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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重 50년-6] 기술력으로 국적 LNG선 시장 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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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重 50년-6] 기술력으로 국적 LNG선 시장 장악

고부가가치 LNG선 세계 재패의 시작 (중)
韓, LNG 시대 열며 LNG선 국산화 지상 과제
가스공사 첫 발주 5척 가운데 3척 수주 성공
1993년 2월 2일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회사가 건조한 첫 LNG 운반선 ‘현대유토피아호’ 명명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현대중공업이미지 확대보기
1993년 2월 2일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회사가 건조한 첫 LNG 운반선 ‘현대유토피아호’ 명명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현대중공업
우리나라에서 처음 천연가스를 사용한 것은 1986년 인도네시아로부터 5만9000㎥의 LNG(액화천연가스)가 도입되면서부터였다. 1970년대 두 차례 석유파동을 넘기면서 대체에너지 찾기에 온 세계가 심혈을 기울여왔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청정에너지라 불리는 천연가스, 즉 LNG 확보에 나섰다. 석유에 비해 매장량이 훨씬 풍부하고 다른 화석연료에 비해 환경문제를 거의 일으키지 않는 친환경 연료로 각광받았다.

정부의 장기 천연가스 수급계획에 따라 한국가스공사는 계속해서 LNG선을 발주했다. 선가가 높은 데다 차세대 조선기술인 LNG선 사업진출 여부를 결정짓는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커 조선소들은 앞다퉈 경쟁에 뛰어들었다.

현대중공업은 비장한 태세로 LNG선 수주 경쟁에 나섰다. 회사의 성장을 이끌어 나갈 핵심 선종인데다 국가의 중요한 에너지인 LNG를 안정적으로 수급하는 역할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믿는 구석이 있었다. 바로 기술력이었다.

선박 중 가장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해 ‘조선사업의 꽃’이라 불리던 LNG선을 건조할 만한 국내 경쟁사는 아직 찾기 어려웠다. 명분과 기술력으로 무장한 현대중공업은 LNG 1호선에 이어 1991년 9월 LNG 2호선, 1993년 5월 LNG 4호선을 수주했다. 당시 국내 발주된 5척 중 3척을 수주, LNG 건조 경쟁에서 한발 앞서 나갔다.
LNG 2호선(H761)은 1호선과 같은 12만5000㎥급에 알루미늄 구형 탱크 4기를 탑재했다. 1993년 3월 용골거치, 1993년 6월 첫 탱크블록 탑재, 1993년 8월 스팀터빈 탑재 등 순조롭게 진도가 나갔다. 무엇보다 LNG 2호선에는 1호선을 건조하며 축적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 차원 높은 건조기술을 적용했다. 1호선 건조 당시 일본 업체들은 현대중공업을 경쟁상대로 의식해 탱크 조립과 건조 기술이전을 기피했다.

현대중공업은 구형 탱크 제작에 필요한 자체 용접기술 개발 등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CNC(컴퓨터 수치제어) 컴퓨터에 의한 성형 프레스 기술을 독자 개발해 탱크를 제작했다.

특히 용접결함을 극소화시키면서 용접부의 변형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알루미늄 대전류 미그(MIG) 용접기술을 국내 최초로 개발해 적용했다. 용접 패스 수를 기존 40패스에서 단 2패스로 줄여 공수를 크게 절감했다. 경사 보조장치(Tilting Jig)도 개발해 대전류 미그 용접 적용 범위를 넓혔다. 또 LNG 2호선에 탑재된 증기터빈은 LNG 탱크 내에서 자연기화되는 BOG(Boil Off Gas) 연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LNG 2호선은 1993년 12월 22일 1도크에서 진수식을 갖고 1994년 9월 25일 해상 시운전에 나섰다. 이어 1994년 12월 20일 ‘와이케이 소브린(YK Sovereign)’으로 명명식을 갖고 운항선사인 유공해운(현 SK해운)에 인도했다.

사실 LNG 2호선은 당초 1995년 3월 말 인도 예정이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은 1호선 건조에서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인도시기를 3개월 이상 단축해냈다. 세계 정상의 LNG선 건조기술을 다시 입증한 것이었다.
<자료: 현대중공업>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