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에서 올라왔다던 고1 학생 세 명은 “자신 있냐”는 물음에 자신감 넘치는 대답을 돌려줬다. 그들은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 팀을 이루는 ‘마구마구’ 대회에 출전한다 했다. 10분가량 대화를 나눴지만 누가 장애학생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장애는 티가 난다는 기자의 편견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조금은 들뜨고, 설레고, 자신감 넘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수줍은 전형적인 고등학생들이었다. “상금은 얼마에요?” “있는 거 같은데 잘 모르겠어요.” 상금보다는 교실을 벗어나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즐거워보였다. 괜한 걸 물었다 싶었다. 우문에 현답이었다.
지난 5일부터 6일까지 이틀간 서울 양재동 더케이 서울 호텔에서 ‘2017 전국 장애학생 e페스티벌’이 열렸다. ‘마구마구’, ‘스타크래프트’, ‘하스스톤’, ‘모두의 마블’ 등 다양한 게임에서 전국 최강자를 가리기 위한 학생들의 불꽃 튀는 대결이 펼쳐졌다.

오후 1시쯤, 개회식이 끝나고 대회가 시작하기 전까지 조금의 간격, 식곤증을 몰아내기 위한 커피가 간절했다. 행사장 한편에 그럴싸한 카페가 마련돼 있었다. 웬만한 커피프랜차이즈 정도 규모였지만 가격은 아메리카노 한 잔에 1000원. ‘왜 이렇게 싸’하고 돌아보니 점원들 목에 걸린 ‘천안인애학교’ 명찰이 보인다. 매장 카운터에선 인애학교 부장교사들이 능숙하게 손님을 응대하고 주방에선 학생들이 바삐 음료를 제조하고 있었다. 꺼냈던 카드를 집어넣고 가방 깊숙한 곳에서 천원을 꺼냈다. 커피에는 어떤 장애의 흔적도 느껴지지 않았다. 쌉쌀하고 묵직하고, 깔끔했다. 1000원이라기엔 지나치게 고급스러운 커피였다. 카운터 옆에서 ‘68번 손님’을 목청 높여 부르고 있는 학생이 생각난다. 지금이라도 말해주고 싶다. 덕분에 커피 참 잘 마셨다고.

“경쟁이 장난 아니에요.” 전라도에서 왔다던 한 교사는 장애학생 e페스티벌 본선 경쟁률이 어느 e스포츠 대회 못지않다고 말했다.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약 2개월에 걸쳐 전국 17개 시·도 지역에서 3000여명의 학생이 예선을 거쳤다. 이중 본선에는 스포츠 종목별 예선대회 1위 136팀, 정보경진대회 종목별 1위 수상자 238명 등이 진출했다. 그는 이번 대회를 위해 마치 e스포츠 팀 감독처럼 학생들과 같이 전략을 짜고 훈련했다고 한다. 그만큼 매년 전국 장애학생 e페스티벌에 참가하고 싶은 학생들의 열망이 크다는 설명이다. “아이고 어쩌냐.” 경기 중이던 학생이 ‘잘 안풀린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선생님이 더 안절부절이다.
“애들 입장에선 얼마나 좋아요. 우리애들은(장애학생) 이런데 나올 기회가 별로 없거든요. 상 탈 수 있는 자리도 별로 없고요.” 또 다른 교사는 장애학생들이 장애학생 e페스티벌을 통해 자신감을 얻어간다고 말했다. 현란한 손동작, 치열한 두뇌싸움, 바닥이 쿵쿵 울리는 뜀박질까지. 장애학생들은 e스포츠를 통해 신체의 제약에서 벗어나 당당히 한 지역의 대표 선수로 거듭나고 있었다. 조그마한 성취의 경험이 모여 바다 같은 자신감과 자존감을 형성하는 법이다.

청소년이지만 어른이 배워야할 만큼 담대한 학생도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대회에 참여한 학생은 아쉽게 패배했지만 오히려 밝게 웃어 보였다. “오히려 홀가분하대요.” 인솔교사는 대견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최선을 다 했으니 후회 없다는 말. 머리로는 되새기지만 실제 닥치면 얼굴을 구기기가 십상이다. 휠체어에 탄 그 학생은 발달장애라 했다. 신체는 불편할지 몰라도 마음만은 그 누구보다 자유로워 보였다. “아버님, 어떻게 해요 졌대요.” 멀리서 걸어오는 학생의 아버지를 향해 인솔교사가 아쉬움을 건넨다. 아버지도 별 상관없다는 듯이 웃는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만족스럽고 훌륭한 대회였지만 종목 선정에서 더 나아질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종목을 선정할 때 미리 교사나 학생들에게 미리 설문을 하면 어떨까 싶다. 교사들도 학생 지도계획을 미리 세울 수 있고 학생 입장에서도 본인이 좋아하는 게임 선수로 출전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리라 생각한다. 장애 유형별로 종목별 칸막이가 쳐 있는 것도 개선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장애에 구애받지 않고 경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도 취지는 이해하지만 그 구분이 선명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어떤 게임에서 전국 1위의 실력을 가졌어도 장애 유형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종목에 참여할 수 없다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일부 인기 종목에서는 장애유형에 상관없이 지원을 받으면 학생들의 대회 만족도도 올라가리라 생각한다.
5일 개회식에서 문화관광부 조현래 콘텐츠정책국장은 짧고도 울림 있는 축하인사로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는 한 가지 약속과 한 가지 당부를 말했다. “문광부는 게임문화가 잘 될 수 있도록, 또 전국장애학생 e페스티벌 더 잘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는 약속, “페스티벌은 축제고 축제는 놀고 즐기는 기간이다. 행사 기간 동안 (참여 학생들이) 행복하길 바란다”는 당부였다. 그의 말처럼 앞으로 더 많은 학생들이 e페스티벌을 통해 행복할 수 있도록 지원과 관심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신진섭 기자 jshi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