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

그러나 21세기 들어 그 전제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기후 위기 대응, 글로벌 공급망 재편, 기술 패권 경쟁, 사회적 수용성과 국제 규범의 충돌까지 에너지 안보를 둘러싼 위협은 훨씬 복합적이고 정교해졌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에너지 공급을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를 다시 전면으로 부상시켰고, 미·중 간 기술 전쟁은 자원과 기술, 표준을 동시에 둘러싼 다중 전선의 전쟁이 되어가고 있다. 에너지 문제는 더 이상 자원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과 외교, 산업과 규범이 맞물리는 종합 전략의 문제로 재구성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에너지 안보란 과연 무엇인가?” 단지 자원을 많이 확보한다고 해서 에너지 안보가 보장되는가? 기술은 누가 주도할 것인가? 국제 통상과 기후 규범의 변화는 우리의 산업과 안보를 어떻게 흔들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단지 학문적이거나 철학적인 것이 아니라 산업 현장과 외교 현장, 지역 정책 현장에서 지금 이 순간 실질적인 압박으로 다가오고 있는 현실의 반영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3년 ‘세계 에너지 전망(World Energy Outlook)’에서 에너지 안보를 “단순한 공급 안정성이 아니라 회복탄력성과 기술 자립, 규범 대응력, 사회적 수용성을 포괄하는 전략적 능력”으로 재정의했다. 물량 중심의 사고를 넘어 기술과 제도, 사회와 외교가 통합돼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IEA는 또한 “기술 집중도가 높고 규범화가 진행될수록 에너지는 산업 문제가 아니라 주권의 문제가 된다”고 경고했다. 이는 에너지 안보를 단지 에너지 정책으로 다룰 수 없는 이유를 보여준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에너지 수입 의존국이다. 원유는 중동, LNG는 러시아와 카타르, 석탄은 호주에 집중돼 있고, 철강·석유화학·반도체·조선 등 주력 산업은 에너지 다소비형 구조다. 에너지 공급망이 흔들리게 되면 수출 기반 제조업 전반에 치명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 동시에 수소·ESS·스마트그리드·SMR 등 전략 기술 분야에서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구조적 취약성과 전략적 기회의 양면이 공존하는 한국은 더 이상 단편적인 공급 안정 논리로는 위기를 넘길 수 없다. 지금의 위기는 새로운 전략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질문을 바꾸는 일이다. “무엇을 얼마나 확보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기술·외교·규범·사회 기반과 통합해 확보하고 유지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에너지 안보는 특정 자원의 문제가 아니라 전략 체계와 정책 정합성의 문제이며, 산업과 외교, 기후와 안보가 교차하는 정책의 핵심축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다시 에너지 안보를 논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