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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구 늪’에 빠진 아시아나...‘1조 할인’에도 망설이는 HDC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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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구 늪’에 빠진 아시아나...‘1조 할인’에도 망설이는 HDC현산

이동걸 산은 회장 “인수 대금 1조 깎아주겠다”
“총수 부당이익” 금호아시아나는 320억 과징금
인수 대금 할인보다 ‘사업성·부실 여부’가 걱정
HDC 현산 “시간이 필요해”…‘밑 빠진 독’ 될라

박삼구 회장과 서울 강서구 아시아나항공 본사.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박삼구 회장과 서울 강서구 아시아나항공 본사. 사진=뉴시스
‘인수 대금 1조 원 할인.’ 언뜻 보기에 솔깃할 만한 제안에도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하는 HDC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은 움직임이 없다.

현산은 ‘인수’보다 인수 ‘후’가 걱정이다. 설상가상으로 공정거래위원회 과징금 부과로 박삼구(75) 전(前)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일가가 부당이익을 취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이동걸(67) 산업은행 회장과 정몽규(58) 현산 회장은 지난 26일 오후 서울 모처에서 만나 아시아나항공 인수 조건을 논의했다. 이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고심 중인 정 회장에게 인수 가격 인하와 자금 지원 등을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의 만남은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회장이 정 회장에게 “원하는 조건이 무엇인지 말해보라”고 말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이른바 ‘담판’ 소식이 알려지며 꺼져가던 현산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불씨가 되살아나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현산은 지난해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하면서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지분 30.77%를 3228억 원에 인수하고 2조 1771억 원을 유상증자하기로 했다. 현산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부담하는 금액은 총 2조 5000억 원이다.

이 회장이 현산 측에 내건 조건은 인수 대금을 1조 원이나 깎아주겠다는 것이다. 정 회장이 이 회장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현산이 내는 돈은 1조 5000억 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든다. 이 회장은 산업은행이 7000억 원을 추가로 지원하겠다는 제안도 내놨다.

비공개 회동 다음날인 지난 27일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에 과징금 320억 원을 부과하고 박삼구 전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과 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은 금호산업 152억 원, 금호고속 85억 원, 아시아나항공 82억 원 등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16년 금호고속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회사가 새로 발행한 주식을 약정된 가격으로 매입할 권리가 부여된 채권)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스위스 기내식 업체에 30년짜리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독점 사업권을 넘겼다. 금호고속은 이를 통해 1600억 원을 조달해 채권단 등으로부터 핵심 계열사 금호산업과 금호터미널을 인수하려 했다.
기내식 사업권 거래 협상이 지연되자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들은 그룹 전략경영실 지시에 따라 1.5~4.5%의 저금리로 총 1306억 원을 금호고속에 빌려줬다.

공정위는 박 전 회장이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고 경영권을 부당하게 회복하려 했다고 결론 내렸다. 공정위에 다르면 금호고속은 169억 원에 달하는 금리 차익을 거뒀다. 이 가운데 박 전 회장 등이 70억 원 이상을 챙겼다. 또한 당시 금호고속은 차입금을 갚지 못해 담보로 잡혔던 금호산업 주식에 대한 권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는데 이 역시 막을 수 있었다.

아시아나항공이 내야 할 과징금이 큰 금액은 아니지만 공정위 결정을 바라보는 현산의 심정은 답답하기만 하다. 과징금 그 자체보다도 공정위 조사로 드러난 각종 비위가 더 걱정이다.

박삼구 회장은 과거 그룹 몸집을 불리기 위해 대우건설 등을 무리하게 인수했다. 이는 계열사 동반 부실을 초래했고 금호생명(현 KDB생명)과 금호타이어가 박 회장 품을 떠나고 말았다. 아시아나항공도 비슷한 사례라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현산으로선 최대한 시간을 벌면서 상황을 주시해야 한다. 현산이 산업은행에 12주간 재실사를 요구한 것도 아시아나항공의 드러나지 않은 부실에 대한 우려 때문으로 알려졌다. 회계 장부를 다시 한 번 면밀히 들여다보는 과정 없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했다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게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항공업이 최악의 위기를 맞은 점도 현산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머뭇거리는 원인이다. 현재 국제선 항공편은 대부분 운항을 중지했거나 승객 대신 화물을 실어 나르는 상황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장기화로 항공업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크다”라며 “현산에게 산업은행의 ‘1조 원 할인’이 과연 파격적일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성상영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ang@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