 주요 도시의 직업계고 입학 희망자가 정원을 초과하거나 큰 폭으로 상승했으며, 이는 "대학 졸업장보다 빠른 취업이 낫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고소득이 가능한 전문 기술직에 대한 청소년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음을 반영한다.
시장에서는 이 현상이 지속될 지는 더 지켜봐야 하지만 이를 기업의 경력직 선호 현상과 제조업·건설업 등 청년층 선호 일자리의 부진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