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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 EV 모터 '중희토류 90% 감축' 성공… '자원 무기화' 돌파구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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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 EV 모터 '중희토류 90% 감축' 성공… '자원 무기화' 돌파구 열었다

중국산 의존도 낮춰 공급망 리스크 해소… 독자적 내열 기술로 경제안보 강화
스마트폰·가전 등 산업 전반으로 '탈(脫) 희토류' 확산… 대체 기술이 미래 경쟁력
장기 비전 발표하는 닛산 이반 에스피노사 사장.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장기 비전 발표하는 닛산 이반 에스피노사 사장. 사진=연합뉴스

글로벌 전기차(EV) 시장에서 자원 무기화를 앞세운 중국의 공세가 거세지는 가운데, 일본 닛산자동차가 모터의 핵심 원료인 중희토류 사용량을 기존 대비 90% 이상 줄이는 데 성공하며 공급망 독립을 위한 이정표를 세웠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의 지난 17일(현지시각) 보도에 따르면, 닛산은 부품 협력사와의 기술 협력을 통해 신형 '리프(LEAF)'에 탑재되는 모터에서 중국 의존도가 절대적인 디스프로슘과 테르븀 등 중희토류 사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했다.

이는 미·중 무역 갈등 심화로 인한 희토류 수출 규제 리스크를 기술 혁신으로 정면 돌파했다는 점에서 글로벌 제조 업계에 상당한 파급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중국산 중희토류 90% 걷어낸 닛산… '내열 배분' 신기술이 핵심

닛산자동차가 이번 신형 리프 모터에서 달성한 '중희토류 90% 감축'은 2010년 출시된 초대 모델과 비교한 수치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구체적인 절감 폭이 이번 보도를 통해 처음으로 공식 확인됐다.

전기차(EV) 모터는 고속 회전 시 발생하는 고열을 견디며 강력한 자력을 유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 내열성을 높여주는 중희토류인 디스프로슘(Dysprosium)과 테르븀(Terbium) 투입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닛산은 희토류를 자석 전체에 고르게 섞는 기존 방식 대신, 자석의 특정 부위에만 집중 배치하는 '배분 최적화 기술'을 적용했다.

아울러 모터 자체의 발열을 억제하는 냉각 설계와 제어 기술을 고도화해 희토류 도움 없이도 성능을 유지하도록 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중국이 희토류를 경제적 위압 수단으로 활용하는 상황에서, 조달망 분산이 매우 어려운 중희토류의 한계를 기술력으로 극복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산업계 번지는 '중국 리스크'… 생산 중단 사태가 부른 대체 기술 가속화

일본 기업들이 이처럼 '탈(脫) 희토류'에 사활을 거는 배경에는 중국의 노골적인 수출 규제가 자리 잡고 있다. 실제 일본 완성차 업체 스즈키는 지난해 5월 국내 소형차 생산 라인을 일시 중단하는 사태를 맞았다.

이는 미국과 중국의 상호 관세 보복 과정에서 중국 정부가 희토류 수출을 통제하며 부품 수급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중국의 압박은 더욱 거세지는 추세다. 지난 2월 중국 정부는 미쓰비시 중공업 항공엔진을 포함한 20개 기업·단체를 수출 규제 목록에 추가하고, 군민 양용(Dual-use) 품목의 수출을 금지했다. 업계에서는 이 목록에 희토류를 포함한 핵심 광물이 대거 포함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위기감은 가전과 스마트폰 분야로도 확산하고 있다. 정밀 부품 제조사인 미네베아미츠미는 스마트폰 카메라의 손떨림 보정 장치인 '액추에이터'에서 중희토류를 전혀 쓰지 않는 '중희토류 프리' 제품을 개발했다.

이 회사는 고객사 수요 급증에 대응하기 위해 필리핀에 수십억 엔 규모의 신규 생산 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안보 패러다임 전환… "대체 기술이 국가 경쟁력 좌우"


희토류를 둘러싼 공급망 재편은 이제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적 안보 과제로 부상했다. 미국 제너럴 모터스(GM)는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희토류 등 주요 광물 비축 계획에 참여하며 대응력을 높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분석된 글로벌 무역 보고서에 따르면, 공급망 재편에 투입되는 민관 합산 규모는 약 1200억 달러(한화 약 176조 136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일본 정부 역시 남토리섬(南鳥島) 인근 해저에서 희토류 시험 굴착에 나서는 등 자원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해저 광물 채굴이 실제 산업 현장에 투입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이에 대해 시장 전문가들은 당분간 기술적 대안 마련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일본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이 희토류 공급을 지렛대 삼아 공급망을 흔드는 상황에서 대체 기술 확보 여부가 곧 제조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닛산은 이번 90% 감축에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 희토류 사용량을 단계적으로 더 줄여나갈 방침이다.

에너지 안보와 자원 독립을 향한 글로벌 제조사들의 '기술 전쟁'은 전기차 시장의 주도권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닛산의 기술 혁신은 단순히 원가 절감을 넘어 '자원 종속'이라는 지정학적 족쇄를 풀기 위한 고도의 전략적 선택이다.

한국 역시 배터리와 모터 소재의 대중국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핵심 광물 없이도 고성능을 구현하는 기술 경쟁력 확보가 경제안보의 최전선이 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