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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거품 붕괴 신호탄…중동 전쟁·유가 폭등이 쏘아 올린 '다중 위기' [중동 위기와 AI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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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거품 붕괴 신호탄…중동 전쟁·유가 폭등이 쏘아 올린 '다중 위기' [중동 위기와 AI 산업]

에너지·금리·증시 삼중 압박에 데이터센터 투자 올스톱 우려…"수익 못 증명한 AI 기업 줄폐업 직면"
AI가 경기를 떠받쳤던 시대는 끝났다. 월가의 한 거시경제 분석가는 최근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가 고조되는 상황을 이렇게 정리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AI가 경기를 떠받쳤던 시대는 끝났다." 월가의 한 거시경제 분석가는 최근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가 고조되는 상황을 이렇게 정리했다. 이미지=제미나이3
"AI가 경기를 떠받쳤던 시대는 끝났다." 월가의 한 거시경제 분석가는 최근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가 고조되는 상황을 이렇게 정리했다. 이는 시장의 우려를 대변한다. 수조 달러의 투자금이 흘러들어간 인공지능(AI) 산업이 에너지 가격 급등, 증시 조정, 신용 경색이라는 '삼중 충격'과 동시에 맞닥뜨릴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국 기술 전문 매체 퓨처리즘(Futurism)28(현지시각) 이 시나리오를 본격 분석했다. AI 산업 전반의 구조적 취약성이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중동 리스크, AI 산업을 겨냥하다


퓨처리즘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과 군사적 충돌 국면에 돌입할 경우 벌어질 파급 경로를 구체적으로 추적했다. 호르무즈 해협 긴장이 고조되면 국제 유가가 단기간에 배럴당 100달러(15만 원)를 넘어설 수 있고,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은 일부 지역에서 갤런당 9달러(13500) 선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여기에 인플레이션 재점화,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하 지연이 겹치면 나스닥과 다우존스 지수는 공식적인 조정 구간(-10%)에 진입할 수 있다.

이 시나리오에서 가장 먼저 자금줄이 끊기는 분야가 AI 산업이라는 게 퓨처리즘의 핵심 경고다. 이 매체는 "지난해 상반기 미국 경기가 침체를 피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기술 분야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가 있었다""에너지 비용이 치솟고 자본시장이 경색되면, 수익 증명 없이 투자금만으로 유지되던 AI 산업의 현금 흐름이 한순간에 역전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본 의존형 구조, 침체기엔 독이 된다

AI 산업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자본 집약성'이다. 오픈AI, 앤스로픽, 구글 딥마인드 등 주요 AI 기업들이 쏟아붓는 데이터센터 구축비, 모델 학습 전력비, 고급 인재 영입비는 현재 수익으로 충당되는 구조가 아니다. 경제정책연구소(EPI)의 조쉬 비벤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거시경제 보고서에서 "경기가 급격히 꺾이는 국면에서 기업들의 설비투자(Capex) 집행은 즉각 동결된다""외부 자본에 전적으로 의존해온 AI 분야가 가장 먼저, 가장 깊이 타격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AI 열풍이 본격화된 2022년 이후 이 분야로 유입된 민간 투자 규모는 전 세계적으로 수천억 달러에 달하지만, 투자자들이 납득할 만한 이익 구조를 갖춘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업계에서는 "AI 기업 10곳 중 8곳은 지금도 적자 상태"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데이터센터 건설 중단 도미노…한국도 직격탄 맞나


자본 흐름이 멈출 때 가장 먼저 올스톱되는 곳은 데이터센터 건설 현장이다. 미국 시사지 애틀랜틱(The Atlantic)의 마테오 웡·찰리 워젤 기자는 "에너지 비용 급등과 신용 경색이 동시에 닥칠 경우, 천문학적 초기 비용이 요구되는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부터 줄줄이 멈춰 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단순히 AI 기술 개발 속도를 늦추는 데 그치지 않는다. 데이터센터 건설에 엮인 부동산 리츠, 대출 채권, 리스 계약이 연쇄 부실화하면서 금융권 전반으로 위기가 번지는 '다중 위기(Polycrisis)'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산업계도 이 충격에서 자유롭지 않다. AI 데이터센터의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용 D램의 최대 공급처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다. 글로벌 데이터센터 투자가 축소되면 HBM 수주 물량이 감소하고, 이는 국내 반도체 수출 지표에 즉각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국내 한 증권사 반도체 담당 애널리스트는 "엔비디아발 HBM 발주가 한 분기만 줄어들어도 SK하이닉스와 삼성의 실적 전망치는 대폭 하향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거품 청산' 속 살아남을 AI는 어디인가

전문가들은 현재의 위기 시나리오가 AI 산업의 종말이 아닌 '강제적 구조조정'의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본다. 뉴욕의 한 기술 분야 벤처캐피털 파트너는 "2000년대 초 닷컴 버블 붕괴 이후에도 아마존, 구글은 살아남아 산업을 재편했다""이번에도 명확한 수익 모델과 현금 흐름을 갖춘 소수의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시나리오가 반드시 재앙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 근거는 거시 변수가 아니라 이미 형성된 AI 이용자들의 일상에서 나온다.

GPT 유료 구독자는 전 세계 2000만 명을 넘어섰고, 기업용 코파일럿·노션 AI·어도비 파이어플라이 같은 AI 내장 구독 서비스는 직장인들의 실무 환경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실제로 AI를 한번 활용한 이용자들이 구독을 해지하는 비율은 일반 소프트웨어 서비스보다 현저히 낮다고 알려져 있다. 문서 초안 작성, 코드 자동완성, 이미지 생성 같은 기능이 생산성을 눈에 띄게 높이는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하고 나면, 그 이전 방식으로 돌아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AI 구독 경제가 경기 변동에 비교적 강한 '고착성(Stickiness)'을 지닌다는 의미다.

미국 정부의 AI 산업 지원 정책, 사우디아라비아·UAE 등 중동 국부펀드의 AI 투자 지속 의지도 완충 요인으로 거론된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은 데이터센터 투자 일정을 일부 조정하면서도 핵심 인프라 지출은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시장은 지금 두 개의 시나리오 사이에 서 있다. 중동 리스크가 봉합되고 금리 인하 기대가 살아난다면 AI 투자 열기는 재점화될 수 있다. 반대로 에너지 가격과 금리가 동반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이 고착된다면, 수익 구조가 취약한 AI 기업들은 닷컴 버블 붕괴 이후 최대 규모의 정리 과정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하나다. 이미 수백만 명의 일상에 뿌리 내린 AI는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생태계를 지탱해온 무한 팽창의 논리는 이제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숫자로 증명하라"는 요구 앞에서, AI 산업의 진짜 실력이 판가름 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