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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영화 ‘노아’와 음식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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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영화 ‘노아’와 음식윤리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영화 ‘노아’를 보게 되었는데, 유독 한 장면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노아가 가족들에게 방주를 짓는 이유를 설명하는 장면이다. “우리 가족은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았어. 무고한 자들(the innocent)의 구원자가 돼야 해.” “그게 누구죠?” “동물들(the animals).” “동물들은 왜 무고해요?” “에덴동산에서처럼 살고 있으니까.” 이 장면은 왜 그냥 스쳐 지나가지 않았을까? 내 안의 무엇을 건드린 걸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조연이고, 인간보다 가치가 덜한 동물이 주연인 것 같아 불쾌감이 솟는다. 아마도 내 안에 꿋꿋이 살아있는 ‘인간중심주의’ 가치관을 건드려서인가보다. 몇 해 동안, 음식윤리는 생명존중의 윤리가 바탕이라는 둥, 생명존중의 윤리는 모든 생명체의 생명을 존중하는 윤리라는 둥, 그래서 ‘인간중심주의’보다 ‘비인간중심주의’를 수용해야 한다는 둥… 그동안의 내 말과 글 모두 ‘진짜’가 아니었다는 당혹감… 더욱이 가짜를 진짜인 것처럼 떠벌였다는 자괴감… 내 겉과 속은 얼마나 달랐던지….
이런 모순의 핵심원인은 생각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 마음이 따르지 않는 생각은 공허할 수밖에. 영화 ‘노아’가 거의 끝나가는 부분에서 며느리가 묻고 노아가 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궁금해요. 아이들을 왜 살려주셨죠?” “두 손녀를 보는 순간 내 마음속엔 온통 사랑뿐이더구나.” (중략) “결국 아버님은 자비를 택하셨어요. 사랑을 택하셨죠.” 영화 ‘노아’의 핵심은 사랑이다. 사랑이 없다면 노아도 방주도 동물의 생존도 인류의 생존도 무의미하다.

그러면 음식윤리도 사랑이 없으면 무의미할까? 인류의 생존에서 출발해보자. 인류의 생존이 지속되려면 음식이 필요하고, 음식을 얻기 위해 자연과 공존해야 하고, 인간과 공존해야 하고, 그리고 음식의 본질도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인류의 음식인 생명체들은 자연에 존재하므로 자연과 공존해야 인류는 생존할 수 있다. 그래서 인류는 ①생명존중의 원리 ②환경보전의 원리를 지켜야 한다. 둘째,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홀로 생존할 수 없어 다른 인간과 공존해야 인류는 생존할 수 있다. 그래서 인류는 ③정의(분배, 진위)의 원리 ④소비자 최우선의 원리를 지켜야 한다. 셋째, 음식의 본질인 양, 맛, 영양이 적절하고 안전성이 보장되어야 인류는 생존할 수 있다. 그래서 인류는 ⑤절제와 균형의 원리 ⑥안전성 최우선의 원리를 지켜야 한다.

그런데 윤리의 이론, 원리나 규칙이 훌륭하면 누구나 윤리적으로 행동할까? 윤리는 사람이 지키는 것이다. 지킬 마음이 없으면 소용없고, 지킬 마음은 사랑이 있어야 생긴다. 자연과의 공존은 자연애(自然愛), 즉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인간과의 공존은 인류애(人類愛), 즉 인류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하며, 음식의 본질 충족은 자애(自愛), 즉 나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

세 사랑 중에 자연애가 가장 멀고, 그다음 인류애, 마지막이 자애다. 나에 대한 사랑은 쉽다. 맛, 영양, 안전한 음식을 적절히 먹으면 되니까. 물론 먹음의 절제가 마냥 쉽지는 않지만, 누가 뭐래도 나로부터 멀수록 사랑하기 어렵다. 생명존중과 자연에 대한 사랑은 특히 그렇다. 그래서 상어를 보호하자면서 샥스핀을 먹는 모순이 생긴다. 그래도 영화 ‘노아’를 보고 느낀 바 있다니 믿어보자. 앞으로 자연과 생명을 사랑하려 좀 더 애쓰지 않을까?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