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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에서 350만대로'...수입차, 한국 시장 30년의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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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에서 350만대로'...수입차, 한국 시장 30년의 질주

‘외제차=사치’ 고정관념 깨고 대중화 길로
FTA로 낮춘 관세…350만대 시대 연 수입차
프리미엄 앞세워 국산차 시장 정면 돌파
2000년대 수입차 모습. 사진=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 홈페이지이미지 확대보기
2000년대 수입차 모습. 사진=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 홈페이지
수입차가 한국에 공식 도입된 지 37년 만에 누적 등록 대수 350만 대를 넘어섰다. 한때 연간 판매가 수십 대에 그쳤던 수입차는 이제 전체 자동차 등록 대수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거대한 시장으로 성장했다. ‘외제차는 사치’라는 인식이 강하던 시절은 지나가고 오늘날 수입차는 중산층까지 흡수한 대중차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987년 7월, 정부는 국내 자동차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배기량 2000cc 이상 대형차와 1000cc 이하 초소형차에 한해 수입을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수입차 구매에는 고율 관세와 불리한 세금이 따랐고, 사회 전반에는 국산차를 타야 한다는 정서가 강했다. 도입 초기 벤츠 등 일부 브랜드만 소수 판매되며 시장은 사실상 유명무실했다.

1990년대 수입차. 사진=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 홈페이지이미지 확대보기
1990년대 수입차. 사진=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 홈페이지


1990년대에는 벤츠, BMW, 볼보 등 유럽 브랜드들이 국내에 진출했지만 시장 규모는 여전히 제한적이었다. 연간 판매는 수천 대 수준에 머물렀고, 수입차는 극소수 부유층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대중의 인식과 제도적 제약이 시장 확대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2000년대 들어 외환위기를 딛고 경제가 회복되면서 소비자 인식에도 변화가 일었다. 2002년에는 수입차 연간 판매가 1만6000대를 넘기며 전체 시장 점유율 1%를 처음 돌파했다. 렉서스, 토요타 등 일본 브랜드의 공식 진출은 수입차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합리적인 가격과 높은 연비, 그리고 하이브리드 기술이 중산층 수요를 자극했고, 수입차는 점차 대중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BMW, 벤츠 등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는 고급 이미지와 브랜드 파워를 앞세워 고정 수요층을 구축했다. 2007년 수입차 연간 판매량이 처음으로 5만 대를 넘기며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올랐고, 2010년대 중반에는 시장 점유율이 두 자릿수에 진입했다. 국산차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중심으로 라인업을 재편하는 사이, 수입차는 세단부터 SUV, 하이브리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며 경쟁 우위를 확보했다.

성장세에 불을 붙인 결정적 계기는 자유무역협정(FTA)이었다. 2011년 한-EU FTA가 발효되며 유럽산 차량에 부과되던 관세가 철폐됐고, 뒤이어 한미 FTA까지 시행되면서 미국 브랜드의 국내 진입 장벽도 낮아졌다.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 수입차는 대거 국내 시장에 진입했고, 국산차의 점유율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2014년 수입차 연간 판매는 19만6000대를 기록하며 국산차 시장을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이후 연간 20만 대 이상 판매가 이어졌고, 2020년에는 누적 등록 240만 대, 2024년 말에는 350만 대를 돌파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는 지난해 말 기준 국내에 등록된 수입차 대수가 총 350만8876대라고 밝혔다. 수입차는 특정 계층의 상징에서 벗어나 일반 소비자의 선택지로 자리 잡은 셈이다.

현재 수입차는 중형세단 시장에서 사실상 주도권을 쥐고 있다. 전기차, 하이브리드, 초고가 럭셔리카까지 수입차 브랜드의 포트폴리오는 더욱 다양해졌고, 국산차 브랜드와의 경쟁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수입차 시장은 이제 한국 자동차 산업의 변화를 이끄는 핵심 축 중 하나로 부상했다. 37년 전 금기로 여겨지던 외제차는 오늘날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고, 향후 10년의 시장 지형도 수입차의 전략과 변화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나연진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achel080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