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CGV 베트남 부당해고 패소… 2억 원 배상 판결, 동남아 진출 기업 '경고' [베트남 노동 분쟁]

글로벌이코노믹

CGV 베트남 부당해고 패소… 2억 원 배상 판결, 동남아 진출 기업 '경고' [베트남 노동 분쟁]

호치민 법원 "계약과 무관한 강제 전보·일방적 해고는 명백한 노동법 위반"
10년 법정 싸움 끝 영국인 전 임원 승소… 미지급 수수료가 배상액 키워
한국 기업 동남아 진출 10년, 노동 리스크 관리 '발등의 불'
호치민시 인민법원은 지난 3월 26일, 영국 국적의 베네딕트 다니엘 설리번(Benedict Daniel Sullivan·63) 전 영업마케팅 이사가 CJ CGV 베트남 유한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선고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호치민시 인민법원은 지난 3월 26일, 영국 국적의 베네딕트 다니엘 설리번(Benedict Daniel Sullivan·63) 전 영업마케팅 이사가 CJ CGV 베트남 유한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선고했다. 이미지=제미나이3
세계 유수의 멀티플렉스 체인을 운영하는 대기업이 왜 10년 넘게 베트남 법정을 들락거리다 결국 억 단위 배상 판결을 받게 됐을까. 발단은 고작 '자리 하나'를 둘러싼 인사 조치였다.

호치민시 인민법원은 지난 326, 영국 국적의 베네딕트 다니엘 설리번(Benedict Daniel Sullivan·63) 전 영업마케팅 이사가 CJ CGV 베트남 유한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선고했다. 법원은 CGV 측이 설리번 씨에게 미지급 수수료와 부당해고 보상금 등을 포함해 38억 동(VND), 원화로 약 21700만 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2015년 무렵 첫 소장이 제출된 뒤 10년여 만에 마침표를 찍은 판결이다.

이번 사건은 베트남 현지 매체 브이앤익스프레스(VnExpress)26(현지시각) 보도한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10년의 사투: 사건 경과 일지 (2012~2026). 도표=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10년의 사투: 사건 경과 일지 (2012~2026). 도표=글로벌이코노믹

영업이사에서 '로비 감독'으로… 법원 "강압적 직무 전환"


사건의 핵심 쟁점은 두 가지다. 직무 전환의 적정성과 해고 절차의 정당성이다.

설리번 씨는 2012년부터 CGV 베트남(당시 메가스타 미디어)에서 근무해 왔다. 20141, 4000달러(603만 원)에 수당과 성과 수수료를 별도로 얹는 조건으로 영업·마케팅 이사 계약을 맺고 1(호치민 도심) 사무실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이사 직함을 달고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던 그에게 돌연 전보 발령이 떨어진 것은 같은 해 1013일이었다. 회사는 그를 7지구 지점의 '로비 감독'으로 전보 발령했다. 설리번 씨는 "이사급 임원에게 현장 로비 관리직을 맡기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으며, 수수료 지급 의무를 피하기 위한 강압적 조치"라고 반발했다.

극심한 압박 속에 건강까지 악화된 설리번 씨는 이듬해 1월 총지배인 앞으로 영업·마케팅 이사직 사임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회사는 사임서를 '근로관계 전면 종료'로 해석해 정식 해고 통보나 결정문 없이 사실상 그를 내쫓았다. 설리번 씨는 이사직 사임이 고용 계약 자체의 해지와는 다르다고 맞섰다.

호치민시 인민법원 사법위원회는 "회사가 원고를 고용 계약서와 노동 허가서에 명시된 업무와 전혀 다른 직책으로 전보한 것은 베트남 노동법을 명백히 위반한 불법 행위"라고 판시했다. 또한 "사측이 사임서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한 것은 주관적이고 위법하다"고 단정했다.

미지급 수수료가 배상액 키운 결정타


부당해고 판결 자체보다 배상 규모를 키운 결정적 요인은 미지급 수수료 문제였다. 설리번 씨는 재직 당시 성사한 다수의 광고·영업 계약에 합당한 성과 보수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CGV 측이 제출한 재무제표와 회계 장부를 정밀 검토한 결과 원고 주장에 상당한 근거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불법 계약 해지에 따른 2개월 치 임금 보상 ▲노동 불능 기간의 임금 보전 ▲미지급 수수료 상당액 등을 합산해 총 38억 동 지급을 명령했다.

이는 설리번 씨가 청구한 75억 동(42900만 원)의 절반 수준이다. 그러나 파기환송 전 1심에서 원고의 모든 청구가 기각됐던 점을 감안하면, 법조계에서는 사실상 완승에 준하는 결과로 평가하는 시각이 많다.

베트남 노동법 전문 변호사들은 이번 판결에 대해 "외국인 근로자가 계약 조건과 다른 직무 전환을 강요받거나, 절차 없이 해고될 경우 노동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한 판결"이라고 분석했다. 업계에서는 "동남아 법원이 노동자 권리 보호에서 점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동남아 진출 한국 기업에 던지는 메시지


이번 판결이 한국 기업들에게 시사하는 바는 단순히 CGV의 패소 여부를 넘어선다.

베트남은 한국의 대표적인 동남아 투자 거점이다. 삼성전자, LG, 포스코, 롯데 등 대기업부터 중소·중견기업까지 수천 개 사업체가 현지에 둥지를 틀고 있다. 그러나 현지 고용 계약, 인사 관리, 해고 절차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노동 분쟁에 휘말리는 사례는 꾸준히 늘고 있다.

베트남 노동법은 외국인 근로자의 직종과 직책을 노동 허가서에 명시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와 다른 직무를 강요하거나 허가서 범위를 벗어난 업무를 지시할 경우 법적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이번 소송이 10년 넘게 이어진 것 자체가, 현지 법률 절차가 얼마나 복잡하고 장기화될 수 있는지를 방증한다.

현지 법조계 관계자는 "임원급이든 일반 직원이든, 계약서에 명시된 직무와 다른 보직으로 이동시키는 인사조치는 반드시 노동법상 절차적 근거를 갖춰야 한다""특히 성과 수수료가 포함된 계약이라면, 전보 발령 시점부터 수수료 지급 의무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한국 기업들이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파기환송을 거쳐 10년 만에 결론을 낸 이번 사건은, 글로벌 기업도 현지 노동법 앞에서는 예외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동남아 시장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는 한국 기업들이 지금 당장 인사 규정 전반을 재점검해야 할 이유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