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간 美 통화정책 주도…‘비이성적 과열’ 경고와 금융위기 책임론 남겨
이미지 확대보기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를 18년 넘게 이끌며 세계 금융시장을 움직였던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이 별세했다. 향년 100세.
22일(이하 현지시각) CNBC와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그린스펀 전 의장이 파킨슨병 합병증으로 이날 워싱턴DC 자택에서 숨졌다.
연준은 이날 낸 성명에서 그린스펀의 별세에 애도를 표하며 그의 통화정책과 경제 사상에 대한 기여가 연준과 경제학계, 미국 사회에 오래 남을 흔적을 남겼다고 밝혔다.
◇블랙먼데이 직후 연준 수장 올라
그린스펀의 연준 의장 임기는 시작부터 위기였다. 그는 1987년 8월 폴 볼커의 뒤를 이어 연준 의장에 올랐고 불과 두 달여 뒤인 10월 19일 미국 증시가 하루 만에 폭락한 ‘블랙먼데이’를 맞았다.
당시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하루에 22.6% 급락했다. 그린스펀은 다음 날 연준이 경제와 금융시스템을 뒷받침할 유동성 공급원 역할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연준은 단기금리를 낮추고 은행권 대출을 독려하며 시장 불안을 진정시켰다.
◇1990년대 장기 호황의 상징
그린스펀은 1990년대 미국 장기 호황의 설계자로 평가받았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경제는 1991년 3월 경기침체가 끝난 뒤 2001년 3월 다음 침체가 시작될 때까지 10년 동안 확장을 이어갔다. 당시로서는 연준 창설 이후 가장 안정적인 성장기 가운데 하나였다.
이 기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거의 네 배로 뛰었고 미국 경제는 연평균 3.5% 성장했다. 실업률은 평균 5.5%였으며 2000년 4월에는 3.8%까지 떨어졌다. 이는 당시 기준으로 196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그린스펀은 1990년대 중반 미국 경제에서 생산성 향상이 본격화하고 있다고 비교적 일찍 판단했다. 많은 경제학자가 경기 과열을 우려하며 금리 인상을 요구했지만 그는 기술 발전이 생산성을 끌어올려 물가 상승 없이도 더 빠른 성장이 가능하다고 봤다.
블룸버그는 그린스펀이 원자재 가격과 임금, 신용 수요 같은 세부 지표를 들여다보며 기존 경기 확장기와 다른 흐름을 포착했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 경제가 과거 30년 동안 경험하지 못한 형태로 변하고 있다고 판단했고 이 판단은 1990년대 정보기술(IT) 호황기 통화정책의 기반이 됐다.
◇‘비이성적 과열’ 한마디로 시장 흔들어
그린스펀은 세계 금융시장이 그의 말 한마디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시대의 상징이었다. 특히 1996년 12월 연설에서 주식시장 고평가 가능성을 언급하며 쓴 “비이성적 과열”이라는 표현은 그의 대표 발언으로 남았다.
이 발언 직후 당시 거래 중이던 도쿄 증시는 급락했고 다른 주요 시장도 흔들렸다. 다만 시장은 곧 회복했고 닷컴버블이 터진 2001년까지 상승세를 이어갔다.
그린스펀은 의도적으로 모호한 표현을 즐겨 쓰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시장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정책 방향을 암시하는 그의 화법은 ‘연준 화법’의 대표 사례로 거론됐다. 워싱턴 정가와 월가에서는 그의 문장과 표정, 단어 선택까지 분석하는 일이 일상화됐다.
그는 퇴임 뒤 CNBC와 인터뷰에서 의회 증언 때 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점점 더 난해한 문장을 이어갔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만큼 그의 말은 시장을 움직이는 동시에 시장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수단이었다.
◇연준 투명성 높였지만 ‘제왕적 의장’ 평가도
그린스펀은 연준 운영 방식에도 변화를 남겼다. 블룸버그는 그가 연준의 비밀주의를 일부 걷어낸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1994년부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회의 당일 정책 결정을 발표하고, 그 결정의 이유와 향후 정책 방향에 대한 단서를 함께 제시하기 시작했다.
이는 오늘날 연준 커뮤니케이션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전보다 정책 투명성이 높아졌고, 시장은 연준의 판단을 더 빠르게 해석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그린스펀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컸다는 지적도 있었다. 블룸버그는 그린스펀 시절 통화정책이 의장 개인에게 과도하게 집중됐다는 평가가 있었다고 전했다. 일부 전직 연준 인사들은 당시 FOMC에서 그린스펀의 판단에 맞서기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이 때문에 그의 재임기는 ‘제왕적 연준 의장’ 시대라는 평가도 받는다. 후임자인 벤 버냉키 전 의장은 이후 물가 목표와 금리 전망을 명확히 제시하는 방식으로 연준 정책을 더 투명하고 제도화된 방향으로 바꿨다.
◇금융위기 이후 빛바랜 명성
그린스펀의 명성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크게 흔들렸다. 그는 퇴임 직전까지 미국 주택시장과 금융시장을 비교적 낙관적으로 봤지만, 그가 물러난 지 2년도 지나지 않아 미국 금융시스템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블룸버그는 그린스펀이 금융시장과 자산 거품에 대한 ‘손 놓은’ 접근 방식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고 전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이 확산되고, 투자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을 증권화하며 파생상품 시장이 급격히 커지는 동안 연준이 충분히 제동을 걸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그린스펀은 금융위기 이후 의회 증언에서 시장 참가자의 자기이익이 금융시스템을 스스로 보호할 것이라는 믿음에 결함이 있었다는 취지로 말했다. 또 금융위기조사위원회 증언에서는 자신이 70%는 옳았지만 30%는 틀렸다고 인정했다.
위원회는 최종 보고서에서 30년 넘게 이어진 규제 완화와 금융기관의 자기규제 의존이 위기 방지 장치를 약화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린스펀은 이러한 흐름을 대표적으로 옹호한 인물 가운데 하나로 거론됐다.
◇저금리 책임론에는 반박
그린스펀은 자신이 금융위기의 직접 원인이라는 비판에는 반박했다. 그는 2010년 발표한 논문에서 은행들이 지나치게 많은 위험을 떠안았고 위기 때 버틸 자본도 충분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다만 주택 거품을 막기 위해 연준이 기준금리를 대폭 올렸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어떤 거품이든 충분히 높은 금리로 꺼뜨릴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면 경제 호황 자체도 함께 희생될 수밖에 없다고 봤다.
그린스펀은 서브프라임 대출 관행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너무 늦게 파악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저금리 정책이 주택 소유 확대에 기여했다는 판단도 끝까지 일정 부분 방어했다.
◇재즈 연주자에서 세계 금융 거물로
그린스펀은 1926년 3월 6일 뉴욕 워싱턴하이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증권중개인이었고 그는 어린 시절 야구 통계에 관심을 가지며 수학에 흥미를 느꼈다.
젊은 시절에는 클라리넷과 색소폰을 연주했고, 줄리아드스쿨에 잠시 다녔다. 이후 스윙밴드에서 연주자로 활동하다가 경제학으로 진로를 바꿨다.
그는 뉴욕대에서 경제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고, 1977년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민간 경제컨설팅 회사인 타운젠드-그린스펀을 운영했으며, 1974년부터 1977년까지 제럴드 포드 행정부에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지냈다.
1981년부터 1983년까지는 사회보장개혁위원회 의장을 맡았다. 이후 레이건 행정부에서 연준 의장으로 지명되며 미국 경제정책의 중심에 섰다.
그린스펀은 자유시장주의 성향의 경제학자로도 알려졌다. 젊은 시절에는 작가이자 자유지상주의 사상가인 아인 랜드와 교류했고, 규제보다 시장의 자기조정 능력을 중시하는 입장을 보였다. 이런 철학은 1990년대 미국 경제 호황기에는 강점으로 받아들여졌지만, 금융위기 이후에는 가장 큰 비판 지점이 됐다.
◇중앙은행 독립성 끝까지 강조
2006년 퇴임 뒤 그린스펀은 그린스펀어소시에이츠를 세워 경제 자문 활동을 이어갔다. 회고록과 경제 관련 저서를 냈고 주요 경제 현안에 대한 공개 발언도 계속했다.
그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하게 옹호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첫 임기 당시 연준을 공개 비판하며 금리 인하를 압박했을 때도 그린스펀은 대통령이 연준 문제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2026년 1월에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 대한 형사조사 논란을 비판하는 전직 경제정책 당국자들의 공동성명에도 이름을 올렸다. 성명은 연준 의장에 대한 수사 압박이 중앙은행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린스펀의 삶은 미국 중앙은행 권력이 세계 금융시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였다. 그는 한때 미국 경제 호황을 지휘한 ‘마에스트로’로 불렸고, 동시에 글로벌 금융위기의 토대를 만든 인물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