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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AI 반도체 기업열전 (45) Arm … 팹리스 "가치사슬 최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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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AI 반도체 기업열전 (45) Arm … 팹리스 "가치사슬 최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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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김대호 진단] AI 반도체 기업열전 (45) Arm … 팹리스 황제

인류 역사상 지능의 기계적 구현을 최초로 사유한 인물은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이다. 그가 1936년 제시한 '추상적 계산 기계(튜링 머신)' 개념은 오늘날 모든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와 메모리 아키텍처의 이론적 모태가 되었다. 튜링의 추상적 청사진 위에 제프리 힌턴(Geoffrey Hinton)의 심층 신경망(Deep Learning) 이론이 결합하고, 이를 젠슨 황의 엔비디아(NVIDIA)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대규모 병렬 연산으로 물리적 현실에 구현해 내면서 인류는 비로소 생성형 AI와 초지능의 문턱에 당도했다.

오늘날 엔비디아가 구가하는 천문학적 AI 제국의 배후를 면밀히 추적해 들어가면, 물리적 칩을 단 하나도 제조하지 않으면서도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의 숨통을 쥐고 있는 기묘한 영국계 기업 하나를 마주하게 된다. 바로 Arm(Advanced RISC Machines)이다. 스마트폰의 99%를 움직이는 두뇌이자, 엔비디아 최신 AI 슈퍼칩의 핵심 프로세서로 군림하고 있는 Arm은 인공지능시대 생태계의 최정점에 자리하고있다.

반도체 산업 생태계는 통상 제조 시설(Fab)을 보유하지 않고 칩의 설계에 집중하는 팹리스(Fabless)와, 이 설계도를 받아 실물 웨이퍼를 위탁 생산하는 파운드리(Foundry)로 양분된다. 엔비디아, 퀄컴, AMD, 애플 등이 대표적인 팹리스이며 TSMC와 삼성전자가 파운드리의 대표 주자다. Arm은 일반적인 팹리스 범주로 설명되지 않는다. Arm은 완성된 반도체 칩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지 않는다. Arm이 파는 것은 물리적 실물이 아닌 '반도체를 설계하기 위한 원천 지적재산(IP)'과 '컴퓨터의 기본 명령어 집합 구조(ISA, Instruction Set Architecture)' 그 자체다. 즉, 팹리스 기업들이 칩을 그릴 수 있도록 백지 위에 기본 뼈대와 규칙(청사진)을 제공하는 '팹리스 위의 팹리스', 반도체 지식재산의 절대 지주인 셈이다.
그 기원은 1980년대 영국 케임브리지의 소규모 컴퓨터 제조업체 에이콘 컴퓨터(Acorn Computers)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컴퓨터 과학자 소피 윌슨(Sophie Wilson)과 스티브 퍼버(Steve Furber)는 복잡한 명령어를 줄이고 실행 속도를 끌어올리는 RISC(축소 명령어 집합 컴퓨터) 기술에 주목했다.1990년, 휴대용 컴퓨터(뉴턴 메시지패드)를 위한 초저전력 칩이 절실했던 애플(Apple)과 VLSI 테크놀로지, 에이콘이 합작하여 독립 법인 'Advanced RISC Machines(ARM)'을 공식 출범시켰다.

당시 PC 시장은 인텔(Intel)의 x86 아키텍처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인텔의 CISC(복잡 명령어 집합) 방식은 막강한 연산력을 자랑했지만 막대한 전력을 소모하고 발열이 심했다. 인텔과의 정면 승부에서 승산이 없음을 직시한 Arm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연산의 단순화와 극단적인 저전력 효율성'을 최우선 가치로 내걸고, 스스로 공장을 짓는 대신 아키텍처 라이선스를 개방해 생태계를 구축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택했다. 이 전략은 2007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세상에 내놓으며 폭발적인 결실을 맺었다. 배터리 용량이 제한된 모바일 환경에서 전력을 극도로 아끼면서도 준수한 연산력을 뽑아내는 Arm 아키텍처는 유일무이한 대안이었다. 애플의 A/M 시리즈와 퀄컴의 스냅드래곤 그리고 삼성전자의 엑시노스 등 전 세계 모바일 AP 시장의 90% 이상이 Arm의 품 안에서 탄생하게 된 결정적 배경이다.

스마트폰 시대를 평정한 Arm은 이제 인공지능 혁명의 중심부인 데이터센터와 고성능 컴퓨팅(HPC) 영역으로 패권의 축을 이동시키고 있다. AI 시대에 Arm이 대체 불가능한 핵심 자산으로 떠오른 이유는 세 가지 축에서 기인한다.'전력의 벽(Power Wall)'을 돌파할 유일한 대안이바로 ARM이다. 대규모 언어모델(LLM)과 초거대 신경망 연산이 직면한 최대의 물리적 한계는 '전력 소모'와 '발열 제어'다. 수만 대의 GPU가 뿜어내는 열기를 식히고 막대한 전력을 조달하는 문제는 데이터센터의 사활을 가르는 변수가 되었다.

과거 서버 시장을 90% 이상 독점하던 인텔의 x86 CPU는 고출력 고발열 구조 탓에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부담을 가중시켰다. 반면 저전력 고효율에 특화된 Arm의 네오버스(Neoverse) 아키텍처는 동일한 전력 대비 훨씬 높은 연산 집약도를 제공함으로써, 데이터센터의 TCO(총소유비용)를 획기적으로 낮추는 핵심 해법으로 부상했다. AI 가속기와의 유기적 결합이 ARM의 가장 큰 장점이다. 엔비디아 슈퍼칩의 '두뇌'AI 연산의 주역은 GPU이지만, GPU 혼자서는 데이터센터를 가동할 수 없다. 방대한 데이터를 전처리하고 메모리와 스토리지 사이의 트래픽을 지휘하는 고성능 호스트 CPU가 반드시 병렬로 배치되어야 한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플랫폼인 GH200(Grace Hopper) 및 GB200(Grace Blackwell) 슈퍼칩에 장착된 '그레이스 CPU'가 바로 Arm의 Neoverse V2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설계되었다. 엔비디아 초고속 인터커넥트 기술(NVLink-C2C)을 통해 GPU와 1초당 수 테라바이트의 대역폭으로 통신하며 데이터 병목을 해소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Arm 프로세서가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존(AWS의 Graviton), 구글(Axion), 마이크로소프트(Cobalt) 등 글로벌 하이퍼스케일러들은 엔비디아 독점에 따른 천문학적 비용 부담을 줄이고 자사 클라우드에 최적화된 맞춤형 칩을 개발하고 있다.이들이 인텔 칩을 쓰지 않고 자체 칩을 설계할 수 있는 밑바탕에는 예외 없이 Arm의 아키텍처가 자리한다. Arm이 정교한 CPU 코어 블록과 명령어 라이브러리를 제공하기에, 빅테크들은 기초 설계에 수조 원을 낭비하지 않고 신속하게 AI 전용 커스텀 실리콘을 양산할 수 있다.
AI의 무게중심은 거대 클라우드 서버에서 스마트폰, 노트북, 자율주행차, 휴머노이드 로봇 등 단말기 자체에서 추론을 수행하는 '온디바이스 AI'로 확장되고 있다. 단말기 내부에서 NPU(신경망처리장치)와 CPU를 결합해 초경량 언어모델을 구동하는 영역은 태생부터 배터리 절감에 특화된 Arm 생태계의 절대 텃밭이다.애플 인텔리전스를 구동하는 M4·A18 칩, 퀄컴의 스냅드래곤 X 엘리트, 삼성전자의 엑시노스 모두 Arm의 v9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기기 내 실시간 AI 처리를 구현한다.

2016년 7월, 소프트뱅크의 손정의(孫正義·손 마사요시) 회장은 영국 파운드화 폭락 직후 234억 파운드(당시 약 320억 달러, 약 36조 원)라는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부어 Arm을 전격 인수했다. 당시 월가와 산업계는 사물인터넷(IoT) 테마에 과도한 프리미엄을 지불했다며 무모한 도박이라 비판했다. 그러나 손 회장은 흔들리지 않고 *"바둑으로 치면 50수 앞을 내다본 착점이며, 내 인생에서 가장 흥분되는 투자"*라고 공언했다.2023년 나스닥 상장을 거치며 Arm의 기업가치는 인수 당시의 몇 배를 상회하는 1,500억 달러 안팎으로 치솟았다. 그러나 손정의의 종착지는 단순한 차익 실현이 아니다. 그의 시선은 인간 지능의 총합을 1만 배 이상 뛰어넘는 초인공지능(ASI, Artificial Superintelligence) 시대의 절대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닿아 있다.

손정의 회장의 구상은 단순한 반도체 설계를 넘어선 'AI 인프라 전 영역의 수직 계열화(Full-Stack AI Ecosystem)'로 요약된다.프로젝트 이자나기 (Project Izanagi): 일본 창세 신화 속 신의 이름을 딴 이 프로젝트는 소프트뱅크가 300억 달러, 중동 국부펀드 등이 700억 달러를 조달해 총 1,000억 달러(약 135조~140조 원) 규모로 추진하는 초대형 AI 반도체 벤처 계획이다. Arm의 설계 IP를 바탕으로 엔비디아의 독점에 필적할 차세대 AI 가속기를 자체 기획·생산하겠다는 구상이다.

손 회장은 알고리즘 경쟁 단계를 지나 '물리적 AI(Physical AI)'의 병목인 전력과 데이터센터 인프라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프랑스 원전 기반의 유럽 데이터센터 구축, 오픈AI와의 대규모 '스타게이트' 인프라 협력, 스위스 ABB 로보틱스 인수 추진 등은 모두 Arm이 설계한 초저전력 반도체를 심장으로 삼아 가동될 하드웨어 인프라망이다. 손정의는 *"인간이 금붕어의 뇌를 보듯, AI가 인류를 바라보는 시대가 10년 안에 도래할 것"*이라며, 지능의 원천을 제공하는 Arm을 레버리지 삼아 인류 문명의 운영체제를 선점하겠다는 담대한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Arm의 패권이 영원무구한 철옹성은 아니다. 반도체 패권의 역사는 독점에 대한 저항과 기술 분화의 연속이었다.가장 강력한 도전자는 오픈소스 아키텍처인 RISC-V(리스크 파이브)다. 2010년 UC 버클리에서 태동한 RISC-V는 로열티와 라이선스 비용이 없는 완전 개방형 ISA다.Arm이 최근 나스닥 상장 이후 수익성 극대화를 위해 라이선스 정책을 보수화하고 칩 완성품 단가를 기준으로 로열티 부과 방식을 개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퀄컴, 삼성전자, 구글, NXP 등 주요 고객사들은 RISC-V 연합(Quintauris)을 결성하며 '탈(脫) Arm' 연대를 가속화하고 있다.삼성전자가 미국 실리콘밸리에 어드밴스드프로세서랩(APL)과 AGI컴퓨팅랩을 세우고 차세대 AI 추론 칩 '마하' 시리즈 및 RISC-V 기반 독자 칩 개발에 속도를 내는 것 역시, 특정 외산 IP에 종속되지 않고 AI 반도체 주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포석이다.

19세기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시절, 진정한 승자는 금을 캐던 광부가 아니라 광부들에게 곡괭이와 청바지를 팔던 상인들이었다.AI 시대의 엔비디아가 가장 성능 좋은 '황금 곡괭이(GPU)'를 만드는 기업이라면, Arm은 그 곡괭이를 만들 수 있는 '강철의 제련법과 표준 규격(ISA IP)'을 독점하고 있는 지주 회사다.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이 아무리 비약적으로 발전하더라도, 그것이 물리적 실리콘 칩 위에서 전자를 이동시키며 구동되는 한 반도체의 전력 효율과 아키텍처는 인공지능 문명의 기본 인프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