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NE리서치에 따르면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은 올해 전망치 1210억 달러(161조 7700억 원)에서 2035년까지 약 5배인 6160억 달러(816조 8100억 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글로벌 ESS 시장 역시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2021년 110억달러(약 14조 5800억원)에서 2030년 2620억달러(약 347조 4000억원)로 9년간 24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배터리 핵심 소재인 리튬(Li)의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도 중요해졌다. 그런데, 글로벌 리튬 시장에서 중국의 비중이 만만치 않다. 중국은 지난 10여년간 자국뿐 아니라 약 56억 달러(약 7조 4300억 원)를 들여 호주, 칠레, 캐나다 등 주요 리튬 생산국의 광산을 전략적으로 인수해왔다.
또한, 중국은 광물 형태의 리튬을 가공하는 정제 분야에서 전 세계 약 60%의 점유율을 차지한다. 중국이 리튬 공급을 제한하면 관련 업계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에 세계 각국은 리튬 공급망의 다변화를 꾀하는 동시에, 이를 대체할 신소재 배터리의 발굴과 개발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대체 소재 배터리 1순위 ‘나트륨 배터리’
최근 리튬 기반 배터리를 대체할 신소재 배터리 중 가장 떠오르는 것은 소금의 주성분인 나트륨(소디움)을 사용한 ‘나트륨 배터리’다. 광물 형태는 물론, 지구 표면의 70%를 덮고 있는 바닷물에서도 추출이 가능해 공급망 걱정이 없고, 가격도 리튬의 10~20% 수준으로 매우 저렴한 것이 장점이다. 매장량도 리튬의 400배가 넘는다.
1970년대 미국에서 처음 개발된 나트륨 배터리는 리튬 기반 배터리보다 부피 및 무게 대비 효율(에너지밀도)이 크게 떨어져 가격 대비 '용량'이 중요한 ESS 시장에서는 주목받았지만, 효율이 중요한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요즘 전기차 시장은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무겁고 에너지 밀도는 떨어지지만, 가격은 훨씬 싼 LFP(리튬인산철) 배터리가 시장을 휩쓸고 있다.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주행거리는 짧지만, 약 30% 저렴해 전기차 가격을 1000만원 이상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용 LFP 배터리의 점유율도 2018년 7.1%에서 2022년 27.2%로 3배나 늘었다.
그런데, 최근 CATL 등 중국 제조사들을 중심으로 나트륨 배터리가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도 진출하기 시작했다. 단점이었던 에너지밀도도 어느덧 LFP 배터리의 약 90%까지 따라잡으면서 쓸만해진 데다, 가격은 LFP 배터리보다도 더 저렴하다. 장거리 및 고급형 전기차 시장은 여전히 리튬 이온 배터리가 강점을 보이지만, 도심용 단거리 전기차나 저가·보급형 전기차에서 시장성이 충분히 있다. 업계에서는 조만간 몇 년 내로 나트륨 배터리가 LFP 배터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 때문에 국내를 비롯한 글로벌 배터리 제조사들이 나트륨 배터리에 관심을 갖고 연구개발을 재개하고 있다. 상용화는 중국이 한발 앞섰지만, 원천 기술이나 응용 기술 등은 앞서 나트륨 배터리를 개발했던 미국과 일본이 많이 보유하고 있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소재 확보에서 중국의 영향이 거의 없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미국에서 주목하는 ‘아연 배터리’
미국과 이스라엘 등지에서 주로 연구되고 있는 ‘아연 기반 배터리’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이 생산되고, 매장지도 세계 곳곳에 분산되어 있는 아연(Zn)을 음극재로 사용한다. 에너지밀도가 꽤 높아 많은 양의 전기를 장시간 저장할 수 있고, 나트륨 못지않게 저렴한 비용으로 배터리를 만들 수 있다.
또한, 기존 리튬 기반 배터리보다 5년 이상 수명이 길며, 화재나 폭발 등 위험도 매우 낮다. 나트륨 기반 배터리의 단점인 ‘부식’ 위험도 또한 낮다. 다만, 다른 소재 배터리와 마찬가지로 기존 리튬 기반 배터리보다는 에너지밀도가 떨어져 전기차용 배터리로 쓰기에는 불리하다.
최근 미국의 배터리 스타트업 ‘EoS 에너지’가 미국 에너지부(DEO)로부터 4억 달러(약 5300억 원)에 달하는 투자 대출을 받았다. 미 정부가 직접 투자한 것은 리튬처럼 공급망 우려가 없고, 저렴한 자국산 아연 배터리가 기존 리튬 기반 배터리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DOE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Eos가 거의 모든 재료를 미국 내에서 조달해 시장 변동성과 공급망 문제로부터 제품을 더 잘 보호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EoS는 이미 미국 및 일부 해외 국가의 태양광 발전소 등에 아연 배터리 기반 ESS를 공급하고 있다. 오는 2026년까지 연간 저장 용량을 8기가와트시(GWh)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국내에서도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차세대 2차전지 민관협의체’ 출범식에서 나트륨 이온 배터리와 함께 아연 기반 배터리인 ‘수계 아연전지’가 연구 지원 대상으로 거론되면서 관심도가 높아지는 중이다.
한편, 나트륨이나 아연 외에도 다양한 소재 기반 배터리가 세계 각지에서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 중이다. △기존 배터리의 양극 소재에 알루미늄(Al)을 사용한 ‘알루미늄 배터리’와 △나트륨과 유황(S)을 함께 사용한 나트륨-유황(NaS) 배터리 △수명이 길고 안정성이 매우 높은 ‘바나듐 배터리’ 등이 미래 배터리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연구 개발이 한창이다.

최용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pch@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