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1971년 8월15일의 일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무조건 항복한 날을 기리는 미국의 승전 26주년 기념일이었다. 그날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느닷없이 중대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의 돈인 달러를 더 이상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미국은 그 이전까지 이른바 금태환 제도를 채택하고 있었다.
금태환 제도란 화폐 가치를 일정량의 금에 고정한 다음 화폐 보유자의 요구가 있을 때 중앙은행이 이를 금으로 교환해 줄 것을 보장한 통화 체제이다. 미국 달러화의 금태환제도는 1944년 처음 도입됐다. 당시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연합국 측은 전후 세계 경제를 이끌어갈 새로운 경제 체제를 논의하고 있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이라는 세계의 중앙은행을 설립해 이를 중심으로 질서를 규획해 가자는 데에는 이의가 없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IMF의 중심 통화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첨예하게 갈라졌다. 서로가 자국의 통화를 중심 통화로 채택하려고 나서는 바람에 합의가 이루어 지지 않았다. IMF의 중심 통화를 채택되면 그 통화는 바로 세계의 그 기축통화가 된다. 기축통화의 엄청난 혜택을 놓고 줄다리기를 했던 것이다.
2차 대전 이전까지는 영국의 파운드화가 세계의 기축통화였다. 두 차례 세계 전쟁을 거치면서 영국은 국고가 이미 바닥이 난 상태였다. 빚투성이인 나라의 돈을 새로 출범하는 IMF의 중심 통화로 채택할 수는 없었다. 다급해진 영국은 경제학자 케인스가 고안한 방코르(Bancor)를 IMF의 중심통화로 채택하자는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미국은 그 대신 달러화를 중심 통화로 채택하자고 제안을 한다. 특정한 나라의 돈을 중심통화로 채택했을 때 가장 우려되는 점은 그 나라가 마구 돈을 찍어 화폐 가치를 추락시켰을 때 글로벌 경제가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나온 것이 바로 금태환 제도이다. 달러를 금에 연동시키면 무제한의 통화 증발을 막을 수 있다. 이 금태환을 조건으로 미국 달러가 마침내 IMF의 중심통화로 채택된 것이다. 교환비율은 금 1온스당= 35 미국 달러였다. 금태환제도를 통해 미국 달러는 단순한 종이 화폐 이상의 권위를 인정받았다. 미국 달러화는 이때 부터 언제든지 실물의 금으로 교환이 가능하다는 금 태환권의 신뢰를 바탕으로 전세계 폭넓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미국 달러화의 글로벌 기축통화 지위는 이처럼 금태환 제도로부터 나왔다. 경제학의 세계에서는 금태환제도를 Gold-Dollar Standard로 부른다. 화폐 발행량이 보유한 금의 양에 의해 제한됨에 따라 무분별한 통화 증발을 억제하여 인플레이션을 방지하고 글로벌 환율 안정을 도모하는 데에 매우 유용했다.
이 제도는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으로 재정 적자가 심화되고 금 보유고가 급감하자 더 이상 금태환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71년에 와서 달러의 금태환 정지를 전격 선언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닉슨 쇼크'라고 부른다. 닉슨 쇼크로 미국 달러화는 하루 아침에 금으로 교환할 수 없는 그저 그런 종이 돈으로 전락해버렸다. 미국의 위상은 한꺼번에 크게 추락했다. 미국 뿐 아니라 세계의 금융질서도 크게 흔들렸다. 그 어떤 돈도 신뢰할 수 없는 대혼돈의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돈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국제 무역도 사실상 마비 상태에 들어갔다.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사실상 패권국가로 군림해왔다. 패권국가(Hegemonic State)한 압도적인 국력을 바탕으로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국가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세계를 움직이는 실력자이다. 자기의 가치관이나 체제를 국제 표준으로 정립할 수 있는 나라를 가리킨다. 패권국가로 군림하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한다. 군사력 경제력 그리고 문화 영향력 등 다양한 힘이 필요하다. 현대 시장경제 사회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기축통화이다.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기축통화를 보유하면서 금융 질서를 통제할 수 있어야만 패권을 유지할 수 있다. 미국은 1971년 금태환 제도를 스스로 포기하면서 이 기축통화의 지위도 잃었다. 미국의 패권이 무너진 것이다. 패권을 상실한 미국은 한마디로 종이 호랑이로 전락했다. 미국의 말은 국제사회에서 더 이상 먹혀들지 않았다. 무주공산이 된 패권을 잡겠다며 많은 나라들이 경쟁적으로 나서는 바람에 세계는 혼란의 도가니로 변했다. 그야말로 서로 물고 뜯는 약육강식의 아수라장이었다.
미국으로서는 일대 위기였다. 닉슨 대통령은 이 위기를 돌파할 새 카드를 준비한다. 그것이 바로 페트로 달러이다. 페트로 달러(Petrodollar)란 석유에 달러를 더한 합성어이다. 구체적으로는 원유 및 천연가스를 거래할 때 반드시 달러만 사용토록하는 협약이다. 닉슨 쇼크로 금태환 제도가 붕괴되자 미국은 달러 가치를 뒷받침할 새로운 수단이 필요했다. 1974년 초 미국은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전략적 협정을 체결했다. 사우디가 원유 결제를 오직 달러로만 하고 남는 달러로 미국 국채를 매입하는 것이다. 미국은 그 반대 급부로 사우디에 군사적 보호와 안보를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다른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 국가들도 사우디의 결정을 따랐다. 달러는 '검은 황금'이라 불리는 석유와 결합하면서 기축통화의 지위를 다시 찾았다. 미국 달러화는 금태환을 포기하면서 IMF의 중심통화의 지위는 상실했지만 산업사회에서 꼭 필요한 석유를 사기 위해서는 반드시 준비해야만 하는 사실상의 중심통화 즉 기축통화로 다시 살아난 것이다.
페트로 위안의 부상은 미국에겐 악몽이다. 위안화 거래가 확산되면 산유국의 미국 국채 수요가 줄어 금리가 오르고 막대한 부채에 대한 이자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달러 가치 하락과 함께 기축통화국 지위가 흔들릴 수도 있다. 미국이 과거 페트로 달러에 대한 도전이 나올 때마다 신경질 적인 반응을 보인 이유이다. 이란 전쟁은 엉뚱하게도 페트로 달러와 페트로 위안의 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