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아내는 미의 여신으로 불리는 ‘아프로디테’이다. ‘아프로디테’는 남성 편력이 심했다. 전쟁의 신 ‘아레스’와 정을 통하고도 모자라 미소년 ‘아도니스’와 몰래 연애를 했다. 보다 못한 남편은 아내가 정부와 알몸으로 밀회하는 불륜현장을 올가미로 씌워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아 버렸다. 아프로디테는 외도 현장을 올림프스 신들에게 고스란히 공개하는 수모를 겪었다.
화덕의 신은 ‘헤르티아’이다. 로마에서는 ‘웨스터’로 불린다. ‘헤르티아’는 로마인들이 신성시했던 신이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돌아와 아내를 탐했던 사내들을 화살로 쏘아 죽이고 제일 먼저 제사를 지냈던 신이 바로 화덕의 신 ‘헤르티아’이다.
불을 신성시하는 철강현장
철강생산 현장에서는 용광로이든 전기로이든 불을 끄는 것을 금기로 삼는다. 용광로의 불을 끄게 되면 쇳물이 굳어 버리기 때문에 생산 활동을 접는다는 의미를 갖는다. 사실 용광로의 불을 끄게 되면 다시 불을 지피는 데 1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야 재가동할 수 있다. 2022년 포항지역에 불어 닥친 태풍 힌남로는 포스코의 포항제철소를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당시 포항제철소는 일부 용광로의 불을 꺼야만 했다.
용광로 가동을 줄이자 한국과 동남아 지역이 잠시 철강재 공급 부족 사태가 나올 정도로 주변 상황은 험했다. 그러나 포스코가 어떤 기업인가. 수 년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이 높은 기업 아닌가. 포스코는 태풍 피해 135일 만에 완전 복구했다. 물과 철강은 상극인지라 복구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철강공장을 덮었던 물을 퍼내고, 설비를 닦고, 조이고, 기름 치고, 최첨단 설비들은 새것으로 완전히 교체했다.
지난 1월 포스코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일어섰다. 전 세계 철강 기업들이 놀랐다. 그리고 박수를 보냈다. 포스코는 재기를 하지마자 힌남로로 피해를 본 포항 주민들을 위해 봉사에 나섰다. 감동적인 장면이다. 기업문화 활동의 전형을 보는 듯했다. 아무튼, 불은 철강생산현장에서 가장 신성시하는 동력원이다. 오죽 불을 신성시했으면, 철강현장에서는 가수 조영남이 부른 ‘불 꺼진 그대 창가에….’라는 노래를 금지곡으로 했다는 일화도 남아있다.
인간이 철을 녹여 새로운 도구(무기)를 만들려는 노력은 기원전 12세기부터 시작되었다. 철이 건물 공사에 널리 사용될 만큼 충분한 양이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산업 혁명 이후부터이다. 그 시작은 영국이었다. 18세기 초 영국은 철을 대량 생산했다. 영국의 철강지대는 늘 메케한 연기로 뒤덮였다. 생산된 철강재는 1770년대부터 건물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당시는 지금과 같은 강철이 아닌 연철(퍼들철)이었다. 연철 정련공정은 1784년에 고안되었다. 숙련공들은 하루에 1톤씩 연철을 생산해 냈다. 이후로 기술이 진보하면서 강철이 만들어지고 압연기술도 잇따라 개발됐다.
방직공장에 적용된 최초의 철강재
연철은 처음에는 철도의 선로를 만드는 데 주로 쓰이다가 후기에는 건축물이나 주요 구조물에 적용됐다. 철강재는 방적공장이나 창고와 같은 산업구조물에 이상적인 재료였다. 당대의 주요 산업이 섬유산업이었으니 철강재는 불티나게 팔렸다. 철강재로 건설된 건물들은 내화성능을 갖춘 다층 구조물로 만들기 위해 벽돌과 결합되어 건물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다.
1863년 스코틀랜드의 작가이자 개혁가인 ‘새뮤앨 스마일즈’(1812~1904)는 ‘철은 19세기 중반까지 모든 제조업의 전형일 뿐만 아니라 문명화 사회의 원동력’이었다고 철강 예찬론을 폈다. 프랑스 건축가 외젠 에마뉘엘 비올라 뒥은 "건축이 발전할 수 있는 비결은 산업재료에 있다"면서 "철강을 여타 재료 중 으뜸"이라고 했다. 건축가들에게 철, 더 정확히 말한다면 철강은 오래도록 기다리던 만능의 건축 재료였다. 중국 송응성이 지은 전문 서적 ‘천공개물’에는 철을 천물만기(千物萬技)의 근본이라고 지칭했다. 천 가지의 물건과 만 가지 기술을 제공하는 물질이라는 의미이다.

철강의 잠재력은 널리 퍼져나갔다. 비가 오는 것을 막아주는 시장(市場)의 지붕과 온실, 철도 역사 등에 손쉽게 적용됐다. 철강재가 공공 구조물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850년 앙리 라브루스트가 파리에 지은 ‘생트 쥬느비에브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은 노출된 철강재 구조가 잘 어우러진 역작이다. 철강재로 만든 원통 볼트는 석재가 할 수 없었던 도발적인 일이었다. 볼트 형식을 석재 대신 철강재로 했다는 자체가 당시에는 파격적인 도전이었다. 가장 오래된 볼트(타원형의 구조물) 건물의 하나는 이집트 티벳에 있는 곡물창고이다. 타원형으로 지어진 이 창고는 기원전 1250년경에 지어졌다.
독일의 에르바르트 메츠거는 처음부터 철강재의 사용을 옹호했다. 그는 "철은 가늘면서도 우아한 윤곽을 지니고 강하거나 섬세함을 드러내는 아름다움을 창조한다"고 철강 옹호론을 폈다. 칼 뵈티허도 그의 저서 '그리스인의 텍토닉'을 통해 ‘철을 미래의 재료’라고 공언했다.
강철 조립한 첫 건물 ‘수정궁’
런던의 ‘수정궁’(水晶宮, Crystal Palace)은 6개월간의 공사를 통해 1851년에 완공된 철강재로 만든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수정궁은 건축 현장 밖에서 제작해온 주철 및 연철 부자재와 유리로 된 구성된 역작이다. 철을 건축물에 적용하자 시공 속도가 빨라졌다. 규모면에서도 석재가 철을 따라올 수 없었다.
‘수정궁’은 1851년 5월 1일 런던 하이드파크에서 열린 근대 최초의 런던 박람회장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런던 박람회는 ‘세계의 공장’인 영국의 위세를 과시하는 자리였다. 겉으로는 유럽 각국의 공업제품 전시회를 표방하고 있었지만, 사실 전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제품은 기관차 엔진, 수압식 인쇄기, 동력 직기, 공작 기계 등 ‘메이드 인 브리튼’이었다.
관람객들은 전시장에 들어서기도 전에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런던 박람회를 위해 만들어진 ‘수정궁’의 위용에 압도된 것이다. ‘수정궁’은 말 그대로 유리로 만든 궁전이었지만 철로 만든 골조는 더욱 생경한 모습이었다. 조지프 팩스턴이 설계한 ‘수정궁’(프레패브리케이션 양식 3층건물)은 박람회 개막 석 달 전인 1851년 2월에 완성되었다. 영국은 이미 1779년에 철제 교량인 ‘아이언 브리지’를 완공할 정도로 강철 건축에 대한 노하우를 갖고 있었다.
‘아이언 브리지’를 건설하던 18세기 후반의 제철 기술로는 대량의 강철을 제조해 내기가 쉽지 않았다. 가격도 매우 비싸 경제성이 없었다. 산업혁명이 본격화된 18세기 후반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주철 제조, 용강법 발명, 철 정련법 등 철강 제조 기술이 나날이 발전했다. 수정궁의 탄생은 이 같은 제철 기술의 발전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다.

‘수정궁’은 강철을 조립한 최초의 건물이다. 규격화된 강철 프레임과 유리를 조립해 만든 덕분에 건축 기간과 시공비를 크게 절감했다. 수정궁이 건축되기 전까지, 실용적이기는 하지만 미(美)적이지는 않은 자재로 인식되었던 강철은 건축가와 토목 기술자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알리게 됐다. 철을 이용한 조립식 건물은 조셉 팩스톤이 온실을 세우면서 퍼져나갔다. ‘수정궁’은 국제박람회가 끝난 뒤 다시 각 부재별(部材別)로 해체하여 1854년 런던 근교의 ‘시든엄’에 다시 재건되었으나, 1936년의 화재로 소실됐다. 중국의 유명 토지개발업자 중룽그룹 니자오싱(倪召興) 회장이 5억 파운드(약 8670억 원)를 들여 런던 남부에 ‘수정궁’복원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언론에 정식으로 공개했으나 결과물은 세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이제는 철이 너무 흔한 이유이다.
올해로 134년 된 에펠탑
‘수정궁’이 건축된 지 34년이 지난(1885년) 후에 구스타프 에펠은 자유여신상의 내부 골조를 철로 만들고, 1889년에는 ‘에펠탑’을 건설하기에 이른다. 사실 ‘에펠탑’은 영국이 선보인 ‘수정궁’의 위력을 뛰어 넘으려는 프랑스의 야망에서 탄생된 구조물이다. 1891년 골조전체가 철골로 이루어진 ‘루빙턴 빌딩’이 미국에 건설되면서 도심은 철골 구조가 유행처럼 사용된다. 마천루 시대를 예고한 것이다.
철을 건축 재료로 과감히 선택한 초창기의 건축가들처럼 우주시대가 열리고 있는 이즈음에 지구에서 생산된 철강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우주 공간에서도 철강시대가 활짝 열리기를 내심 응원한다. 그 중심에 한국의 철강 기업들이 참여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김종대 글로벌이코노믹 철강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