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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에너지 안보 톺아보기] 게임이론으로 풀어보는 에너지 지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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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에너지 안보 톺아보기] 게임이론으로 풀어보는 에너지 지정학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국제정치학 박사)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국제정치학 박사)이미지 확대보기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국제정치학 박사)
2025년 7월, 한국과 미국은 새로운 양국간 통상협정을 발표했다. 미국이 한국 제품에 부과하려고 했던 25% 관세는 15%로 인하되었고, 한국은 향후 3년 반 동안 미국산 LNG 등 에너지 제품을 총 1000억 달러 규모로 구매하겠다고 약속했다.

동시에 한국은 미국 반도체·에너지 산업 등 전략 산업 분야에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한국이 미국의 에너지 공급망과 전략 산업에 깊이 편입하겠다는 명확한 전략 신호로 해석된다.

연간 약 286억 달러에 달하는 에너지 구매 약속은 한국의 전체 에너지 수입(2024년 기준 약 1,280억 달러)의 약 22%에 해당한다. 한국은 2023년 기준으로 미국산 LNG 수입 비중이 약 15%였으나, 이번 협정을 계기로 향후 30~40%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입처 변경을 넘어선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신호탄이며, 한국의 에너지 전략이 미국 중심으로 전환되는 결정적 국면이라 할 수 있다.
게임이론 관점에서 이 구조는 슈타켈베르그(Stackelberg) 게임에 가깝다. 미국은 선도자(Leader)로서 관세 부과라는 압박과 에너지 공급 확대, 투자 유치라는 유인을 동시에 작동시켰으머, 한국은 제약된 조건 속에서 가장 효율적인 대응을 택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효율성이란, 제한된 선택지 내에서 최대 이익을 확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관세 감축을 통해 연간 약 40억 달러의 수출 손실을 막고, 동시에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과 미 투자 유치를 확보한 선택이다. 이는 에너지 안보, 통상 환경, 산업 투자라는 세 가지 축에서 실익을 극대화한 계산된 대응이다.

이러한 게임에서 핵심은 내시 균형(Nash equilibrium)의 형성 과정이다. 미국은 대중 견제와 동맹국 결속이라는 이중 목표를 달성하려 하고, 한국은 경제적 손실 최소화와 안보 동맹 강화라는 목표를 균형시키려 한다. 양국 모두 상대방의 전략에 대한 최적 대응을 선택한 결과, 현재의 합의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나 이 균형이 안정적인지는 외부 변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더욱이 이는 반복게임의 일환으로 해석해야 한다. 한국은 이미 벤처 글로벌(Venture Global), 셰니어(Cheniere), 프리포트(Freeport) 등과 20년 이상의 장기 계약을 체결했고, 미국 LNG 수출 터미널과 국내 저장·운송 인프라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있다. 반복게임에서는 신뢰와 평판이 핵심 변수다. 한국의 전략은 '신뢰할 수 있는 장기 파트너'라는 국제적 신호를 강화하는 것이다.

◇위험요인과 대응전략

그러나 이 과정에는 잠재적 위험요인도 존재한다. 에너지 수입이 특정 국가에 편중될 경우, 지정학적 충돌이나 정책 변화에 따라 심각한 공급 불안정에 직면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이 자국 에너지 우선주의로 회귀하거나 LNG 수출 규제를 도입할 경우, 한국의 에너지 안보는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포트폴리오 분산 이론을 에너지 안보에 적용해야 한다. 카타르, 호주, 말레이시아 등 기존 공급원과의 관계 유지, 캐나다·멕시코 등 신규 공급원 개발, 노르웨이·영국 등 유럽 스팟시장 접근성 확대가 필요하다. 공급원 다변화 전략, 비상시 대응체계 구축, 국내 저장능력 확충 같은 보완 전략이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저장 인프라 측면에서도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현재 한국의 LNG 저장능력은 약 14일분에 불과해 IEA 권고 기준인 90일분에 크게 못 미친다. 평택·통영·삼척 등에 추가 저장시설을 구축하고, 해상 부유식 저장설비(FSRU) 활용도 검토해야 한다.

글로벌 질서가 요동치는 지금, 우리에게는 기술을 질서로 연결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국제 질서를 주도하려면 인증기관, 거래소, 보증기구 같은 인프라가 정책, 산업, 외교와 함께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규칙을 따르는 나라에서 규칙을 만드는 나라로 도약할 수 있다.

한국은 규칙을 만드는 나라가 될 준비기 되어 있는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에너지 허브로 발돋움하면서, 에너지 전환과 기술 혁신을 통해 새로운 국제 에너지 질서를 선도할 수 있는 제도적 역량과 외교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다. 이는 에너지 종속에서 에너지 주도로의 전환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