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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투키디데스 함정..트럼프 스테이블 코인 vs 시진핑 CB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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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투키디데스 함정..트럼프 스테이블 코인 vs 시진핑 CB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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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 소장·경제학 박사
지금으로부터 2456년 전인 기원전 431년 그리스에서 큰 전쟁이 터졌다. 새로 떠오르던 해상 강국 아테네와 기존의 패권국 스파르타가 한판 붙은 것이다. 이름하여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다. 이 전쟁은 그리스와 스파르타의 전쟁을 넘어 인근도 편을 나누어 참전한 이른바 세계대전이었다. 전쟁은 BC 404년까지 무려 27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역사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고대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이 전쟁의 원인을 "아테네의 부상이 스파르타를 두렵게 했고, 그 두려움이 전쟁을 만들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당시 아테네는 경제력과 해군력을 바탕으로 급속히 팽창하고 있었다. 그 이전까지 지중해의 유일한 패자로 군림해왔던 스파르타에게는 큰 위협이었다. 현대 국제정치학자인 하버드대의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는 이 상황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개념으로 재정의했다. 앨리슨 박사는 그의 저서 '예정된 전쟁'에서 지난 500년간 기존 패권국과 신흥세력 간 충돌 사례 16번 중 무려 12번이 전쟁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강대국 간 세력 전이가 있을 때 전쟁은 거의 본능처럼 따라붙는다는 것이다.

요즘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심상치 않다. 관세 전쟁은 단순한 무역 갈등을 넘어 패권 다툼 양상을 띠고 있다. 양국 간 갈등은 정책 충돌을 넘어 죽느냐 사느냐의 건곤일척 사생결단의 승부로까지 치닫고 있는 듯한 조짐이다. 지금의 중국은 고대 아테네처럼 상승 중이다. 미국은 스파르타처럼 반응하고 있다. 중국은 '중국몽'과 '일대일로'를 통해 영향력을 확장해왔다. 미국은 이를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다. 미국의 대중 강경 노선은 바이든 행정부뿐만 아니라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초당적으로 굳어져 유지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충돌은 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두 나라의 무역전쟁은 이미 글로벌 공급망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그 영향은 세계 각국의 경제에 전이되고 있다.

관세 폭탄의 무역전쟁 못지않게 무서운 것이 화폐전쟁이다. 미국과 중국은 수년 전부터 기축통화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기축통화란 국제거래를 할 때 매개로 사용하는 통화다. 통화 사이의 교환수단이 되는 통화다. 국제통화기금, 즉 IMF는 1944년 발족하면서 미국 달러를 세계의 유일한 기축통화로 공인했다. 1979년 미국 닉슨 대통령이 달러 기축통화의 중대 조건이었던 금태환제도를 스스로 포기하면서 그때부터 지구상에서 모든 나라가 누구나 인정하는 합법적 기축통화가 사라졌다. 지금도 국제거래에서 미국 달러를 많이 사용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그동안의 관행이 이어진 것일 뿐 국제법상 공인 기축통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달러는 미국의 국내 통화일 뿐이다. 달러화는 미국의 절대적으로 우세한 경제력을 배경으로 국제사회에서 가장 많이 유통되고 있지만 법적 기축통화는 아니다. 미국의 경제적 지위가 후퇴하면서 달러의 영향력이 점차 감소하고 있다.
이 와중에 가상 암호화폐가 등장하면서 세계는 또 한번 기축통화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먼저 칼을 뺀 곳은 중국이다. 중국은 최근 중앙은행디지털화폐라는 이른바 CBDC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중앙은행이 디지털 화폐를 발행한 것은 전 세계를 통틀어 중국이 처음이다. 그간 물밑에서 추진해온 중국 인민은행의 디지털 화폐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중국은 왜 서둘러 디지털 화폐를 내놓았을까. 미국 뉴욕증시에서는 중국의 디지털 화폐 도입을 미국과 중국의 경제패권 전쟁 차원에서 해석하고 있다. 미·중 갈등이 신냉전 수준으로까지 격화한 가운데 중국이 세계 최초로 법정 디지털 화폐를 내놓는 것은 미국 달러 위주의 국제경제 질서에 도전장을 내민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평가다.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14일 열리는 디지털 화폐 도입 기념식에 직접 참석하기로 한 것도 세계 최초의 법정 디지털 화폐 발행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국영기업 자산을 감독하는 상하이 지부가 국영기업들에게 스테이블 코인 및 기타 디지털 자산의 거래 잠재적 역할을 조사할 것을 촉구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중국의 국영기업 자산을 감독하는 상하이 지부가 국영기업들에게 스테이블 코인 및 기타 디지털 자산의 거래 잠재적 역할을 조사할 것을 촉구했다. 사진=로이터

중앙은행디지털화폐는 뉴욕증시 등에서 거래되는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중국이 도입하고 있는 법정 디지털 화폐는 기존의 지폐나 동전과 마찬가지로 국가가 가치를 보장한다. 민간 기업들이 '제도권' 밖에서 발행한 가상화폐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중국은 이 '디지털 위안'을 나라 밖에 유통해 미국 달러를 바탕으로 한 국제경제 질서에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려 하고 있다. 인민은행은 앞서 디지털 화폐 세미나에서 국제 무역과 결제 업무에서 법정 디지털 화폐 이용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위안화 국제화를 촉진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극단으로 치닫는 미·중 갈등 탓에 중국은 위안화 국제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중국은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오래전 일본을 제치고 세계 경제 2위 자리에 올라섰다. 그러나 국제 결제 수단의 위안화 위상은 매우 초라한 수준이다. 인민은행에 따르면 국제 지급 거래에서 위안화 비중이 1.91%에 그치고 있다. 달러(38.96%), 유로(36.04%), 파운드(6.7%)에 크게 못 미친다. 중국에서는 미·중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을 때 미국이 달러 중심의 국제결제망에서 중국을 배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디지털 화폐는 이 같은 미국의 압력에 대처하기 위한 일차 수단이다. 중국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중국 주도의 경제블록인 일대일로의 육상·해상 실크로드 진영 안에서 이 디지털 화폐로 교환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중국 국무원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일대일로 소속국들과의 위안화 스와프, 청산결제 시스템 구축을 바탕으로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 다음 중국과 무역을 하는 모든 국가에 중국 디지털 화폐 사용을 강제토록 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무역과 투자를 추진할 때 가능한 한 위안화로 가격 책정, 지불, 정산토록 함으로써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미국도 중국에 맞서 한때 CBDC 개발에 나섰으나 트럼프 2기가 시작되면서 전략을 전면 수정했다. CBDC 개발을 중단하고 발행을 원천 차단하는 쪽으로 바꾼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CBDC를 함께 발행할 경우 기존의 달러 기축통화 이점이 사라진다고 본 것이다. 미국은 아예 CBDC 전면 금지법까지 만들고 있다. 이 법안은 연방준비제도가 미국 국민에게 특정 금융 상품이나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앙은행이 직접 개인에게 디지털 달러를 발행·제공하는 구조의 CBDC 모델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미다. 중국 CBDC에 대한 선전포고이기도 하다. 중국은 스테이블 코인에 대해 중국 돈을 미국으로 빠져나가게 하는 미국의 함정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은 CBDC를 전면 금지하는 대신 스테이블 코인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 달러화 미국 국채를 준비금으로 담보하는 달러 스테이블 코인을 활성화시켜 달러 기축통화의 지위를 더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스테이블 코인 활성화를 위한 GENIUS법이 이미 상원을 통과했다. 하원에서는 절차 투표에서 한때 부결되기도 했으나 결국은 통과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트럼프의 스테이블 코인과 시진핑의 CBDC가 현대판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져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