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자가로 불리는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이 마침내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의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고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그의 나이 96세.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의 허름한 사무실에서 시작해 세계 최대의 투자 제국을 일군 반세기가 넘는 대장정이 마침내 한 막을 내린 것이다. 시장은 늘 그의 입을 주목했고, 전 세계 투자자들은 그가 매년 주주들에게 띄우는 서한을 현대 자본주의의 정수를 담은 경전처럼 읽어 내려갔다.
버핏의 퇴장은 단순히 한 걸출한 경영자의 은퇴를 넘어, 20세기와 21세기 초반을 관통했던 ‘버크셔 체제’의 근본적 전환을 의미한다. 비상임 이사회 의장직을 물려받아 버크셔의 기업 문화와 정체성을 수호할 후임으로는 그의 장남 하워드 버핏(Howard Buffett)이 낙점되었으며, 투자와 경영 실무는 일찌감치 정비된 전문 경영인 시스템으로 이양된다. 여기에 더해 생애 후반부 ‘기술주 기피론자’라는 세간의 편견을 깨고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Alphabet) 등에 단행했던 대규모 집중 투자는, 그가 평생에 걸쳐 천착했던 ‘가치투자’가 박제된 교리가 아닌 살아 숨 쉬는 유기체였음을 증명한다. 1. 96세 현인의 퇴장: 오마하 제국의 왕관을 내려놓다
1965년 쇠락해 가던 뉴잉글랜드의 섬유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의 경영권을 인수했을 당시, 청년 버핏이 오늘날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넘나드는 거대 복합 기업군을 상상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60여 년이 흐른 지금, 버크셔 해서웨이는 보험(GEICO), 철도(BNSF), 에너지, 제조업, 소매업을 아우르는 동시에 애플,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코카콜라 등 굴지의 글로벌 기업 지분을 대거 보유한 거대한 자본 요새가 되었다.
아들 하워드 버핏과 그렉 아벨 체제
버핏이 물러난 빈자리는 일찍이 예고된 투트랙(Two-Track) 지배구조로 메워진다. 일상적인 사업 운영과 자본 배분 권한은 비보험 부문 부회장이었던 그렉 아벨(Greg Abel) 최고경영자(CEO)와 아짓 자인(Ajit Jain) 보험 부문 부회장이 이끌고, 버크셔의 이사회 의장직은 장남 하워드 버핏이 이어받는다. 세간의 이목은 자연스럽게 하워드 버핏에게 쏠린다. 세습 경영을 경멸하며 "능력주의(Meritocracy)가 아닌 혈연에 의한 권력 승계는 2000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맏아들에게 2024년 올림픽 금메달을 주는 것과 같다"고 역설해 온 버핏이 자신의 장남을 이사회 의장에 앉힌 이유는 무엇인가?
그 답은 버크셔 특유의 ‘문화 수호’에 있다. 하워드 버핏은 전형적인 월스트리트 금융 엘리트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평생 농부로 살며 농업 생산성 향상과 글로벌 기아 퇴치, 환경 보존에 헌신해 온 박애주의자이자 행동가다.버핏이 아들에게 부여한 사명은 매일의 주식 매매나 인수합병(M&A) 결정이 아니다. 버크셔 해서웨이가 오랜 세월 쌓아온 고유의 기업 문화—자회사 경영진에 대한 완전한 자율권 부여, 주주와의 신뢰, 단기 주가 부양을 위한 금융 공학의 배격, 그리고 극단적인 윤리적 기준—를 지키는 ‘수호자(Guardian)’ 역할이다. 혹여 차기 경영진이 단기 실적 압박에 흔들려 버크셔의 핵심 자산을 매각하거나 무리한 차입 경영을 시도하려 할 때, 창업자의 철학을 가장 잘 이해하는 가족이자 대주주로서 제동을 걸 수 있는 견제 장치가 바로 하워드 버핏인 셈이다.
이로써 버크셔는 실무 경영과 투자 감각은 검증된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 조직의 영혼과 장기 비전은 창업자의 뜻을 계승한 독립적 이사회 의장이 지키는 견제와 균형의 지배구조를 완성했다.
워런 버핏의 투자 인생을 논할 때 가장 많이 회자되는 오해 중 하나는 그가 ‘기술주를 모른다’는 통념이었다. 실제로 1990년대 후반 닷컴 버블 당시 그는 시스코, 마이크로소프트 등 각광받던 인터넷 기업을 일절 사지 않아 "시대에 뒤처진 노인"이라는 조롱 섞인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거품이 꺼진 후 그의 신중함은 시장의 광기를 이겨낸 선견지명으로 재평가받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핏은 낡은 틀에 갇히지 않았다. 2010년대 중반 애플(Apple)을 대거 사들이며 버크셔의 최대 보유 종목으로 올려놓은 결단은 가치투자의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그는 애플을 단순한 IT 하드웨어 제조사가 아니라, 고객의 일상을 장악한 강력한 브랜드이자 거대한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필수 소비재 기업’으로 재정의했다.
말년에 이르러 버핏이 선택한 또 하나의 결정적 승부수는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Alphabet)에 대한 집중 투자였다. 과거 버핏은 버크셔 산하 보험사인 GEICO가 디지털 광고를 집행할 때 클릭당 비용을 지불하면서 구글의 막강한 독점력을 진작에 체감했음에도 초기에 주식을 매수하지 못한 것을 "인생의 가장 뼈아픈 실수 중 하나"라고 공개적으로 털어놓은 바 있다.
버핏이 만년에 단행한 알파벳 집중 투자는 결코 변심이나 투기가 아닌, 가치투자 원칙의 가장 고도화된 적용이었다. 글로벌 검색 시장 점유율 90%에 달하는 구글 검색과 전 세계인의 일상이 된 유튜브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공기와도 같은 인프라였다. 소프트웨어와 클라우드 플랫폼이 뿜어내는 천문학적인 잉여현금흐름(FCF)과 높은 자기자본이익률(ROE)은 막대한 공장 설비 투자가 수반되어야 하는 전통 제조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본 효율성을 보여주었다.
나아가 인공지능(AI) 혁명의 한가운데서도 버핏은 기술적 허상 대신 알파벳이 축적한 방대한 데이터와 인프라라는 ‘경제적 해자’를 꿰뚫어 보았다. 버핏에게 알파벳은 미지의 위험한 기술주가 아니라, 현대인의 지식과 소비 경로 한복판에 자리 잡은 ‘독점적 통행세 징수소(Tollbooth)’였던 것이다. 90세를 넘긴 나이에도 과거의 편견을 부수고 알파벳에 자본을 과감히 집중 배치한 그의 행보는, 가치투자가 낡은 장부가치나 저PER 수치에 안주하는 정적인 맹신이 아님을 웅변한다.
가치투자란 무엇인가: 복리의 기적이 입증한 진리
워런 버핏이라는 거인이 남긴 유산의 정수는 결국 ‘가치투자(Value Investing)’라는 네 글자로 수렴된다. 벤저민 그레이엄과 데이비드 도드의 《증권분석》(1934)에서 잉태되고, 필립 피셔의 성장성 분석과 찰리 멍거의 ‘위대한 기업’ 철학이 융합되어 버핏에 의해 만개한 이 사상은 오늘날까지 투자의 교본으로 읽혀지고 있다.
가치투자의 첫 번째 공리는 주식을 매일 호가창에서 요동치는 종이쪽지가 아니라 ‘기업 소유권의 일부’로 바라보는 태도다. 버핏은 "내일 주식 시장이 5년 동안 문을 닫는다 해도 기꺼이 보유할 수 있는 주식만을 사라"고 말했다. 시장 가격의 일상적 등락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기업의 제품, 브랜드, 그리고 현금흐름의 본질적 가치에 주목하는 것이 가치투자의 출발점이다.
두 번째는 내재가치와 시장가격의 괴리를 이용하는 ‘안전마진(Margin of Safety)’이다. 기업에는 미래 현금흐름의 현재가치 합계인 내재가치가 존재하지만, 시장가격은 군중의 탐욕과 공포에 따라 널을 뛴다. 벤저민 그레이엄이 비유한 ‘미스터 마켓’이라는 변덕쟁이 동업자처럼, 시장이 공포에 질려 1달러짜리 지폐를 50센트에 내던질 때 이를 매수하는 행위가 곧 가치투자다. 본래 가치보다 현저히 싼 가격에 매수함으로써 미래 예측의 오류나 불의의 충격으로부터 원금을 지켜내는 완충지대가 안전마진이다.
세 번째는 찰리 멍거가 버핏에게 선물한 ‘경제적 해자(Economic Moat)’다. 초기 버핏은 장부가치보다 싸지만 질적으로는 수명이 다한 이른바 ‘담배꽁초’ 기업들을 사들였다. 그러나 멍거는 버핏에게 "적당한 기업을 헐값에 사는 것보다 위대한 기업을 적당한 가격에 사는 것이 훨씬 낫다"고 조언했다. 높은 고객 충성도, 막강한 브랜드 파워, 네트워크 효과를 통해 경쟁자의 침입을 영구히 차단하는 해자를 가진 기업만이 복리의 열매를 온전히 맺을 수 있다.
마지막은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경계를 명확히 긋는 ‘능력의 범위(Circle of Competence)’다. 버핏은 투자자가 성공하기 위해 세상의 모든 산업을 섭렵할 필요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저 자신이 확실히 이해할 수 있는 좁은 울타리 안에 머물며, 섣부른 과신으로 선을 넘지 않는 규율이야말로 파멸을 막는 방패다.
이 원칙들이 빚어낸 성과는 가히 경이롭다. 버핏이 이끈 1965년부터 최근까지 약 60년간 버크셔 해서웨이는 연평균 약 20%에 육박하는 복리 수익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배당을 재투자한 미국 S&P 500 지수가 기록한 연평균 약 10%의 수익률을 두 배 가까이 압도한 성적이다.
수치상 1년에 고작 10%포인트 안팎의 차이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반세기가 넘는 복리의 시간이 덧입혀졌을 때의 결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상을 열었다. S&P 500 지수가 약 3만 1,000% 상승하며 자산을 310배가량 불리는 동안,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가는 누적 430만% 이상, 즉 4만 3,000배가 넘는 천문학적인 상승을 일궈냈다. 위기 때마다 빚을 내지 않고 막대한 현금을 비축해 둔 뒤, 시장이 피를 흘릴 때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하며 우량 기업을 쓸어 담았던 버핏의 전략이 만든 '복리의 마법'이었다.
워런 버핏의 96년 생애는 미국 자본주의가 거친 파도를 헤치고 번영을 구가하던 역사 그 자체였다. 그는 오일 쇼크, 블랙 먼데이, 닷컴 버블 붕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팬데믹과 인플레이션 국면을 온몸으로 관통했다. 수많은 월스트리트의 기린아들이 과도한 레버리지와 복잡한 파생상품으로 반짝 스타로 떠올랐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동안, 버핏은 단 한 번도 상식의 궤도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의 승리는 탐욕에 눈먼 투기꾼들에 대한 상식의 승리였으며, 조급하게 부자가 되려는 이들에 대한 인내의 승리였다. 버핏은 늘 "아무도 천천히 부자가 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부자가 되기 쉽다"고 역설했다. 복리의 긴 호흡을 신뢰하고, 좋은 기업과 동행하며, 시장의 집단 광기 속에서도 이성을 지켜내는 것. 그 단순하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원칙을 70년 넘게 우직하게 관철한 것이 그를 '가치투자의 영원한 대가'로 만든 본질이다.
이제 버핏은 버크셔의 조타실에서 내려왔다. 하워드 버핏이 이끄는 이사회와 그렉 아벨이 이끄는 경영진이 마주할 바다는 이전보다 훨씬 더 거칠고 복잡할 것이다. 그러나 거인이 남긴 나침반—가치와 가격의 구별, 경제적 해자의 탐색, 자본의 엄격한 배분, 그리고 주주에 대한 정직성—은 버크셔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투자자들에게 앞으로도 꺼지지 않는 등대로 남을 것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