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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역작 ‘공작기계’ 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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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역작 ‘공작기계’ 팔린다

현대위아. 예비입찰 실시 SI‧FI 등 참여한 듯
공장 공전관리 핵심 설비 현대정공 시절 키워
국내 2위‧세계 12위권이지만 연매출 1천억원대
3D 프린터, 기능인력 축소 등 제조업 추세 변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오른쪽, 당시 현대정공 사장)이 지난 1994년 9월 4일 미국 시카고 국제공작기계 전시회에 마련한 현대정공 부스를 참관하고 있다. 사진=현대차그룹이미지 확대보기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오른쪽, 당시 현대정공 사장)이 지난 1994년 9월 4일 미국 시카고 국제공작기계 전시회에 마련한 현대정공 부스를 참관하고 있다. 사진=현대차그룹
지난 2018년 6월 27일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주최로 열린 ‘제172회 중견기업 CEO 조찬 강연회’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홍영표 당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현대차그룹은 경쟁력이 떨어짐에도 오너의 이익을 위해 공작기계를 만들고 있다”며 “중견기업들이 잘 하도록 매각 등 빨리빨리 정리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그룹에서 공작기계를 만드는 계열사는 현대위아다. 그때만해도 재계는 홍 원내대표 발언이 대기업 일감몰아주기 해소와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확대 등을 위한 압박의 일환이라고 풀이했고, 공작기계 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목했다.

6년 만에, 그의 압박은 현실이 됐다. 다만, 정부의 강압은 아니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지난 17일 현대위아와 현대위아 공작기계사업부 매각주관사 삼정KPMG는 예비입찰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숏리스트(적격인수후보)를 선정해 연내 매각이 목표로, 전략적투자자(SI) 2곳, 재무적투자자(FI) 2곳 등 약 4곳이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위아도 이와 관련, “수익성 강화를 위해 매각을 포함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중이고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는 게 공식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공작기계는 ‘기계를 만드는 기계(Mother Machine)’로 불리며, 공정관리와 제품 품질의 기반이 되는 핵심 솔루션이다. 공작기계를 어떻게 배치하고 어떠한 순서로 제품을 생산할 때 가장 이상적인 품질이 나오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에, 제조 경쟁력을 좌우하는 공정관리는 제조업체의 일급기밀로 분류된다.

현대위아는 현대차그룹 유일의 공작기계 설비제작‧공급 계열사로 2023년 기준 이 부문에서 국내 2위, 세계 15위의 시장 점유율을 갖고 있다. 지난해 기준 현대위아의 매출액은 8조5903억원이었으며, 공작기계부문은 약 6184억원으로, 7.3% 비중을 차지했다.

회사는 물론 현대차그룹 내에서 본다면 규모는 매우 미비하다. 하지만, 범 현대그룹이 철을 재료로 중후장대 제품과 설비를 제작‧판매하는 중공업이 주력이었고, 현대차그룹 또한 모빌리티 부문의 수직계열화를 이뤄낸 만큼 공작기계 사업의 중요성은 매출 규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도 공작기계 사업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경영인으로서의 능력을 쌓아나가던 현대정공과 현대자동차서비스 대표이사 시절 일궈낸 다수의 사업 가운데 현대차 지붕 아래서 현재까지 생존해 있는 몇 안되는 것중 하나다.

현대정공은 1987년 정 명예회장(당시 사장)의 지시로 공작기계 사업 참여를 검토한다. 자동차 생산라인에 쓰이는 핵심 공작기계의 국산화와 더불어 수출시장을 개척하겠다는 의지에 따른 것이다.

1988년 정몽구 사장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회장에게 공작기계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보고했고, 창업회장은 “기왕에 하려면 제대로, 더 큰 규모의 공장을 지어서 해보라”고 격려했다. 재검토 작업을 통해 1990년 1월 총 1028억원을 투자해 울산공장 제2야드에 총 1만5000평 규모 부지에 공장단지를 건설하는 계획을 확정했다. 착공 18개월 만인 1991년 10월31일 공장을 준공하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출발은 쉽지 않았다. 공작기계사업에서 득이 되는 것은 '현대'라는 브랜드뿐이었다. 그룹 의존도가 거의 없었고 지원도 못 받았다. 때마침 국내경기가 후퇴하면서 시장 수요도 감소한 데다가 업체의 난립에 고기술 수입품의 저가공세까지 겹쳤다. 다른 기업이라면 접어 버렸을 테지만 정 회장은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내수시장에서는 판매망과 사후 서비스를 강화한 덕분에 기종별로는 평균 30%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했다.

해외시장 진출도 적극 나섰는데, 1994년 7월 시카고 국제 공작기계 전시회에는 정 회장이 직접 참석해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성병호 전 INI스틸(현 현대제철) 사장은 “정밀기계인 공작기계는 기업에는 자산에 해당되는 기계라 해외에서 한국산 공작기계는 거의 알아주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규모가 작은 회사들이 주로 우리의 고객이었는데 수익이 굉장히 빡빡해 고전해야 했다. 여러 가지로 시장 개척이 어려웠지만 정 회장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꾸준히 신제품 개발력을 높여 나갔다”고 설명했다.

정 회장은 사업초반 기선을 잡아야 한다는 목표에 따라 선진국인 독일 등에서 공부한 고급인력들을 대거 유치해 기술연구소에서 공작기계 국산화 개발에 전념토록 했다.

현대위아 관계자는 “1991년 공작기계 공장이 준공됐을 때만 해도 일본은 현대가 세계적인 수준에 오르려면 15년 이상은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며 “하지만 우리는 단시일 내에 수준을 올려 사업을 시작한 지 불과 4년 만에 미국·유럽에 수출하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품질도 일제와 손색이 없는 수준이어서 일본 사람들이 놀라고 당황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공작기계 시장은 현대위아와 DN솔루션즈, 화천기계가, 산업기계는 현대위아와 현대로템, 심팩 등 3곳의 시장 점유율이 80% 내외로 외견상 독과점 구조를 이루고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으나 현대위아는 6000억원대 매출로 공작기계와 산업기계 국내 시장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공작기계는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라 다수의 업체가 시장에 참여한다. 점유율은 낮더라도 특정 품목에서 강점을 가진 강소기업이 많기때문에 전체 점유율이 높다고 시장을 독점하는 게 아니다. 현대위아가 점유율이 높지만 현대차 공장에 사용되는 모든 공장기계를 공급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 수많은 기계를 모두 만들 수도 없거니와 그럴 경우 수익성 문제로 회사가 자멸할 수도 있다.

현대위아가 공작기계 사업을 떼내도 회사는 큰 타격을 입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업을 유지했던 이유는 현대차그룹 계열사 사업장 내 공정관리 기밀을 지킨다는 필요가 컸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런 점을 간과하고, 6년 전 정부는 현대차그룹이 중견‧중소기업의 영역을 침범해 대기업 횡포를 부린다고 낙인찍었다. 현대위아 공작기계 사업부문이 분리될 경우 그만한 중견기업 하나가 더 생기는 것 이외에는 큰 의미는 없다. 중견·중소 공작기계의 위기는 중국 등 신흥국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측면이 크다.

어쨌건, 중요성을 인식하고도 현대위아는 매각을 결정했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범현대그룹 최초로, HD현대중공업보다 먼저 컨테이너 박스 사업을 세계시장 점유율 1위로 올려놓는 기염을 토했지만, 후일 사업을 중단했다. 사업 영역이 고도화하자, 이에 집중하기 위해 저부가가치 사업을 정리한다는 차원이다. 공작기계도 마찬가지다. 고정밀 제품은 지금도 판로가 열려 있으나, 그렇지 않는 제품은 중국과 인도,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무엇보다도 현대차그룹 사업장내에서도 공작기계 의존도를 줄인 새로운 생산설비로 채워지면서 공정관리의 패턴도 바뀌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공장 자동화의 극단화한 ‘무인화’가 진행되면서 공작기계를 다루는데 투입되는 인력도 줄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다룰 수 있는 기능인력도 감소하고 있는 추세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현대위아가 공작기계 사업을 매각하면, 이 부문 시장은 새로운 주인이 될 기업과 이미 두산그룹에서 독립해 두산공작기계로 있다가 새주인을 맞이한 뒤 이름을 바꾼 DN솔루션즈, 그리고 공업고등학교에서 기능공을 육성할 때 주로 다뤘던 공작기계를 생산하는 등 이 부문만 매진해온 화천기계 등 중견기업 체제로 바뀌게 된다.

여기에 공작기계 사업의 중요성과 시장 규모거 낮아진다는 것은 쇠를 재료로 제품을 만드는 국내 중공업 기업 기반이 축소되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이 제조업 강국 위상을 유지할 수 있는 기간도 짧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