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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한국 반도체, 아직도 갈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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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한국 반도체, 아직도 갈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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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글로벌이코노믹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지난 해 시장의 동요에도 불구하고 지속 성장세를 보였다. 총 매출은 5500억 달러 내외, 올해 6000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메모리 30%, 비메모리 60%, 나머지가 10% 내외다. 메모리에서 한국은 70%를, 비메모리에서는 20%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메모리와 비메모리를 떠나 설계분야로 가면 한국의 반도체 경쟁력은 너무나 취약하다. 미국이나 대만, 중국 등과 비교할 때 존재가 아예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 반도체는 아직 갈 길이 너무나 멀고 도전자에 머물고 있다.

반도체의 중요성이 재인식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 중국, 대만, 한국, 일본은 반도체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는 개발이나 설계에 전념하는 ‘팹리스’와 제조 전문의 ‘파운드리’와의 수평 분업이 진행되고 있다.

팹리스는 반도체 업계에서는 공장(Fab)이 없고(Less) 회로 설계에 전념하고 칩 제조는 외부에 위탁하는 반도체 기업을 말한다. 통상의 메이커는, 생산 설비에 자금을 투입해 제조를 실시하지만, 반도체 산업에 있어서 생산 설비에의 투자 금액이 적어도 수천억엔 규모가 되기 때문에 우수 인재를 모아 연구 개발에 자금을 집중하는 것이 변화에 대응하기 쉽고 위험도 적다.

팹리스 기업은 IDM(설계와 제조를 다루는 통합 메이커)보다 성장률이 높고 공장을 갖지 않는다는 이점을 최대한 살려 고수익을 달성하고 있다.
그 결과 팹리스 기업은 반도체 매출 세계 랭킹 톱10에 진입하고 있다. 팹리스의 상위 3사는 전체 반도체 기업 가운데 6위, 7위, 8위를 차지한다.

대만의 컨설팅 회사인 트렌드포스(TrendForce)에 따르면 2021년 세계 톱10 팹리스 기업의 매출은 1274억 달러로 전년 대비 48%나 성장했다. 지난해 반도체 부족이 세계적으로 발생해 반도체 가격이 급등하면서 설계기업 매출도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48% 성장률이라는 것은 반도체 산업 속에서도 탁월한 성과다. 톱10에는 퀄컴, 엔비디아, 브로드컴, AMD 등 미국 기업이 6개, 미디어텍, 노바텍, 리얼텍 등 대만 기업 4개사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

매출 1위를 차지한 퀄컴의 팹리스 분야 매출은 293억33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51%나 늘었다. 2위 엔비디아 매출도 그래픽카드와 데이터센터 수요의 증가로 전년 대비 매출이 61%나 성장했다. 반도체 산업의 연평균 성장률은 21.1%인데 비해 팹리스 분야의 성장률은 그 2배로 놀라운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대만 기업의 성장도 현저하다. 4위에 랭크된 미디어텍 매출은 176억1900만 달러로 매출 성장률은 61%로, 노바텍(79%), 리얼텍(43%), 하이맥스(74%)도 기록적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고성장을 이어가는 팹리스 시장이지만, 세계 팹리스 시장 규모는 1100억 달러로 비메모리 시장의 40% 정도다. 또 반도체 산업 전체에서는 23%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세계에서 10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린 반도체 기업은 17개지만 그 가운데 전년 대비 50% 이상의 성장을 한 것은 4개로 모두 팹리스 기업이다.

팹리스 시장은 이처럼 반도체 산업 가운데서도 특출한 성장을 하는 분야고, 반도체 산업 속에서 차지하는 중요성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팹리스 기업의 성장이야말로 파운드리 수요로 이어지기 때문에 세계 각국은 팹리스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는 미국과 대만이 강하다. 중국도 팹리스 기업의 육성에 국력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존재감이 없다. 영국 조사회사 ‘옴디아’에 따르면 세계 팹리스 시장에서 한국 시장 점유율은 고작 1.5%로 미국의 56.8%나 대만 20.7%에 비하면 격차가 상당히 크고 중국의 16.7%에도 크게 뒤진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분야의 한국 기업은 세계 강자지만 팹리스 분야에서는 존재감이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덧붙여 한국의 팹리스 기업 중 국내 1위인 LX세미콘의 매출은 1조8988억원으로 세계 랭킹 13위다. 그러나 주요 아이템이 단가가 낮은 디스플레이 구동 칩이기 때문에 향후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 그 외는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들이 대부분이다.

세계 팹리스 기업이 활황 속에 한국 팹리스 기업의 실적은 침체 중이다.

2009년 200개였던 팹리스 기업은 2020년에는 70개로 회사 수가 3분의 1로 줄었다. 왜냐하면 세계적으로 반도체 산업이 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가운데, 파운드리에 발주가 증가해, 파운드리 기업들이 설계한 칩 생산에서 매출이 많은 쪽을 우선하기 때문에 소규모 설계 발주는 좀처럼 생산할 기회조차 얻을 수 없다.

반도체 산업은 먼저 설계하고 그것을 파운드리에 위탁 생산을 의뢰하고 칩이 생산되면 가전 메이커나 자동차 메이커 등에 납품하는 흐름이다. 한국은 그동안 반도체 생산에는 힘을 쏟아 왔지만, 산업의 핵심인 설계분야 육성에는 소홀했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정부와 산업계가 협력해 반도체 생태계를 조성하지 않으면 “한국 반도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될 우려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지적한다.

대만은 설계, 파운드리, 후공정 패키징까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서두르고 있으며, 미국도 설계에서는 세계 톱을 유지하고 있다.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에 대한 투자가 열매를 맺고 궤도에 오를 경우 미국 기업인 인텔에 발주할 방침을 잡으면 삼성전자에게 불리하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편중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비메모리 세계 1위가 된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설계 인력의 육성 없이 그 목표 달성은 불가능하다.

또 중소규모 팹리스 기업에는 초기에 발생하는 높은 비용이나 판로 확보의 어려움 등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과제이다. 설계 인력은 단기간에는 육성할 수 없다.

장기적 계획과 비전으로 팹리스 시장을 키우는 것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진다. 선두권인 미국, 대만, 그것을 쫓는 중국을 뒤이어 한국이 앞으로 어떤 대책을 강구해 나갈지 주목을 받고 있다.

새로운 정부의 초대 장관이 반도체 전문가인 점이 그나마 다행이다. 분발을 기대해 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