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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중앙은행의 선택, 대담(大膽) 혹은 실수(失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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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중앙은행의 선택, 대담(大膽) 혹은 실수(失手)

반복되는 역사 속에 움츠린 한국경제...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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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8일 터키중앙은행이 기준 금리를 인상했다. 당일 긴급하게 소집된 임시 통화정책위원회의에서 1주일 Repo(환매조건부채권) 금리를 4.5%에서 10%로 5.5% 인상했다. 또한 일일물 오버나잇 금리도 7.75%에서 12.0%로 올렸다. 인상 결정 후 터키 중앙은행은 “앞으로도 물가와 거시경제 안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방지하고자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인상에 대한 전망은 있었다. 에르뎀 바시츠 중앙은행 총재는 이전에도 “(금리인상을 가로막는) 정치적 외압은 없으며 필요하다면 통화 긴축에 나설 수 있다”며 대외적으로 강조했다. 터키 리라화의 속절없는 하락세도 금리 인상이 필요함을 모두에게 납득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5.5% 인상에 전 세계가 놀랐다. 4.5%였던 기준 금리를 그 두 배가 넘는 10%로 인상한 것은 세계 금융사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운 조치다. 외화 부채 상환이 불능 상태에 빠진 것도 아닌데 이런 조치가 나온 것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실제로 터키중앙은행(TCMB: Türkiye Cumhuriyet Merkez Bankasi)은 지난 4일 기준 1천억 달러가 넘는 외환을 보유하고 있다. 지금 터키 중앙은행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혹자는 금융의 역사를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이벤트들이 흩뿌려진 길(Road)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 이벤트들 중 지금 머릿속에 맴도는 것은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지불 유예, Moratorium)선언’이다. 1998년 8월 17일, 과도한 대외 부채와 외환부족에 시달리던 러시아 중앙은행은 루블화 표시 외채에 대한 90일간의 지불유예와 루블화 평가절하를 선언한다. 며칠 전만해도 루블화 평가절하는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사태수습을 위해 급히 휴가지에서 크렘린으로 귀환해야 했다.

그 다음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대로다. 루블화는 폭락했고 루블화 표시 주식, 채권 등 모든 러시아 자산은 시장에서 가치를 잃었다. 결국 러시아는 IMF의 추가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혹독하고 기나긴 긴축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 이후, 러시아에 남은 것이라고는 헐값에 매각된 국유자산과 개혁파의 퇴진으로 만연하게 된 부정부패 그리고 깊은 경기 침체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사건에 있어서 아직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러시아가 ‘루블화 표시’ 채권의 지불유예를 선언한 사실이다. 물론, 당시 러시아의 달러표시 부채는 많았다. 하지만, 1997년 말 기준 1천2백억 달러가 넘는 외채의 상당부분은 과거 파리클럽 채권국과의 협상으로 이미 루블화로 전환되어 있었다. 즉, 채권 만기가 돌아오면 러시아 정부는 루블화를 발행해서 상환할 수 있었다.

가치가 크게 하락한 루블화로의 상환에 따른 도의적 비난과 제도적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적어도 모라토리엄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러시아 정부는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대체 모라토리움 선언 몇 시간 전, 모스크바에 도착해 키리옌코 총리와 회담을 한 IMF 대표는 어떤 조언을 한 걸까?
“포기하지 말고 외환보유고를 사용하여 외국투자자에게 계속 돈을 지불하라. 그래야 신뢰가 쌓이기 때문이다. 환율을 방어하고, 금리를 높여라. 필요하다면 우리가 자금을 제공하겠다” 제프리 삭스가 ‘죽음의 키스’라고 표현한 구절로 당시 국제금융계가 러시아에 한 충고다.

한편 중앙은행의 파격적인 금리 인상에도 터키 리라화는 여전히 지난 10년 간 가장 저평가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인상을 전후한 몇 거래일 동안만 잠시 약세를 멈췄을 뿐이다. 증시도 계속 하락하고 있다. 금리가 높아졌다고 터키가 갑자기 투자하고 싶어지는 국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경제 전체는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고 이는 근본적인 성장성을 훼손시킨다. 연 10%의 자본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경제에 공장을 짓고, 지사를 세우는 기업은 없다. 높은 금리와 무리한 환율방어는 투기 자본을 끌어들일 뿐이다.

문제는 국내에서도 ‘터키 같은 일을 방지하려면 상대적으로 국내 금리를 높게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적절한 금리 수준은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고 우리 경제 내에 머물러 있게 한다. 하지만, 다른 쪽으로 국내 경제 주체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자본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본질적인 생산성 향상과 관계없이 이탈 방지를 위해 외국 자본에 높은 이율을 보장해주는 형국으로 볼 수도 있다. 왜 굳이 그런 우리도 그런 선택을 해야 하는가? 이미 지난 해 하반기부터 원화는 전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강한 통화가 되었다. 최근 글로벌 증시 불안에도 산업계에서는 여전히 원화 강세로 인한 수출 경쟁력 약화를 걱정한다. 환율 때문이라면 금리는 훨씬 더 낮아져도 된다.

지난 해 우리가 글로벌 통화 정책의 방향전환으로 금리 인하를 미루는 동안 호주와 유럽 그리고 일본의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내리거나 양적완화정책을 강화했다. 최근 상대적으로 강하게 회복되는 경제권이 어디인지를 보면 어떤 정책적 선택이 옳았는지는 자명하다. 세계 무역 10대국이면서도 스스로 통화정책의 주권을 포기하고, 수동적 대응이 최선이라고 자족하는 현재 우리의 태도가 1998년 아시아외환위기 사태가 남긴 진정한 상처가 아닌가 한다.

오동석 이트레이드증권 채권투자분석부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