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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철의 법률톡톡] 강제추행 판단 기준의 한계와 기습추행 법리의 경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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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철의 법률톡톡] 강제추행 판단 기준의 한계와 기습추행 법리의 경계점

법무법인 이엘 대표변호사이미지 확대보기
법무법인 이엘 대표변호사
남녀 간의 만남은 호감과 긴장이 공존하는 복잡한 감정의 흐름 속에서 이루어지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신체 접촉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이 형사사건으로 비화되는 일이 적지 않으며, 그중 가장 흔한 유형이 강제추행 사건이다.

강제추행은 단순히 신체 접촉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성립되는 범죄는 아니다. 법은 ‘폭행 또는 협박’을 수단으로 한 신체접촉일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과거 판례 역시 피해자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유형력이 요구된다고 보아 왔다.

그러나 이후 ‘기습추행’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법리는 점차 느슨해졌고, 강제추행의 범위 또한 확대되는 추세였다. 즉, 판례는 추행행위와 동시에 이루어진 갑작스러운 신체 접촉도 유형력 행사로 간주하고, 반드시 상대방의 의사를 완전히 억압할 정도의 강제력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이로 인해 기존의 ‘폭행·협박 선행형’뿐 아니라 ‘기습추행형’이라는 별개의 틀이 만들어졌고, 형사책임의 기준은 더욱 모호해졌다. 이러한 법리의 확장은 강제추행을 판단하는 기준을 완화시키고, 실무에서는 비교적 약한 수준의 유형력에도 강제추행이 성립되는 방향으로 운용하게 된다.
이론과 현실의 간극으로 인해 2018도13877 전원합의체 판결은 폭행·협박 개념을 재정비하며, 폭행 협박의 강도를 좀 더 낮추어 불법적인 유형력의 행사로 족하다고 보았다. 즉 대상판결은 강제추행죄의 폭행‧협박 개념을 명확히 하여, 실무상 운용과 법리 사이의 불일치를 정리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강제추행죄의 본질은 성적 자기결정권의 폭력적 침해에 있다.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신체 접촉이 모두 상대방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라고 볼 수도 없고,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행위가 언제나 성욕의 흥분, 자극 또는 만족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로서 건전한 상식 있는 일반인이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볼 만한 징표를 가지는 것도 아니다.

대법원 역시 다음과 같은 기준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기습추행형 강제추행은 모든 비동의 접촉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폭행이나 협박이라는 수단을 기습성으로 대체할 수 있는 정도로 피해자의 반발을 우회하며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경우에 한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는 입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비동의추행죄’를 사실상 창설하는 결과가 된다는 점을 경고한다.

즉, 접촉 이전에 양측 간에 호감이나 긴장감이 존재했고, 단계적으로 접촉이 이루어졌으며, 상대방이 즉각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 않았던 경우라면 이는 형법상 강제추행을 구성하지 않는다.
형사사건은 사람의 삶과 명예, 미래를 좌우하는 중대한 문제이므로 단순한 해석의 편의나 분위기에 기대어 범죄 성립을 단정해서는 안 된다.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며, 법이 규정하지 않은 범죄를 법관이 임의로 만들어낼 권한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강제추행 혐의가 제기된 사건에서는 당시의 분위기, 관계 형성의 경과, 접촉의 방식, 거부 의사의 유무 등을 세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명시적으로 거부하지 않았고, 물리적 강제력도 없었으며, 상호 간에 성적 긴장이나 호의가 오가던 상황이었다면, 단지 접촉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범죄가 성립될 수는 없다.

추행 사건에 있어 강제성이나 기습성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음에도 접촉만으로 쉽게 유죄를 단정하는 것은 경계해야 하며, 형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판단이야말로 정의를 실현하는 출발점이라 볼 수 있다.


정준범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jb@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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