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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렌즈] '1인당 25만원 지급' 공약, 미국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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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렌즈] '1인당 25만원 지급' 공약, 미국이라면

미국은 도시 등 지자체 단위로 저소득층 현금 지원 확산, 공화당은 저지 나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총 13조원의 예산으로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 가구당 평균 100만원의 민생 회복 지원금을 지급하자고 제안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 취약계층에는 1인당 10만원을 추가 지원하자고 했다. 민의힘은 “무책임한 현금 살포 선심 공약으로 매표 행위에 나섰다”(추경호 전 경제 부총리)고 비판했다.

어느 측의 주장이 옳은지 따져보는 데는 현재 미국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일이 참고가 될 것 같다. 미국 전역에서 지금 지자체 단위로 저소득층 주민을 대상으로 한 ‘현금 살포’가 확산하고 있다. 연방이나 주 정부 단위가 아니라 민주당 출신이 지자체장을 차지한 도시와 카운티에서 자체 예산으로 주민에게 현금을 나눠주고 있다. 미국에서 주요 도시에는 흑인·히스패닉 등 소수 인종이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어 거의 예외 없이 민주당이 시장과 의회를 장악하고 있다.

텍사스주의 대도시 휴스턴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휴스턴시는 ‘보장 소득 프로그램(guaranteed-income program)’을 시행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 제공했던 재난 지원금처럼 아무런 전제 조건 없이 일정 소득 이하 주민에게 월 500달러(약 67만원)를 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스톡턴, 앨라배마 버밍햄, 켄터키 루이스빌, 테네시 내슈빌시 등이 현재 보장 소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 정치 지형을 보면 도시는 민주당, 시골은 공화당 아성(牙城)이다. 이에 따라 텍사스주처럼 민주당이 도시를 장악해도 공화당이 주 전체를 차지한 사례가 많다. 공화당 출신 주지사들은 도시 단위의 현금 살포를 차단하려고 법과 행정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 텍사스주는 휴스턴시 현금 지급이 위헌이라며 소송전에 나섰다. 아칸소·애리조나·아이오와·위스콘신주도 보장 소득제 시행을 막으려고 한다.

미국 정치권에서 저소득층 대상 현금 지급은 50년 넘게 논의되고 있는 이슈다. 공화당 출신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1969년에 처음으로 현금 지원을 추진했다가 의회의 반대로 시행하지 못했다. WSJ에 따르면 1960~1980년대에는 ‘역(逆)소득세(negative income tax)’ 제도가 미국의 일부 주와 도시에서 시행됐다. 이는 가계 소득이 일정 수준에 이르지 않으면 정부가 역으로 이들 가정에 세금을 내는 식으로 돈을 주는 것이다.

보수의 우상 로널드 레이건과 실용주의자 빌 클린턴 정부 시절인 1980~1990년대에는 보편 복지가 퇴조했다가 최근 들어 부활하고 있다. 지난 2020년 대선 당시 민주당의 예비 후보로 나섰던 앤드루 양이 보편 소득으로 각 가정에 1000달러를 정부가 주겠다는 공약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인 2020~2021년에는 미국 정부가 재난 지원금을 각 가정에 뿌렸고, 이때 들어간 예산이 9310억 달러(약 1256조3800억원)에 달한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미국 가정에 전달된 수표에 자신의 사인을 넣어 한껏 생색을 냈다.

트럼프는 오는 11월 대선을 겨냥해 ‘베이비 보너스’로 신생아 가정에 현금 지원을 하겠다고 공약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중하위 계층의 대학 학자금 빚을 국민 세금을 사용해 지속해서 탕감해 준다.

미국은 날로 악화하는 빈부 격차 해소를 위한 수단으로 저소득층 대상 현금 지급을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다. 한국 정부와 정치권도 총선용 선심 공약이 아니라 진정한 민생 회복 수단을 모색해야 할 때다. 그 방안의 하나로 현금 지원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