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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쪽도 상대를 굴복시킬 수 없다"… 中 석학 정융녠 "미·중은 ‘G2 공존 단계’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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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쪽도 상대를 굴복시킬 수 없다"… 中 석학 정융녠 "미·중은 ‘G2 공존 단계’ 진입"

"충돌은 세계의 공멸, 협력은 윈윈"… 양국 경제 70% 상호보완적 구조가 전략적 버팀목
워싱턴 회담 이어 연내 APEC·G20 등 '한 해 네 차례' 전례 없는 연쇄 정상외교 전개
대만·남중국해는 주권, 서태평양은 美 이익 존중… "AI는 냉전기 핵무기급 전략 대화 축"
무역에 대해 정융녠은 경제적 상호의존이 반드시 전쟁을 막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더 합리적으로 행동하도록 격려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진=AFP/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무역에 대해 정융녠은 경제적 상호의존이 반드시 전쟁을 막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더 합리적으로 행동하도록 격려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진=AFP/연합뉴스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의 미·중 정상회담을 두고 가시적인 돌파구가 부족했다는 일각의 냉담한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중국 최고위 정책 자문역이자 저명 정치학자인 정융녠(鄭永年) 홍콩중문대(선전) 교수가 "두 초강대국은 이미 '사실상의(De facto) G2' 단계에 안착했으며 상호 공존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현실주의적 진단을 내놓았다.

정 교수는 미·중 관계를 바라보는 양대 극단인 '세계 패권을 둘러싼 필연적 무력 충돌론(허무주의)'과 '단번에 모든 갈등을 해소하려는 환상(이상주의)'을 모두 경계하며, 두 나라가 세계 체제를 사실상 양분해 관리하는 '공동 거버넌스'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2026년 한 해 동안 5월 방중, 9월 백악관 회담에 이어 11월 중국 선전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12월 G20 정상회의까지 역사상 전례 없는 '연간 4차례 정상회담'이 성사되는 구조 자체가 양국 관계의 충돌 방지선(가드레일)이 작동하고 있음을 증명한다는 분석이다.

10월 5일(현지시각) 홍콩 영자 일간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보도한 인터뷰에서 정 교수는 경제·무역 안정을 기반으로 군사적 위기관리와 인공지능(AI) 전략 대화로 나아가는 단계적 신뢰 구축 로드맵을 제시했다.

"경제 70%는 완벽한 상호보완"… 무역 밸러스트가 관계 지탱


정 교수는 이번 워싱턴 정상회담의 최대 성과로 '경제·무역 관계의 안정화'를 꼽았다.

그는 "자체 평가에 따르면 미·중 경제 구조의 약 70%는 여전히 고도의 상호보완성을 띠고 있으며, 첨단 기술 등 직접적인 경합 관계는 20~30%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첨단 기술 갈등 속에서도 양국 경제 유대가 전체 관계의 흔들림을 막아주는 핵심 '밸러스트(안정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 교수는 미·중 관계 발전의 3단계로 ▲1단계 경제·무역, ▲2단계 정치적 신뢰, ▲3단계 안보 협력을 제시했다.

그는 중국 측 성명에 담긴 8개 합의사항 외에 실질적인 핵심은 이른바 '아홉 번째 조항'인 군사 통신 및 위기 예방 메커니즘 합의라고 지목했다.

비록 백악관 팩트시트에는 명문화되지 않았으나, 양국 군 당국이 위기 소통 양해각서(MOU)를 조속히 체결하기로 교감한 것은 오판으로 인한 우발적 군사 충돌을 차단하기 위한 필수 조치라는 평가다.

"대만은 주권, 美 태평양 이익은 인정"… 지정학적 타협 공간 제시


서태평양의 최대 뇌관인 대만 및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서도 정 교수는 실용적인 해법을 내놓았다.

그는 "많은 이들이 '주권 문제'와 '지정학적 공간 문제'를 혼동하고 있다"며, "중국에게 대만과 남중국해는 양보할 수 없는 주권의 영역이지만, 미국과 일본에게는 지정학적 영향권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중국이 주권 원칙을 지킨다고 해서 미국을 서태평양에서 완전히 배제하려는 것은 아니다"라며,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서태평양에서 미국의 합법적 이익을 보장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동시에 동태평양 및 라틴아메리카에서 중국의 정당한 이익을 상호 인정받을 수 있다"고 제언했다.

과거 냉전 시절과 달리 양국 경제가 떼려야 뗄 수 없이 얽혀 있는 만큼, 배타적 세력권 분할이 아닌 태평양 공간의 '공동 관리' 모델로 나아가야 한다는 구상이다.

또한, 일본과 필리핀 등 미국의 핵심 동맹국들에 대해서는 "미·중이라는 거대한 G2 구조 안에서 제한된 자율성을 가질 뿐, 그들 스스로가 독자적인 안보 구조가 될 수는 없다"고 평가했다.

특히 일본이 스스로 '동아시아의 이스라엘'을 자임하며 워싱턴을 자국 안보의 틀에 묶어두려 하고 있으나, 미·중 정상 간의 직통 신뢰가 유지되는 한 그 영향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AI는 21세기 핵무기"… 규제 없는 美 빅테크에 정부 간 통제 시급


차세대 패권의 핵심인 인공지능(AI)과 관련해, 정 교수는 이번 회담에서 양자 AI 정부 대화체를 공식 출범시킨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과거 미·소 냉전 시절 핵무기 군축 회담이 양국 안보 대화의 중심축이었듯, 현대 미·중 관계에서는 AI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될 것"이라며, 타계 전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베이징을 방문해 AI 위험 통제를 역설했던 배경을 상기시켰다.

특히 미국의 경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실리콘밸리 기술 자본과 결탁해 '규제 없는 무제한 가속주의'를 용인하고 있어 내부적인 통제 장치가 취약하다고 비판했다.

상업 기업들의 영리 추구에만 맡겨둘 수 없는 치명적인 실존적 위험인 만큼, 국가 최고 지도부 차원의 전략적 규범 합의가 유일한 해법이라는 지적이다.

"美 쇠퇴와 中 부상 모두 현명하게 관리해야"… 11월 선전 APEC 시험대


정 교수는 향후 미·중 관계의 안정을 위해 양국 모두가 심리적 적응을 거쳐야 한다고 고언했다.

그는 "중국은 자국의 부상을 겸손하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관리해 국제사회가 위협이 아닌 긍정적 기회로 받아들이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미국 역시 과거의 일방적 패권 오만에서 벗어나 중국을 대등한 상대로 인정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만큼, 중국도 미국의 상대적 쇠퇴에 따른 불안 심리를 배려해야 하며 궁지에 몰린 상대를 걷어차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동양은 뜨고 서양은 진다(동승서강)'는 식의 단순 승패 논리는 공멸을 부를 뿐이라는 경고다.

오는 11월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서 최초로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인 선전(Shenzhen)을 방문해 참석하게 될 APEC 정상회의에 대해 정 교수는 "안보 과잉으로 위축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자유무역과 경제 협력을 정상 궤도로 되돌릴 절호의 기회"라며, 선전이 글로벌 개방 도시로서 홍콩의 제도적 선진성을 흡수해 다자외교의 성공적 무대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신경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