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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에너지 톺아보기] 에너지전환의 길…생존과 연대, 그 균형점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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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에너지 톺아보기] 에너지전환의 길…생존과 연대, 그 균형점을 찾아서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국제정치학 박사)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국제정치학 박사)이미지 확대보기
이한우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장(국제정치학 박사)


우리는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제세이화(濟世理化)를 건국이념으로 삼아온 유구한 전통과 저력을 가진 민족이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 세상을 조화롭게 다스린다는 이 가치는 위기 때마다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며 이끌어온 나침반이었다.

이 숭고한 진리는 기후 위기와 에너지 전환이라는, 문명의 변곡점에 진입한 지금도 잊거나 버려서는 안 될 우리 민족의 보배이다. 그렇게 보면, 에너지 전환은 단순히 기술의 문제라 치부할 수 없으며 환경만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가 어떤 가치와 질서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지극히 문명사적인 질문이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국제 질서는 우리의 이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기후위기에 공급망 불안과 지정학적 갈등이 겹치면서 각국은 협력보다 생존을 먼저 선택하고 있다.
에너지는 국가안보 자산이 됐고, 전력과 연료, 핵심 광물은 국가전략의 중심에 자리 잡고 앉았다. 에너지 전환이 인류 공동의 과제라는 건 분명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각자도생의 논리가 지배한다. 각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다양한 형태의 무역장벽 설치도 서슴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은 더욱 복잡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에너지 다소비형 제조업 국가다. 전력, 정유, 석유화학, 철강 같은 기반 산업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을 이룬다.

이들 산업은 우리 산업 생태계 전체를 떠받치는 기반이다. 따라서 에너지 전환의 속도와 방식에서 작은 오차만 생겨도 산업 전체로 충격이 번지는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에너지 전환은 도덕적 행동을 실천하겠다고 선언하거나 하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국가 생존이 걸린 전략의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지금은 우리가 먼저 살아남아야 할 때다. 자연을 보전하고 취약한 이를 돕는 일은 당연히 공동체의 도리이고, 우리가 소중히 지켜야 할 가치다. 그러나 그 도리가 우리의 경쟁력을 스스로 희생하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과 규제를 먼저 떠안고, 다른 나라보다 더 빠르고 더 깊은 희생을 강요받는 식의 전환은 지속될 수 없다. 국제 사회에서 모범을 보이겠다는 명분만으로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훼손하는 선택은 결코 지혜롭지 않다. 내가 살아야 남을 돕지 않겠는가?
우리의 에너지 전환은 속도의 경쟁이 아니다. 구조의 경쟁이어야 한다. 산업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지 않는 전환은 결국 일자리와 수출, 기술 기반을 동시에 무너뜨린다. 에너지 전환이 산업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 전환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역사는 현실을 무시한 이상주의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수없이 보여주지 않았던가.

지금 내가 말하는 건 전환을 멈추자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방식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기업이 실제로 감당할 수 있는 비용 범위 안에서, 기술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함께 이뤄가는 전환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에너지 전환이 부담이 아니라 새로운 경쟁력의 원천이 된다. 전환의 비용과 책임을 현실에 맞게 배분하고, 산업의 체력을 보존하는 제도와 금융, 기술 전략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정부는 기업이 전환 과정에서 겪는 불확실성을 줄이고, 투자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실용적 전환의 핵심이다.

우리의 생존이 먼저 확보돼야 타인과의 연대도 가능하다. 우리의 산업이 버텨야 약자를 도울 수 있고, 우리 나라의 체력이 남아 있어야 인류 공영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은 자기 희생을 앞세운 도덕 경쟁이 아니라, 민족의 가치와 국가의 전략을 함께 세우는 선택이어야 한다.

홍익인간과 제세이화의 정신은 바로 이 지점에서 오늘의 의미를 되찾는다. 우리의 전통적 가치는 무조건적 희생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하는 지혜를 담고 있다. 이는 곧 강한 자가 되어 약한 자를 돕는, 진정한 의미의 상생이다.에너지 전환은 이상이 아니라 전략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길은 국가와 산업을 지키면서 미래로 나아가는, 대한민국만의 에너지 전환이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에너지 전환의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