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 앞에 흔들린 기술의 자존심, 기아의 선택

정부의 효율화 압박에도 틈새시장을 활용해 양질의 제품을 소비자에게 소개했던 그 모습이 아니라 수익성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실망감을 넘어 배신감마저 느끼게 하고 있다. 기아의 핵심 전략 모델인 EV5와 목적기반모빌리티(PBV) PV5 이야기다.
두 모델은 전기차 전환에 핵심 모델이 될 것으로 전망되며, 큰 볼륨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제품이다. 이런 제품에 아직 공식적인 발표는 없지만, 국내 3사의 배터리가 아닌 중국 CATL의 삼원계 배터리가 장착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세계 최고를 자부하는 국내 제품의 기술력으로 방어해온 안방 시장을 기아가 자신들의 제품으로 직접 중국에 내주는 형국이다.
글로벌 브랜드들이 선택한 CATL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자국 배터리 업체가 없어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세계가 인정하고 있는 회사가 3곳이나 있다. LG엔솔의 경우 33년간 삼원계 배터리 분야의 기술력을 견인해온 기업이고, 글로벌 소송에서 무조건 승소할 만큼 자체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는 기업이다. 현대차그룹의 계열사에는 이런 LG엔솔과 합작한 배터리 법인 HL그린파워도 있다.
하지만 중국산 제품을 과감히 선택해 국내 시장과 글로벌 시장에 판매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기아다. 하다못해 국내 생산분을 내수 시장에 판매할 때 국산 배터리를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이런 선택을 과감히 포기했다.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전략으로 풀이할 수도 있지만 한국 시장에 그것도 볼륨 모델에 중국산 배터리를 사용할 이유는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현대차도 중국산 배터리를 사용한 모델을 소개한 바 있지만 볼륨 모델에서는 이를 피했다. 많은 사람의 선택을 받을 모델에 제품 성능을 최대한 끌어내 상품성을 어필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기아는 이런 상식을 포기하고 수익성에만 집중했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든 결정을 했다.
한국 기업이 중국 기업의 배터리에 의존한다는 것은 향후 글로벌 긴장 상황에서 공급망 리스크를 자초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제품 신뢰도에도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CATL 배터리는 급속충전 속도와 에너지 밀도에서 아직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CATL 제품이 성능 면에서는 K배터리와 비슷한 수준까지 따라왔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런 이론대로라면 지금까지 주장해온 그들의 브랜드 인지도와 제품의 신뢰도 역시 의미 없는 주장에 불과하다.
성능 면에서 차이가 없다는 주장을 자동차로 옮겨오면 소비자도 굳이 비싼 금액을 더 지불하고 인지도 높은 브랜드의 차량을 구매할 이유도 없다. 고객의 신뢰를 바탕으로 성장해온 국내 기업이 중국산 제품을 통해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을 펼치며 할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전기차 시장이 수익성 확보를 위해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알지만, 적어도 그것 때문에 국내 소비자들의 마음에 배신감을 안기지 않길 바란다.
김태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ghost42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