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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렌즈] 미국 현역 의원 무더기 불출마가 달갑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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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렌즈] 미국 현역 의원 무더기 불출마가 달갑지 않은 이유

당파색이 더 짙은 투사형 신인 입성으로 정치 퇴보 악순환 조장

한국과 미국에서 2024년은 선거의 해다. 한국에서는 4월에 총선이 있다. 미국은 11월에 대통령과 상원의원 100명 중 3분의 1, 하원의원 435명 전원을 새로 뽑는다.

선거전의 첫 단추는 출마자 선정이다. 한국은 주요 정당이 후보를 공천하고, 미국에서는 중앙당의 개입 없이 지역구에서 당내 경선을 통해 후보를 선출한다. 어느 쪽이든 출마 희망자가 출사표를 던져야 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또한 한·미 양국이 여야 간 ‘막가파’식 극한 대결로 정치권과 사회가 두 동강이 난 상태라는 점도 공통점이다. 한국이나 미국이 모두 총만 들지 않았을 뿐 ‘내전’ 중이다.
정치와 민주주의가 이처럼 퇴보하는 일차적 책임은 그 누구보다 대통령, 정당 대표를 비롯한 정치 지도자와 의원 등 정치인에게 있다. 미국의 일부 현역 의원들은 민생과 국가의 진로보다는 당쟁에만 몰두하는 정치 현실에 책임감과 환멸을 느낀다며 무더기로 불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미국 언론 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11월에만 모두 13명이 불출마 선언을 했다. 이런 은퇴 선언 의원 수는 월간 기준으로 2011년 이후 가장 많았다. 선거를 1년가량 앞두고 벌써 현역 상하 의원 중에서 불출마 선언자가 38명에 이른다. 미국 언론은 이번에 올해 12월과 내년에 불출마자가 많이 늘어나 2018년과 2022년 당시의 현역 의원 55명 불출마 기록이 깨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줄잡아 현역 상하 의원 중 최소한 10% 이상이 일단 자진해서 더는 선거에 나가지 않기로 했고, 이 비율이 갈수록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이들 의원이 모두 정치 실종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불출마 결행을 한 것은 아니다. 더 큰 정치적 야망과 대학 총장 등 다른 좋은 자리가 있어 현직을 내려놓는 사례도 많다. 내년 하원의원 선거에 나서지 않겠다고 한 민주당 의원 9명은 상원의원에 도전한다. 딘 필립스 하원의원(민주, 미네소타)은 대권 출마를 선언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올해 초까지는 은퇴 선언 하원의원 중 상당수상원의원직을 노렸지만, 최근에는 의회 기능 마비 등을 이유로 정계를 떠나려 한다고 전했다.

미국에서는 현역 상하 의원 당선율이 90%를 훨씬 넘는다. 불출마 의원들은 당선이 거의 보장돼 있지만, 스스로 의원직을 내려놓으려고 한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 당시에 상원의원 선거 33곳에 출마한 현역 의원은 전원 당선됐다. 재출마한 하원의원은 94.5%가 당선됐다. 미국에서는 상하 의원 선거구에서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을 치르기에 현역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현역이 선거 자금 모금 능력에서 신인 도전자를 압도하는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신인의 정계 진출이 그만큼 어렵다.

한국에서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중진을 포함한 여야 현역 의원들이 지역구를 지키려고 사투를 벌인다. 국민의힘 혁신위원회당 지도부와 중진, 친윤 의원들의 총선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를 요구했으나 메아리 없는 외침이었다. 한국에서는 현역 의원의 불출마를 ‘희생’이나 ‘혁신’으로 포장하려 하지만, 이마저 쉽지 않다.

문제는 현역 의원들이 퇴장하면 정치가 발전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한국은 몰라도 최소한 미국은 그렇지 않다. 미국에서는 그나마 소신을 지키면서 정쟁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의원들이 정치에 염증을 느껴 떠나면 그 자리를 당파 색이 더 짙은 투사형 신인이 메운다. 이렇게 되면 정치가 갈수록 더 퇴보하는 악순환 구조 속으로 빠져든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