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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重 50년-9] 인수 20년…시너지 발휘하며 수주‧선가 상승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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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重 50년-9] 인수 20년…시너지 발휘하며 수주‧선가 상승 기여

현대삼호중공업 인수 ③
위탁경영 개시 후 2년 만인 2001년 흑자 전환
2002년 인수 후 이듬해 ‘현대삼호중공업’ 변경
조선업계 민간 주도 구조조정 대표적 성공사례
전라남도 영암군에 소재한 현대삼호중공업 전경. 사진=현대중공업그룹이미지 확대보기
전라남도 영암군에 소재한 현대삼호중공업 전경. 사진=현대중공업그룹
현대중공업은 2002년 4월 계열사로 새 출발한 삼호중공업에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 그해 12월 800억 원을 출자한 것을 포함해 1000억 원을 증자(增資)했다. 사명(社名)도 2003년 1월 현대삼호중공업으로 바꿨다. 계열사로서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동시에 회사 위상을 높이려는 일련의 조치였다.

한라중공업은 1999년 11월 1일 삼호중공업이란 이름으로 새출발 했지만, 사실 ‘위탁경영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당시 수주잔량이 불과 7척으로 2000년 상반기면 조업 물량이 바닥날 처지였다. 만일 수주가 이뤄지지 않고 경영상태가 호전되지 않는 최악의 상황이 지속되면, 현대중공업이 위탁경영을 중도에 포기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는 비관론으로 안팎이 어수선했다.

조기 정상화를 위한 노력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당시 이연재 현대중공업 사장은 자신감을 보였다.
“삼호중공업은 조선과 해양 부문을 주력 업종으로 키워 나갈 계획이며, 2~3년 이내에 흑자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내년인 2000년 매출액은 4000억 원 정도에 머물겠지만 2001년부터는 1조 원 이상으로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삼호중공업의 최첨단 시설과 노동력에 현대중공업의 최신 기술과 경영능력이 더해지면 어떤 시너지 효과가 나올지 세간의 기대와 관심이 모아졌다. 결과는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삼호중과 현대중의 시너지, 선박 수주와 선가 상승


삼호중공업은 현대중공업이 보유한 세계적인 영업망을 활용해 단기간에 수십 척의 선박을 수주했다. 선가(船價)도 예전보다 10% 이상 올려 받을 수 있었다.

“1997년 저가로 19척을 수주한 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수주가 아예 안 되다가 1999년 위탁경영으로 영업이 제대로 이뤄지면서 단번에 24척을 수주했습니다. 점차 고용이 안정되고 회사 분위기가 좋아지기 시작했어요.”(성현철 현대삼호중공업 전무)

일감 확보는 경영정상화의 청신호였다. 2000년 5월부터 완전한 정상조업에 들어갔다. 현대중공업은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 삼호중공업의 해외영업과 기본설계를 직접 수행해 선가를 15% 이상 높였다.

자재 공동구매 등 효율적인 생산관리로 생산원가와 품질을 크게 개선시켰다. 삼호중공업의 금융채무 9200여억 원에 대한 지급보증도 현대중공업이 나섰다.

삼호중공업의 신용을 높이고 금융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보았다. 사실상 현대중공업의 위탁경영 첫해인 2000년 삼호중공업은 5478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그러나 투하자본의 회수기간이 비교적 긴 조선산업의 특성상 불가피하게 136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위탁경영 2년 만에 흑자, 구조조정의 대표 성공사례


현대중공업은 삼호중공업의 위탁경영 이후 ‘화합과 투명경영’을 모토로 무엇보다 전 임직원의 마음과 힘을 모으기 위해 노력했다. 매월 한 차례씩 경영현황 설명회를 열고, 수주현황·매출·수익 등을 전 임직원에게 솔직하게 설명함으로써 위기를 함께 극복하기 위한 공감대를 만들어갔다.

더불어 종합 문화체육센터인 ‘삼호한마음회관’ 공사를 마무리해 개관하고, 4차 사원아파트도 완공했다. 가족공원 조성과 각종 교육혜택 부여 등 임직원의 복지 향상을 위한 다양한 노력도 기울였다.

부도로 중단된 여러 시설 투자도 재개했다. 공장 규모를 늘리고 자동화 설비도 추가하는 등 생산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기반 시설 투자에도 적극적이었다.

“위탁경영 당시 삼호중공업은 대형 조선소라 할 수 없었습니다. 생산설비가 중형 조선소 수준으로 작았어요. 대형 조선소로 성장할 수 있도록 시설 보완, 프로젝트 TFT를 운영했는데, 그때 내업공장 설비 개선 담당요원으로 참여해 24가지 정도의 보완 사항을 올렸더니 거의 다 반영됐습니다.”(김환규 현대삼호중공업 전무)

2001년까지 약 30억달러치의 일감을 수주하면서, 삼호중공업은 출범 2년 만에 매출 1조233억원과 820억원의 경상이익으로 창사 이래 첫 흑자라는 기쁨을 맛보았다. 1999년 위탁경영 당시 매출 4500억원, 1000억원 적자와 비교하면 실로 놀라운 경영성과였다.

삼호조선소는 활기가 넘쳤다. 남은 일감이 3개월치에서 30개월치로 10배 늘었고, 공장가동률이 40% 수준에서 100%를 웃도는 상황이 됐다. 절반으로 줄었던 직원 수도 약 2년 만에 6000명대로 원상회복됐다. 무엇보다 어려운 시기에 회사를 떠났던 직원들 중 희망자 1500여명을 다시 고용했다.

삼호중공업은 2001년 11월 30일 제38회 무역의 날에 ‘4억불 수출의 탑’과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002년 4월 26일 한국능률협회로부터 기업경영개선 ‘우수기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삼호중공업은 부실기업이 채권단의 협조와 전문 경영업체에 의해 되살아난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평가되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일원으로 우뚝 서다


현대중공업은 2002년 4월 계열사로 새 출발한 삼호중공업에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 그해 12월 800억 원을 출자한 것을 포함해 1000억 원을 증자(增資)했다. 사명(社名)도 2003년 1월 현대삼호중공업으로 바꿨다. 계열사로서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동시에 회사 위상을 높이려는 일련의 조치였다.

“삼호중공업 인수는 현대중공업에 걱정과 부담도 됐지만 도약할 수 있는 계기도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혈연관계 이전에 무엇보다 삼호중공업이 무너지면 국가적·사회적·지역적으로 문제가 크기 때문에 현대중공업그룹으로서는 어떻게든 삼호중공업을 살려야 한다는 경영방침을 갖고 있었습니다. 실무적으로 삼호중공업을 살리는 방안으로 일부 생산 설계를 빼고 영업·구매·기본 설계 모두를 현대중공업에서 통합관리하도록 구조조정을 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가 한라중공업 시절 시장을 교란했던 전력 때문에 네임 밸류가 떨어져 있었는데 이를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조충휘 전 현대중공업 사장)

현대삼호중공업 건조 선박에 대한 선주들의 불신은 “현대중공업이 설계를 했으니, 품질을 보장할 수 있다”며 불식시켜 나갔다. 바닥이었던 현대삼호중공업의 네임 밸류도 서서히 회복됐다.

현대삼호중공업은 영업인력을 중복으로 두지 않아도 되고, 현대중공업은 빡빡한 도크 스케줄을 효율적으로 짤 수 있었다. 서로 윈윈(Win-Win) 효과를 톡톡히 거뒀다.

현대중공업의 뒷받침에 힘입어 현대삼호중공업은 고속 성장을 이루었다. 2003년 업계 최단기간 선박 건조 1000만DWT(재화중량톤구)를 기록해 업계 후발주자의 기세를 높였다. 2015년에는 선박 건조 500척을 기록했다. 최단 기간 500척 건조 기록을 경신한 것으로, 세계 4위 조선사로서 위상을 확고히 굳혔다.

현대삼호중공업의 뼈아픈 과거, 한국 조선산업을 위기로 몰아넣은 법정관리와 위탁경영이라는 오명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어느새 한국의 수출역군으로 우뚝 서, 대한민국 조선산업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선도기업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자료: 현대중공업>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