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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성북동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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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성북동 산책

성북동을 걸었다. 한양 도성의 북쪽 마을, 그래서 성북동(城北洞)이라 이름 붙은 이 동네는 예로부터 작가들의 고향이라 불렸다. 북악산과 어우러진 경관이 수려하여 누구나 한 번쯤은 살고픈 동네로 손꼽히는 곳이다. 딱히 별다른 목적이 없다 해도 고택과 한양 도성을 따라 걷다 보면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져 누구와 걸어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걷기 좋다. 한성대입구역에 내려 만해가 머물렀던 심우장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오월이라지만 일찍 찾아든 더위 때문에 햇볕이 따갑다. 햇살을 피해 골목길을 따라 걷다 발길이 머문 곳은 ‘최순우 옛집’이다.

제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이자 한국미술사학회 회장을 지낸 혜곡 최순우 선생이 1976년 말부터 말년을 보내며 대표작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집필한 곳이다. 1930년대 경기 지방 한옥 양식이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소담한 안뜰과 뒤뜰에 그의 손길이 그대로 느껴진다. 한때 재개발로 인해 헐릴 뻔한 것을 2002년 ‘내셔널트러스트’에서 시민 성금으로 지켜내 지금은 ‘시민문화유산 1호’로 운영되고 있다.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자산 기증과 기부로 보존 가치가 높은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확보하여 시민들 소유로 영구히 보존, 관리하는 순수 비영리 민간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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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따라 걷다 보면 청록파 시인들이 시를 이야기했던 집은 1968년 철거돼 터만 남았고, 도로변에 격자문과 작은 마루, 여러 개의 의자가 놓인 방우산장 조형물이 있다. “마음속에 소 한 마리 키우면 직접 소를 키우지 않아도 소를 키우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던 시인 조지훈은 자신이 살던 집을 ‘방우산장(放牛山莊)’이라 불렀다. 조지훈 시인의 방, 그의 삶의 공간을 재현한 곳이다. 조지훈이 살았던 시대상을 고려해 한국 전통가옥의 마루와 처마를 살리고 그 안에 자연 공간을 둬 내부와 외부 공간을 동시에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이미 사라진 시인의 집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보고 있으면 지킨다는 의미를 절로 곱씹게 된다.

조선 시대 왕실 의례 중 하나인 선잠제를 올리던 선잠단지를 지나 조금 더 오르다 보면 문인들의 사랑방이었던 상허 이태준의 수연산방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순수문학을 표방했던 구인회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김기림, 정지용, 이상, 김유정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문인들은 이곳에 모여 시와 문학과 삶을 논하며 밤을 지새웠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사랑방 역할은 여전하다. 찻집으로 변모한 수연산방엔 평일 오후에도 차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누구나 문지방만 넘으면 따뜻한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옛 문인들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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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건너면 독립운동가이자 승려, 시인이었던 만해 한용운이 말년을 보낸 심우장으로 가는 계단이 보인다. 심우장(尋牛莊)이란 당호는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심우(尋牛)에서 유래한 것이다. 삼일운동 후 옥고를 치르고 셋방살이를 하던 한용운이 지인들의 도움으로 지은 집인데 북쪽을 향해 있다. 남향으로 터를 잡으면 조선총독부와 마주 보게 돼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성북동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심우장 툇마루에 앉아 숨을 고르며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데 담 너머로 유독 흰 꽃을 가득 피워 단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띈다.
마치 흰 구름을 이고 선 듯한 나무는 다름 아닌 개회나무다. 개회나무라는 이름은 회목나무에 비해 못하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이름과는 달리 새하얀 꽃과 매력적인 향기를 지닌 멋진 나무다. 봄날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서양수수꽃다리(일명 라일락)와 유사한 우리 나무로 봄에 연한 보라색 꽃이 피는 서양수수꽃다리와 달리 개회나무는 여름이 시작될 무렵에 새하얀 꽃을 피우는 게 특징이다. 예술 향기, 꽃향기에 그을린 성북동 산책은 향기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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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