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美 속도·中 비용, 우리는 신뢰를 판다”... AI 경쟁 시대, 日의 ‘제3 노선’ 통했다

글로벌이코노믹

“美 속도·中 비용, 우리는 신뢰를 판다”... AI 경쟁 시대, 日의 ‘제3 노선’ 통했다

‘빠르게 움직이고 부수라’는 美 실리콘밸리 모델 법적·명예적 한계 봉착
국가 통제 갇힌 中 ‘가성비 복제’ 모델… 해외 자산 시장서 독립성 결여로 불신 자초
도쿄, ‘히로시마 AI 프로세스’ 주도로 빅테크 자발적 정렬 유도… 사카나 AI 등 특화 모델로 영토 확장
인공지능 경쟁은 전 세계적으로 불안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AI 안전 연구원 마이클 트라치가 3월 21일 샌프란시스코 본사 앞에서 시위대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인공지능 경쟁은 전 세계적으로 불안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AI 안전 연구원 마이클 트라치가 3월 21일 샌프란시스코 본사 앞에서 시위대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인공지능(AI) 패권을 둘러싼 글로벌 통상 전쟁이 미국과 중국의 극단적인 디커플링(분절화)으로 치달으며 전 세계 자산시장과 공공 기관에 가혹한 ‘불안감’을 심어주는 가운데, 일본 도쿄가 ‘신뢰성과 투명성’을 무기로 차세대 AI 거버넌스의 새로운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나섰다.

미국 빅테크 진역이 속도 경쟁에 매몰돼 사회적 부작용을 양산하고, 중국 진영이 국가 통제 시스템 아래 가성비 물량 공세에만 집착할 때, 일본은 국경을 넘어 병원·은행·정부 시스템이 안심하고 채택할 수 있는 ‘신뢰의 레이어’를 구축해 실리주의적 어부지리를 취하겠다는 책략이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각) 글로벌 커넥츠 미디어(Global Connects Media)의 CEO이자 일본 템플대학교 겸임교수인 더글라스 몽고메리(Douglas Montgomery)의 대차대조표 분석에 따르면, 차세대 AI 시장의 핵심 승부처는 ‘무엇을 만드느냐’가 아니라 ‘글로벌 규제 기관과 사용자가 무엇을 기꺼이 안심하고 쓰느냐’의 신뢰도 싸움으로 완벽히 재편되고 있다.

‘중독 유죄’ 판결 받은 美 속도주의와 ‘독립성 상실’한 中 비용주의의 임계점


수십 년간 미국 실리콘밸리를 지배해 온 핵심 규율인 “빠르게 움직이고 모든 것을 부수라(Move fast and break things)”는 마침내 사법 당국의 철퇴를 맞고 파산 선고를 받았다.

최근 미 법원은 메타(Meta)와 구글 유튜브 등이 중독성 플랫폼을 방치해 사회적 피해를 입힌 책임이 있다고 명확히 판결했다. 이에 따른 천문학적인 법적·정치적·명예적 비용 지출은 미국 테크 기업들의 자율 규제에 대한 자산시장의 깊은 회의론을 낳았다.

태평양 건너 중국이 구사하는 “빠르게 복사하고 저렴하게 만든다”는 전략 역시 한계 대차대조표에 봉착했다. 중국은 국가 보조금과 거대 내수 규모를 무기로 테크 성벽을 쌓았으나, 당국의 인위적인 데이터 통제와 정치적 감독 리스크는 해외 자본의 거부감을 촉발했다.

신뢰성이 생명인 글로벌 테크 시장에서 ‘국가 권력과의 통합’은 오히려 독자적인 해외 진출을 가로막는 치명적인 족쇄가 되었으며, 저작권 집행이 엄격한 서방 시장에서 끊임없는 지적재산권(IP) 마찰을 낳고 있다.

과거 의료 AI 시장을 호령했던 IBM 왓슨 헬스의 몰락은 성능만 좋고 속도가 빠르다고 해서 시장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엄격한 팩트를 증명한다. 제한된 데이터에 의존해 임상의가 완전히 신뢰할 수 없는 권고를 내놓는 순간 투명성과 책임성의 균열이 발생하며, 이는 도입 자체를 동결시키는 리스크로 돌아온다.

강제 규제 대신 ‘자발적 참여’ 이끌어낸 일본의 규칙 제정자(Rule Maker) 전략

유럽연합(EU)이 가혹하고 강력한 AI 규제법안을 조기에 통과시키며 시장을 압박했으나 정작 시스템을 구축하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완전한 동의를 얻는 데는 실패한 반면, 일본은 영리한 ‘히로시마 AI 프로세스’를 통해 전 세계 빅테크 거물들을 도쿄의 표준선 아래 줄 세우는 데 성공했다.

일본이 제안해 G7에서 합의된 이 틀은 투명성, 책임성, 안전을 중심 가치로 삼는다. 놀라운 점은 집행력을 통한 강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픈AI, 구글, 아마존, 안드로픽 등 글로벌 AI 권력을 쥔 19개 대기업이 자발적으로 투명성 보고서를 제출하며 일본이 설계한 표준에 정렬했다는 사실이다.

신뢰도가 곧 글로벌 시장에서의 생존 표시증이 된 국면에서, 일본의 표준에 동조하는 것이 빅테크 기업들에도 실리주의적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인프라와 하드웨어 공급망 독점에만 치우쳐 지정학적 안보 리스크라는 무거운 짐을 진 대만이나, 장기적 신뢰성의 핵심인 일관성을 보장하지 못해 국내 정치적 변동성에 발목이 잡힌 한국의 AI 입법 체계와는 궤를 달리하는 차별화된 영토 확장이다.

‘사카나 AI’의 실리주의 도약… “1위 경쟁 아닌, 글로벌 채택이 목표”


일본의 이 같은 신뢰성 우위는 도쿄에 본사를 둔 인공지능 스타트업 사카나 AI(Sakana AI)의 약진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들은 미국 OpenAI나 구글처럼 천문학적인 자본을 태워 거대 거대언어모델(LLM)을 만들고 1위 왕좌를 차지하려는 소모전에 가담하지 않는다. 대신 실제 산업 현장에서 즉각 배포 및 적응이 가능하고 효율성이 극대화된 ‘특화형 전문 인공지능 모델’을 구축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물론 일본 테크 생태계에도 명확한 제약 조건은 상존한다. 일본은 최첨단 초거대 프론티어 모델 분야의 선두가 아니며, 글로벌 경험을 갖춘 고도화된 기술 인재의 부족 현상도 심각하다. 자칫 기술 통제권 없이 규칙만 만드는 무력한 규제자로 전락할 위험도 있다.

그러나 사카나 AI를 비롯한 일본 테크 진영은 역으로 실리콘밸리의 가혹하고 고된 무한 경쟁 생활에 지친 글로벌 핵심 인재들에게 ‘안전과 신뢰, 라이프스타일이 보장되는 도쿄’라는 강력한 대체재를 제시하며 서방의 고급 브레인들을 흡수하고 있다.

자산운용사 글로벌 테크 전문가는 “화웨이가 3D 설계 법칙으로 미국의 장비 제한을 우회하고 중국 정부가 2.2조 달러 규모의 도시 재생으로 안방 대차대조표를 방어하는 격변기”라며 “미국이 1등을 위해 달리고 중국이 더 저렴한 단가를 위해 치킨게임을 버릴 때, 일본이 전 세계 병원, 은행, 정부 시스템이 국경을 넘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신뢰의 인프라 계층’을 선점한 것은 글로벌 테크 디커플링 시대에 가장 영리하고 실리주의적인 거 거버넌스 쟁탈 전략”이라고 평했다.


신경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