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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의 스틸스토리: 다리이야기(16)] 다리 건설 약속한 105년 후에 완성된 하버 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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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의 스틸스토리: 다리이야기(16)] 다리 건설 약속한 105년 후에 완성된 하버 브리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와 함께 호주의 상징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하버 브리지.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와 함께 호주의 상징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하버 브리지. 사진=로이터
영국의 브리티시브리지, 미국의 골든브리지, 파리의 에펠탑, 호주의 하버 브리지. 이 철구조물들은 모두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적 철 구조물들이다. 한국에는 수많은 철 구조물들이 건재하지만 관광자원화가 되고 인지도 높은 상징적 구조물은 별로 없다.

하버 브리지는 올해로 백한 살이다. 이 다리를 보기 위해 매년 1000만 명(내국인 760만 명, 외국인 270만 명)의 관광객이 달려온다. 골든 브리지도 그렇고, 에펠탑은 평생 한 번쯤 꼭 봐야하는 파리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하버 브리지가 유명세를 가진 연유는 각계각층의 깊은 관심 속에서 완성됐다는 점이 첫 번째이다. 다리를 건설하자고 약속한 이후에 갖가지의 변수가 발생하면서 105년 만에 건설에 착수해 단 1년 만에 완공을 시켰으니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다리가 준공되자 시드니市 당국자들은 하버 브리지를 관통하는 도로 이름을 설계자의 이름을 따 ‘브래드필드 하이웨이’로 명명했다. 다리 설계자 존 브레드필드의 이름을 내세우는 데 반대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강다리는 37개가 걸쳐 있지만 다리 건설 책임자의 이름을 도로명에 붙인 곳은 단 한군 데도 없다. 해당 지역의 출중한 위인의 이름도 없다. 스토리텔링의 소재는 아예 무시된 것 같은 느낌이다.

하버 브리지는 건설되기까지 숱한 우여곡절을 경험했다. 다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제안은 1815년에 시작됐다. 건축가 ‘프란시스 그린웨이’가 ‘라첸 맥과이어’ 총독에게 다리 건설을 제안했으나 ‘노’였다. 25년이 지나서(1840) 건축가 ‘로버트 브랜드리’가 부교(Floating Bridge)를 제안했지만 또 이뤄지지 않았다. 다시 30여 년(1879년)이 지나서 트러스트교를 건설하자고 제안되었고, 또 약 20년을 보낸 1900년에 다리건설 공모전까지 열었으나 하버 브리지의 건설은 이뤄지지 않았다. 75년의 세월이 그냥 흘러가버렸다.

이렇게 다리 건설 하나가 뜻대로 건설되지 못하는 사이 세상은 철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미국은 US스틸을 탄생(1902년)시키고, 철강재를 대량 생산했다. 한 해 전(1901년)에는 일본 제철의 전신인 야하타제철소가 첫 고로에 불을 붙였다. 주철과 연철로 만들던 교량들이 세계 곳곳에서 강철을 앞세운 철강재로 손쉽게 가설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버 브리지의 건설을 본격화 한 것은 1912년이었다. 이마저도 정치권의 입김에 의해 다리 건설은 아예 없던 일로 됐다. 다리건설 책임자 ‘존 브래드필드’가 교각이 없는 캔틸레버 교량을 만들자고 했더니 상원 의원들은 “그럴 돈이 있으면 차라리 전쟁에 쓰는 것이 낫다”고 반대했다. 당시 세계는 제1차 대전 중이었다.

결국 하버 브리지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21년에 시작되었다. 건설한 지 1년 만에 하버 브리지는 완공되었다. 하버 브리지의 설계안은 ‘존 브래드필드’의 아이디어가 채택되었다. 철강재로 구성된 아치 모양은 ‘랄프 프리먼’이 보완했다. 건설을 맡은 곳은 ‘도만 롱’(Dorman Long)건축회사였다.
하버 브리지가 대중에게 개통된 것은 1932년 3월 19일이다. 하버 브리지를 건설하자고 제안된 지 105년 만에 이뤄진 일이다. 하버 브리지는 8차선으로 된 도로와 두 개의 철로, 보행자 도로, 자전거 도로가 나 있다. 전체 길이는 1149m이다. 해면에서 도로까지의 높이는 59m. 싱글 아치 교량 중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다리이다.

하버 브리지는 인근의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와 함께 시드니뿐만 아니라 호주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시드니 주민들 일부는 시드니 하버 브리지를 ‘옷걸이’(coathanger)라 부르며, 건축 관계자들은 ‘강철 심포니’(Symphony of steel)라고 표현한다.

하버 브리지 꼭대기에는 일반인들도 등반할 수 있는 코스가 관광객에게 제공되고 있다. 한번 오르는 데 198~348달러(성인 기준)로 고가이지만 하루 평균 300명의 관광객이 찾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한국 공영방송에도 소개될 만큼 인기다. 2017년 6월 13일 JTBC ‘뭉쳐야 뜬다’ 팀원들이 140m 높이의 호주 하버 브리지를 정복하는 장면이 방영되기도 했다.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출신인 안정환은 다리 꼭대기에서 "여보! 혜원아 사랑해!"라고 외쳤던 이벤트는 안방의 아내들을 사로잡았다.

만약 한강 다리 중 어느 하나를 등반코스로 만들었다면 어떤 여론이 형성됐을까. 다리 하나를 만들어도 여행상품으로 만들고 사람들과 친근한 다리를 만든다는 생각 자체가 우리와는 다르다.

하버 브리지 건설에 사용된 강철은 3만9000톤이다. 철강재는 대부분 영국 미들러스에서 공수되었고, 일부는 호주 국내에서 조달되었다. 다리의 중량은 5만2800톤이다. 손으로 박은 리벳은 600만개에 이른다. 다리에 칠해진 페인트는 27만2000톤이다. 이후로 시드니 하버 브리지는 인근의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와 함께 시드니뿐만 아니라 호주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인식됐다.

이 다리의 공사비는 625만 호주 파운드가 소요됐다. 대금은 관광수입과 통행료를 거둬 개통 56년이 지난 1988년에 완전히 상환되었다. 개통 80주년에는 금관악기 연주자 11명이 해발 134m 높이의 하버 브리지 구조물 꼭대기에서 소수의 관중을 위한 콘서트를 열었다. 2022년 3월 19일 하버 브리지 개통 90주년 기념일에는 하버 브리지를 처음 횡단했던 증기기관차 3801호가 운행하는 모습을 재현했다. 100주년 행사는 팬데믹으로 기념행사를 축소한 것 같다.

아무튼, 철 구조물로 형성된 다리는 지역의 명물로 인식되면서 세인들에게 특별한 장소로 기억된다. 그런데 답답한 마음은 서울 한강에 걸쳐있는 많은 다리들은 숨죽여 살고 있는 무기물 같다. 스토리텔링도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이제 철강 한류를 대표할 철강 구조물을 만들어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문화적 스토리텔링을 만들기를 기대한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철강 한류를 일으켜야 찾아온 이들에게 다양한 감동을 줄 수 있다. 여행은 힐링을 위한 것이니까.


김종대 글로벌이코노믹 철강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