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해외로 도주했다고 안심할 바는 못 된다. 2022년, 110억원의 사기를 치고 케냐로 도주한 사기꾼이 12년 만에 국내로 붙잡혀왔다. 횡령범 역시 필리핀으로 도주했음에도 인터폴 적색수배 대상이 되어 추적되다가 1년 4개월 만에 잡혔다. 그는 풍족한 돈으로 호화로운 리조트를 전전하며 도망 다녔으나 며칠 전 강제 송환되었다.
재산 범죄의 완성은 거액의 돈을 추적당하지 않고 영원히 은닉하는 것이다. 따라서 범인은 돈세탁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적발되어서 감옥에 잠깐 다녀오는 것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그보다는 돈을 빼앗기지 않게 잘 숨겨두는 것이 훨씬 중요한 문제가 된다.
차명계좌를 이용하여 범죄수익을 여러 계좌로 분산 이체하거나, 계좌이체를 여러 번 거듭하여 추적을 어렵게 하거나, 중간에 현금으로 인출해서 합법적인 돈과 섞은 다음 다시 여러 계좌에 입금한 후 인출하기도 한다. 부동산이나 사치품에 투자하기도 하고, 외환거래나 전신송금의 방법을 쓰기도 한다. 최근에는 사기, 횡령, 마약 거래, 도박, 외환관리법 위반 등으로 취득한 불법 자금을 세탁하는 데 가상화폐가 주로 이용되고 있다.
가상화폐는 블록체인 상 모든 거래기록이 남고 실시간으로 공개된다. 하지만 거래내역을 추적해도 거래 당사자가 누구인지 파악할 수 없다. 다크 코인이라면 거래내역까지 숨길 수 있어서 추적이 거의 불가능하다. 가상화폐거래소에 차명으로 범죄수익을 입금한 뒤 가상화폐로 환전하여 다른 거래소로 전송하고 거래소를 여러 차례 이전하며 추적을 회피한 다음 법정화폐로 인출하면 출처를 숨길 수 있다.
이러한 자금세탁을 막기 위해서 특정금융정보법에서는 트래블 룰(전산송금시 정보제공의무)을 규정하고 있다. 국내 가상화폐거래소 사업자가 다른 사업자에게 100만원 이상의 코인을 송금할 때는 송·수신인의 신원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따라서 거래 당사자를 알 수 있고 돈의 출처를 알 수 있다. 그러나 P2P 방식의 거래이거나 해외 거래소를 통해서 송금할 때는 트래블 룰이 적용되지 않는다. 물론 이 사건 범인 역시 국내 거래소를 통해서 거래한 것이 아니므로 추적이 어렵다.
재산을 추적해도 범죄수익을 몰수하려면 범인의 전자지갑 주소와 개인 키를 알아야 한다. 이를 통해 범인이 보유한 코인을 특정하고 이를 수사기관이 생성한 전자지갑으로 이체하여 전송받는 식으로 압수해야 한다. 그러나 범인이 본인만 알고 있는 전자지갑 주소와 개인 키를 끝까지 밝히지 않으면 몰수 추징 판결이 나오더라도 집행이 불가능하다.
범죄수익 박탈에 있어서 핵심적인 부분은 자금세탁 수사이고, 자금세탁의 수단으로 가상자산이 필연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 범죄수익은 재범의 유인(incentive)이 됨은 물론이고 형사처벌을 기꺼이 감수하게 만드는 중요한 동기이다. 범죄로 인한 이득이 범죄 비용보다 크다는 인식이 근절되지 않는 한 대형 경제 범죄는 결코 줄어들 수 없다. 끝까지 추적하여 빈틈없이 보전하는 것, 그게 정의(正義)이다.
민경철 법무법인 동광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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