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부유층도 PB급 서비스 이용 가능…자산관리사 역할은 초고액자산가·상속 상담으로 이동
이미지 확대보기인공지능(AI)이 자산관리 업계의 고객 구분 방식을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자산관리사가 직접 관리할 만한 고객으로 여겨졌던 유동자산 100만달러(약 15억4000만원) 안팎의 부유층도 앞으로는 사람이 일일이 시간을 들여 상담해야 할 필요성이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블룸버그통신은 AI가 자산관리 서비스를 빠르게 고도화하면서 일반 부유층 고객의 매력이 약해지고 있다고 2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자산관리 업계에서 이 고객층은 일반 소매 고객보다는 자산이 많지만 초고액자산가처럼 복잡한 상속·승계, 기업 매각, 대규모 자선사업 설계가 필요한 고객은 아니다. 그동안 은행과 증권사의 자산관리 부문은 이들을 중요한 성장 고객으로 봐왔다.
◇“AI가 PB급 서비스 제공”
데바시시 파트나이크 맥킨지앤드컴퍼니 선임파트너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일반 부유층 고객도 이제 AI를 통해 프라이빗뱅킹(PB)에 가까운 수준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AI가 표준화된 투자 조언을 해주던 자산관리사의 가치를 낮추고 있다”며 “앞으로 자산관리 업계가 필요로 하는 인력도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바꿔 말하면 단순 포트폴리오 점검, 세금 절감 방안 정리, 자산 배분, 투자 아이디어 제시 같은 업무는 AI로 빠르게 대체될 수 있다는 얘기다. 과거에는 이런 일을 사람이 직접 맡아야 했지만 생성형 AI와 금융사 내부 플랫폼이 훨씬 빠르고 낮은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자산관리 업계가 AI 시대에도 사람이 반드시 맡아야 하는 영역이 무엇인지 새로 따지고 있다고 전했다.
◇자산관리사는 초고액자산가 상담에 집중
블룸버그에 따르면 AI가 일반 부유층 고객을 맡는 비중이 커질수록 자산관리사의 역할은 초고액자산가 쪽으로 더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상속과 승계, 가족 간 이해 조정, 기업 매각 뒤 자산 재배치, 시장 급락기에 고객의 불안을 다독이는 일처럼 사람의 판단과 관계 조율이 필요한 업무가 중요해질 전망이다.
파트나이크 선임파트너는 초고액자산가를 상대할 때는 고객과 가족 사이의 긴장 관계를 읽고 조정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시장이 급락하거나 승계 문제가 불거지거나 기업 매각처럼 큰돈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상황에서는 AI가 아니라 사람이 옆에서 판단을 도와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자산관리사의 경쟁력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는 관측이 나온다. 과거에는 금융상품을 설명하고 표준화된 투자 조언을 제공하는 능력이 중요했다면 앞으로는 고객의 감정과 가족관계, 세금·법률·투자 문제를 함께 다루는 종합 상담 역량이 더 중요해질 수 있어서다.
◇씨티, AI 도입하면서 인력도 확대
금융 전문가들에 따르면 AI가 곧바로 자산관리 인력을 줄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금융사는 AI를 활용하면서도 자산관리 인력을 함께 늘리는 전략을 쓰고 있다.
씨티그룹은 프라이빗뱅킹과 자산관리 사업에서 인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씨티는 미국 소매은행 부문에서 자산관리 자문가 400명을 추가로 채용하고 프라이빗뱅크 부문에서도 약 100명을 더 뽑을 예정이다.
동시에 씨티는 AI 기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이 소프트웨어는 현재 몇 시간씩 걸리는 포트폴리오 검토 작업을 거의 즉시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최고투자책임자(CIO)의 투자 의견을 고객에게 설명할 이메일 초안으로 정리하고 그 내용이 각 고객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빠르게 요약해주는 기능도 준비하고 있다.
씨티는 부유층 고객이 자녀 대학자금 관리 같은 문제를 상담할 수 있는 대화형 AI 아바타도 도입하고 있다. 조 보난노 씨티 자산 인텔리전스 책임자는 “AI가 고객과 더 자주 접촉할 수 있게 해 만족도와 충성도를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UBS 자문팀 90%도 내부 AI 사용
세계 최대 자산관리회사인 UBS도 AI 활용을 확대하고 있다. UBS는 미국 자문팀의 90%가 이미 내부 AI 플랫폼을 사용해 업무 효율을 높이고 있다고 밝혔다.
UBS의 프라이빗뱅커와 자산관리사들은 내부 AI 도구를 통해 고객별 맞춤형 분석을 제공받고 있다. UBS는 AI를 자문가의 생산성과 운영 효율성을 높이는 데 활용하되, 지배구조와 투명성, 신뢰를 우선하겠다는 입장이다.
블룸버그는 “앤스로픽의 클로드, 오픈AI의 챗GPT, 알파벳의 제미나이 같은 AI 도구들이 이미 포트폴리오 구성, 세금 절감 방안, 자선사업 구상까지 지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은행과 자산관리회사들이 자체 AI 플랫폼을 개발하는 것은 고객 데이터 보호와 규제 대응, 내부 통제를 함께 관리하기 위해서다.
◇새 직무도 등장
AI 확산은 일부 업무를 줄이는 동시에 새로운 직무도 만들고 있다.
파트나이크 선임파트너는 자산관리회사들이 앞으로 AI 관리 기준을 세우는 전문가, 고객 행동 데이터를 분석하는 인력, 맞춤형 서비스 설계 담당자, AI가 처리한 업무를 사람이 점검하는 감독 인력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산관리 업계에서 흔하지 않았던 직무다. 금융 전문성과 기술 이해력을 함께 갖춘 인력이 필요해지면서 채용 시장도 바뀌고 있다.
결국 AI는 자산관리 업계의 고객층과 인력 구조를 동시에 바꾸고 있다. 일반 부유층 고객에게는 AI가 더 빠르고 저렴한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람 자문가는 더 복잡하고 민감한 판단이 필요한 초고액자산가 영역으로 이동하는 흐름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