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로 밑 탄약고·FSB 고문실 운용 실태 폭로… 유럽 최대 원전 ‘시한폭탄’ 변질
IAEA “12차례 전력 중단 고비” 경고 속 서방 국가 28조 규모 ‘로사톰 퇴출’ 연대 결성
IAEA “12차례 전력 중단 고비” 경고 속 서방 국가 28조 규모 ‘로사톰 퇴출’ 연대 결성
이미지 확대보기러시아군이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가동 중인 원자력 발전소를 점령한 뒤 이를 군사기지와 고문실로 활용하며 국제법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폴란드 언론 아에프페(AFP)와 유나이티드24 미디어(United24 Media)의 지난 23일(현지시각)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에네르호다르에 위치한 유럽 최대 규모의 자포리자 원자력 발전소(ZNPP) 내부에 장갑차와 로켓포 등 대규모 군사 장비를 은닉하고 이를 '핵 방패'로 삼아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군사 요새화부터 인권 유린까지… 자포리자 원전의 현주소
현재 자포리자 원전의 군사 점령 현황을 보면 러시아군은 원전 내부에 장갑차와 로켓포를 상시 배치하고 있으며, 심지어 일인칭 시점(FPV) 드론 조종사를 양성하는 훈련소까지 운영하고 있다.
원전 가동의 핵심인 전력 공급 역시 풍전등화의 위기다. 지난해에만 외부 전력 차단 사태가 12회 발생했으며, 현재는 단일 송전선에만 의지하고 있어 사고 발생 시 냉각 시스템 마비로 인한 대형 참사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에 대응해 국제 사회는 미국과 영국을 포함한 ‘사포로 5개국 연대’를 결성하고 약 200억 달러(약 28조9000억 원)를 투자해 러시아를 배제한 공급망을 구축하는 한편, 러시아 국영 기업 로사톰에 대한 정밀 핀셋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원자로 하부에 쌓인 탄약… “반격 불가능한 점 악용해 드론 훈련장까지”
러시아군은 2022년 3월 자포리자 원전을 점령한 뒤 약 100헥타르(ha)에 이르는 부지를 군사 거점으로 변모시켰다. 유나이티드24 미디어는 러시아군이 원전 내 창고와 격납고에 장갑차, 포병 장비, 다연장 로켓 발사기를 대량으로 배치했다고 전했다.
발전소에서 8km 떨어진 마르하네츠 주민들은 러시아군 드론이 매일같이 날아와 민간 차량을 조준 공격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이반 사모이듀크 에네르호다르 부시장은 “러시아군이 원전 건물을 향해 발포했을 때 대형 참사를 막으려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라고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전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원전 파괴 시 발생할 글로벌 재앙을 우려해 발전소 방향으로는 반격조차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고문실로 변한 통제실… 로사톰 개입 아래 우크라이나 기술진 탄압
발전소 내부에서는 인권 유린도 자행되고 있다. 인권 단체 ‘트루스 하운즈(Truth Hounds)’는 FSB가 발전소 지하실을 고문실과 수용소로 사용하며 우크라이나 출신 기술진을 탄압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확보된 증거에 따르면 2022년 3월 이후 직원과 주민 200여 명이 불법 구금되어 전기 고문과 폭행을 당했다. 로사톰 관계자들은 기술 운영을 담당하고, FSB 요원들은 직원들을 감시·심문하며 강제로 러시아 측에 협조하게 만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로사톰이 단순한 에너지 기업이 아닌 크렘린궁의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끊긴 냉각수 공급선과 국제 사회의 ‘탈러시아’ 공급망 구축
자포리자 원전은 현재 가동을 멈췄으나 폐연료봉 냉각을 위해 지속적인 전력이 필요하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최근 성명을 통해 “원전이 마지막 남은 송전선 한 개에 의지하고 있으며 예비 전력선마저 상실한 위태로운 상태”라고 경고했다.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태가 서방 중심의 공급망과 러시아·중국 중심의 공급망으로 원전 시장이 양분되는 장기적 고립을 초래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자포리자 원전에서 보여준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 전략이 역설적으로 서방 국가들의 원자력 독립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앞당기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K-원전의 ‘포스트 로사톰’ 기회와 우라늄 공급망 과제
이러한 글로벌 원자력 공급망의 지각변동은 대한민국 원전 산업에 기회와 도전이라는 이중적인 과제를 던지고 있다. 러시아의 독점적 지위가 흔들리면서 동유럽을 중심으로 한국형 원전(APR1400)에 대한 반사이익과 수주 가능성이 커지고 있지만, 국내 원전 운영에 필요한 농축 우라늄의 약 33%를 러시아에 의존하는 현실은 해결해야 할 아킬레스건으로 꼽힌다.
원전 업계에서는 서방 국가들과의 ‘핵연료 동맹’을 강화해 공급망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K-원전이 진정한 글로벌 대안으로 자리매김하는 핵심 열쇠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진욱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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