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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훈 '국가수사본부' PD "경찰이 잘한 이야기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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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훈 '국가수사본부' PD "경찰이 잘한 이야기 하고 싶었다"

"'그알'·'궁금한 이야기 Y' 반작용 의도"…'막내형사 된 것 같다' 호평 이어져
"시간·표현 제약 없이 다양한 시도…'긍정의 시그널' 덕에 얻은 장면 많아"

웨이브 오리지널 '국가수사본부'를 연출한 배정훈 PD. 사진=웨이브이미지 확대보기
웨이브 오리지널 '국가수사본부'를 연출한 배정훈 PD. 사진=웨이브
일선 경찰들에게는 가끔 억울한 면이 있다. 일부 대중들에게 경찰은 공권력을 무기로 부정부패를 일삼는 비리집단으로 인식돼있다.

넷플릭스에서 화제를 모은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도 경찰은 금품을 받으면서 정보를 빼돌리고 부정한 세력의 뒤를 봐주는 이미지로 묘사된다. 언론에서도 경찰이 부조리를 일삼으면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정작 어려운 사건을 해결했을 때 언론은 범죄자의 악행을 보도할 뿐 경찰의 노고를 보도하진 않는다.
경찰들은 여기에 대해 대놓고 불만을 드러내진 않는다. 범죄자를 검거하는 일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그 일을 끝마쳤다는 것은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경찰이 범인 잡는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처럼 극적일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극적인 순간이나 그렇지 않은 순간, 그 모두가 경찰에게는 '일상'이다. 웨이브가 지난 3일 공개한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국가수사본부'는 범죄를 조명하기보다 경찰의 일상에 접근하는 작품이다.

이 프로그램을 연출한 배정훈 PD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 '궁금한 이야기 Y'를 연출하면서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는데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던 사람이다. 그 말은 경찰이 부조리한 이미지를 갖게 한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이라는 의미다.

배정훈 PD는 "경찰이 잘못하거나 실수하거나 의도적으로 부정하거나 하는 이야기를 찾아다녔다. 그 과정에서 경찰이 잘한 이야기를 많이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나중에는 친한 경찰들에게 '너는 왜 우리 잘못한 이야기만 찾아다니냐'며 꾸짖음을 듣기도 했다"고 전했다.

배 PD는 '국가수사본부'의 기획에 대해 "경찰이 잘한 일에 고민을 담아 풀어보자는 게 기획의 첫 질문이었다"며 "경찰이 본연의 일을 한 거지만, 잘한 건 잘한 거다. 그리고 피해자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과거 제작한 프로그램('그것이 알고 싶다', '궁금한 이야기 Y')의 반작용으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 기획의도"라고 설명했다.

'국가수사본부'는 일선 경찰서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시리즈다. 기존 TV 프로그램에서 접근하기 힘든 경찰 내부까지 카메라를 들이대 '막내형사가 돼 사건을 쫓는 것 같다'는 관람평까지 들은 작품이다.
배정훈 PD가 OTT에서 제작한 첫 콘텐츠로 이전 프로그램과 달리 자유롭게 찍은 게 특징이다. 배 PD는 "TV 파일럿 프로그램을 제작하면 약 3개월 정도 기간이 소모된다. 그런데 웨이브에서는 기획안을 제출하고 제작하는 데까지 1년이 걸렸다. 회차별 공개되는 시간까지 합친다면 TV보다 5배 정도 소모된 셈"이라고 말했다.

배 PD에 따르면 '국가수사본부'는 웨이브와 당초 10회차로 계약했다. 그러나 방대한 촬영분량이 담긴 만큼 해야 할 이야기가 더 많아서 3회분을 더 연장하게 됐다. 총 7개의 촬영팀이 움직였으며 현장에서 사건을 기다리며 제작했다.

배 PD는 "7개의 촬영팀이 움직이는 과정에서 제약을 주고 싶지 않았다. 현장에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지원은 했지만 데스크 역할을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연출이 지향하는 바와 현장 사정에 따라 회차별로 성격이 다르게 나타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궁금한 이야기 Y'를 제작한 배정훈 PD는 이전 프로그램의 반작용으로 경찰이 잘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사진=웨이브이미지 확대보기
'그것이 알고 싶다', '궁금한 이야기 Y'를 제작한 배정훈 PD는 이전 프로그램의 반작용으로 경찰이 잘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사진=웨이브

현장 제작팀의 자유를 보장한 배 PD의 이 같은 방식은 웨이브와 협업하는 과정에서 배 PD가 받은 인상과도 같다.

배 PD는 "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하면 연출 위에 CP가 있고 국장이 있다. 소위 결재라인이 존재한다. 결재라인에게 프로그램의 제작 상황이나 제작비에 대해 보고하면서 일해왔다. 웨이브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매주 CP에게 보고했는데 CP가 '한달에 한 번만 보고하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이런 말이 섭섭했다"고 밝혔다.

이어 "나중에 물어보니 자유롭게 해보라는 취지로 한 말이라고 했다. 이는 분명한 장점이다"라며 "시간여유가 많다 보니 '긍정의 시그널'이 많았다. 이 때문에 안해본 것에 도전하면서 실패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얻은 장면이 많았다"고 말했다.

방송심의와 별도의 영역인 OTT는 방송과 달리 표현의 자율성이 보장돼있다.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의 경우 이 같은 표현의 자율성 덕분에 방송에서 담지 못한 사이비 종교의 적나라한 실체를 전할 수 있었다.

'국가수사본부'의 시작을 여는 부산 양정동 모녀 살인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이름과 얼굴, 집 위치가 공개되는 등 우려스러운 부분이 일부 있었다. 여기에 범죄 현장마저 그대로 등장해 '지상파라면 표현이 가능했을까'라는 의문도 들게 했다.

배 PD는 "양정동 살인사건의 경우 처음에는 피해자를 가리고 공개할 예정이었다. 공개 직전에 피해자 유가족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유족들이 잘 나온 사진으로 공개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해 제작진과 고민한 끝에 공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장소가 공개된 것에 대해서도 현재까지 들어온 민원은 없다"고 밝혔다.

범죄 현장에 대해서는 "현장 모습은 후보정을 통해 피의 색깔을 모두 지웠다. 그 때문에 흑백에 가까운 톤일 것"이라며 "참혹한 범죄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덜 자극적이길 바랬다"고 말했다.

배 PD는 "OTT라서 더 보여줄 수도 있었는데 제작진과 고심 끝에 반대의 선택을 했다. 참혹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신 조금 가려도 의미를 전달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22일 기준 '국가수사본부'는 7화 '강릉 블루스'까지 공개됐다. 반환점을 돌아 아직 가야 할 길이 먼 상황에서 배 PD는 가장 만족한 에피소드로 아직 공개되지 않은 13회를 꼽았다. 배 PD는 "경찰공무원 복무규정의 내용이 있다. 13화는 특별한 사건이 등장하진 않지만 경찰들이 복무규정에 담긴 모든 것을 보여주는 모습이 나온다. 경찰이 얼마나 극한직업인지 그대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국가수사본부'는 1년여 제작기간이 걸린 만큼 방대한 촬영분량을 확보하고 있다. 배 PD는 "편집을 하는데 SBS 편집 서버의 용량을 너무 많이 잡아먹어 민폐를 끼쳤다. 우리 때문에 UHD 서버를 증설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토록 방대한 분량을 회당 40분씩 13회차에 담기에는 다소 아까운 지점도 있을 것이다. 기자가 배 PD에게 "감독판 제작 의향이 있으신가"라는 질문을 했을 때 배 PD는 "좋은 아이디어다.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국가수사본부'가 좋은 성과를 거둔다면 이 다큐멘터리는 못다 한 이야기를 더 전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배 PD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외부로부터 위협도 받았다고 전했다.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의 조성현 PD와 마찬가지로 시사교양 PD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을 떠안고 있었다.

배 PD는 다른 유튜브 콘텐츠에서 공개한 '부적'을 수줍게 꺼내 들었다. 어느새 그 부적은 2개가 됐다고 밝혔다. 부적이 배 PD를 지키는 한 더 저돌적이고 도발적인 시사교양 다큐멘터리는 계속 나올 것으로 보인다.


여용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dd093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