궈즈후이는 대만 최고 명문인 국립 타이베이대학 출신이다. 한평생 반도체 사업을 해왔다. 그가 창업한 탑코 사이언티픽은 TSMC의 하청업체다. 우리나라의 총리실 격인 대만 행정원은 그의 경제부 장관 인선에 대해 "궈즈후이는 산업 현장에서 반도체로 잔뼈가 굵어온 인물"이라면서 "대만의 반도체 산업을 한 차원 더 승화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전략산업에 대한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일본 반도체 산업과의 협력 등을 위해 반도체·에너지 분야 경험이 풍부하고 일본어를 공부한 궈 회장을 장관으로 앉혔다는 현지 언론의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대만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회사인 TSMC를 나라 지키는 신령스러운 산, 즉 호국신산(護國神山)으로 불러왔다. 중국이 대만을 무력 공격하려고 해도 반도체를 세계 최고로 키워놓으면 국제사회가 대만의 반도체 기술이 통째 중국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대만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다. 대만의 IC 설계 시장 점유율은 전 세계의 약 24%, 웨이퍼(반도체 원판) 제조 시장 점유율은 약 60% 그리고 고급 제조 공정의 시장 점유율은 90% 이상이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전 세계의 반도체를 아예 대만이 독점적으로 주도하겠다는 것이 라이칭더의 구상이다.
반도체 최대 박람회로 불리는 대만 컴퓨텍스도 반도체의 아버지 옌자간이 기획한 것이다. 대만을 시스템 반도체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거금을 들여 전 세계 반도체 전문가와 기업을 대거 초대하면서 컴퓨텍스를 키워냈다. 옌자간은 총통 시절이던 1978년부터 컴퓨텍스를 준비했다. 반도체·컴퓨터 등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로 하면서 관련 박람회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이다. 올해 컴퓨텍스에는 26개국 1500개 기업이 참여한다. 세계 최강 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 엔비디아의 경쟁업체 AMD의 리사 수 CEO, AI 솔루션 기업 슈퍼마이크로 찰스 리앙 CEO 등이 기조연설에 나선다. 세 사람 모두 대만 출신으로 대만계 미국인이다. 젠슨 황과 리사 수는 대만 남부 타이난 출신의 당숙으로 친척지간이다.
미국 AMD는 약 2100억원을 투입해 아시아 최초의 R&D센터를 대만에 설립하기로 했다. 엔비디아도 1조원을 들여 1000여 명이 근무하는 'AI 혁신 R&D센터'를 대만에 건설 중이다. 전 세계 인공지능 칩 분야 1강과 2강이 아시아 지역 최초의 R&D센터를 대만에 설립하는 것이다. 구글은 일본이나 한국이 아닌 대만에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IT엔지니어를 배치해두고 있다. 대만의 반도체 산업은 거대한 내수시장과 막강한 보조금 정책, 희토류 최대 생산국 등의 힘을 갖고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중국보다 앞서간다.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 TSMC는 3만여 개의 중소 협력업체를 거느리고 있다.
라이칭더 신임 총통은 반도체와 인공지능(AI)에 명운을 걸었다. 라이칭더 총통은 새 정부의 5대 핵심산업으로 반도체·AI·군사·보안·차세대 통신을 꼽았다. 특히 “대만을 실리콘(반도체) 섬에서 AI 섬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반도체와 AI에 올인하겠다는 뜻이다. 라이칭더 총통은 후보 시절 제안한 ‘대만판 실리콘밸리 플랜’도 곧 실행에 옮길 계획이다. 대만 행정원은 반도체 역량 강화를 위한 타오위안·신주·먀오리 대(大)실리콘밸리 계획을 승인했다. 약 1600만㎡에 이르는 과학단지용 신규 용지를 마련했다. 올해 약 3조8000억원을 시작으로 2027년까지 20조원 이상을 투자한다. 주변 TSMC 공장들과 연계해 반도체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대만 정부는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 세제 혜택을 내세워 반도체 기업들을 뒷받침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대만판 칩스법’의 일환으로, 대만 내 투자를 적극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법안에 따르면 반도체 기업에 대해 연구개발 비용 25% 공제, 첨단 공정 장비 신규 취득 시 5% 공제 등 각종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 TSMC는 연간 약 1조2000억원이 넘는 세금 절감 효과를 보게 된다.
옌자간이 초석을 쌓은 반도체 아버지라면 라이칭더는 대륙 중국의 위협 속에서 반도체로 나라를 구한 살아있는 호국신산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대만의 반도체 굴기는 반도체에 나라 경제의 명운을 걸고 있는 한국 경제에도 큰 도전이 될 수 있다. 대만과의 반도체 진검승부가 시작된 것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