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민(대한중대재해예방협회장)
숙련된 안전관리자가 24시간 현장을 지키듯 인공지능(AI)이 기업의 든든한 '디지털 파수꾼'으로 나선다.복잡한 법규와 까다로운 안전관리 업무로 고민하던 사업주들에게 AI 기술이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하며 산업안전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최근 여수엑스포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국산업보건학회 하계학술대회는 이러한 변화의 현주소를 생생히 보여준 무대였다.
특히 대한중대재해예방협회가 선보인 AI 기반 안전관리 솔루션과 노사정이 함께한 라운드테이블은 산업안전 분야의 디지털 전환이 더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님을 확인시켜 주었다.
현장이 원하는 실용적 AI의 등장
중소기업 현장에서 안전관리는 딜레마였다. 법적 의무는 까다로워지는데 인력과 예산은 부족하고, 전문성은 갖추기 어렵다. 이런 현실에서 대한중대재해예방협회의 'AI 안전비서 KAPA 솔루션'은 반가운 소식이다.
이 솔루션의 핵심은 '실용성'에 있다. 위험성 평가부터 현장 점검, 법정 교육 관리까지 복잡한 업무를 자동화하되 현장 실무자가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특히 근골격계 부담 조사 같은 전문적 업무를 클릭 한 번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한 것은 중소기업 현장의 고충을 정확히 파악한 결과다.
더 주목할 부분은 AI 챗봇이 사업장별 맞춤형 법령 요건을 실시간으로 안내한다는 점이다.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의 복잡한 요구사항을 일반 사업주가 모두 숙지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때 AI가 개인 법무팀 역할을 해주는 셈이다.
노사정이 그린 협력의 청사진
학술대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노사정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AI 기술에 대한 솔직한 대화를 나눈 라운드테이블이었다. 각자 입장은 달랐지만 중대재해 예방이라는 공통 목표 앞에서 협력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궤도협회 한창운 위원장의 발언은 특히 의미가 컸다. "새로운 기술이 노동자에게 부담을 주는 측면이 있지만, AI가 중대재해와 직업병을 예방할 수 있다면 노동자도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라는 말은 노동계도 기술혁신에 열린 자세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현장 신뢰 확보가 관건이라는 지적은 새겨들을 만하다.
기업에서도 적극적인 반응이 나왔다. GS건설의 AI 번역기와 AI-CCTV 활용 사례는 대기업이 이미 AI 기술을 현장에 적용하며 효과를 보고 있음을 입증했다. "AI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김정철 책임의 발언은 산업계의 인식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부 입장도 고무적이다. 고용노동부 박윤경 과장이 민간과의 협업 의지를 밝힌 것은 정책적 뒷받침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정책과 기술의 동반 성장이 필요하다
대한중대재해예방협회가 제시한 정책 제언들은 현실적이면서도 구체적이다. 중소기업 대상 디지털 안전관리 인프라 확대 지원, AI 안전기술 도입에 세제·재정 인센티브 마련, 컴플라이언스 정착을 위한 제도 보완 등은 모두 현장에서 절실히 필요한 사안들이다.
주목할 점은 협회가 단순히 기술개발에만 머물지 않고 보험, 법무법인과의 협약을 통해 통합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는 중소기업이 실제로 겪는 어려움을 종합적으로 해결하려는 접근법으로 평가된다.
안전관리가 사람에 의존하는 방식이 아닌, 데이터 기반의 예방 중심 경영으로 바뀌어야 한다. 산업안전의 패러다임 자체가 변화하고 있으며, 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경고다.
AI 기술이 중소기업 현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 기술의 접근성이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중소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이라면 의미가 없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함께 기술 개발업체들의 현실적 가격 정책이 필요하다.
둘째, 현장 맞춤형 솔루션이다. 제조업과 건설업 그리고 기업 규모에 따라 안전관리 요구사항이 다르다. 획일적 해법보다는 각 현장에 최적화된 솔루션이 있어야 한다.
셋째, 지속적인 업데이트와 지원이다. 법령은 계속 변화하고 현장 여건도 달라진다. AI 솔루션도 이에 맞춰 지속적으로 발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신뢰 구축이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현장의 우려와 저항을 극복하려면 충분한 검증과 소통이 필요하다.
AI가 만드는 새로운 산업안전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번 학술대회가 보여준 노사정의 협력 의지와 실용적 기술 솔루션들이 만나 중소기업 현장에 실질적 변화를 가져오기를 기대한다. 디지털 안전망이 모든 일터를 보호하는 그날이 멀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