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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렌즈] '그럼, 강아지는 누가 키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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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렌즈] '그럼, 강아지는 누가 키우나'

세계 최저 출산율 한국에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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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아이폰 제조업체인 대만 폭스콘 창업자 테리 고우(궈타이밍)가 올해 1월 대만 총통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려다가 중국의 압력에 굴복해 꿈을 접었다. 고우는 출마 준비를 하면서 이색 공약을 내걸었다. 정부가 출산 가정에 반려동물을 선물하겠다고 했다. 그는 “애를 낳지 않으면 앞으로 반려동물은 누가 키우냐”고 했다. 대만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결혼 또는 동거 커플이 아이 대신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되면 반려동물만 늘어나고, 이들을 돌볼 사람이 사라지는 사태가 올 수 있다는 점에서 고우의 공약은 설득력이 있다. 대만은 출산 장려 예산으로 30억 달러(약 4조원)를 쏟아부었지만, 출산율 하락을 막지 못했다.

세계는 지금 국가 소멸 위기로 치닫고 있는 한국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세계의 주요 언론은 사상 최저치로 내려가고 있는 한국의 출산율 소식을 대대적으로 생중계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한국이 조금 앞서가고 있을 뿐이고, 다른 나라들도 곧 ‘제2의 한국’이 된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지난 50년 사이 글로벌 출산율이 2.3을 기록해 절반 수준으로 내려갔고, 대부분 선진국의 출산율은 ‘인구 대체 출산율(replacement fertility rate)’ 2.1을 밑돌고 있다”고 보도했다. FT는 “신흥국의 출산율도 선진국과 비슷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이번 세기말까지 지구상의 거의 모든 나라 인구가 감소할 게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세계 각국은 지금 ‘출산 촉진(pronatalist)’ 정책을 총동원하고 있다. 현금 지급, 부모 유급 휴가, 보육과 탁아 지원 등 친(親)가족 정책이 세계 곳곳에서 속속 나온다. 유럽 국가들은 1980~1990년대에 이미 출산율 급락 사태에 직면했기에 다른 나라에 비해 조금 앞서 나가고 있다. 오스트리아는 출산 휴가를 2.5년으로 늘렸다. 독일은 1세 이상 모든 아동에 대해 ‘보육받을 권리’를 부여했다. 러시아 정부는 두 번째 자녀부터 출생하면 7000달러를 준다. 이탈리아와 그리스도 정부도 출생 보너스를 지급한다. 헝가리는 신생아 보육 지원을 위해 3만 달러까지 대출을 해주고, 셋째가 태어나면 이 대출금을 탕감해 준다.
문제는 이 모든 대책이 크게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의 출산 장려 정책은 출산 시기를 조정하는 데 도움이 됐을 뿐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출산율 저하에는 경제·사회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어 장기적으로 이 흐름을 바꿀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교육 수준과 노동 생산성이 올라갈수록 출산 ‘기회비용’이 커져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국가 소멸 사태를 지켜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인구 문제 전문가들은 코로나 팬데믹 당시에 주요국의 출생률 변화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팬데믹이 지구촌을 강타하자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회적 불안과 공포로 출산율이 내려갔다. 반면에 노르웨이와 핀란드 등 일부 국가에서는 출산율이 거꾸로 올라갔다. 핀란드의 인구학자 제시카 니센은 “팬데믹 혼란 속에서도 정부가 사태를 잘 해결할 것이라는 신뢰도가 높은 소수의 국가에서 출산율이 올랐다”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가 출산 장려책을 검토하면서 국민적 신뢰도를 끌어올리는 데 신경을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