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반도체와 인공지능(AI) 관련 주식 시장 판도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그동안 세계적인 AI붐에 편승해 관련 주식들이 성과를 올리며 상승세를 탔지만, 시장 상황이 급변하면서 형세가 바뀔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5일 도쿄일렉트론의 주가가 연초 대비 17% 하락하며 NYSE 팩트셋 아시아 반도체 지수 내 하락률 2위에 그쳤다고 보도했다.
도쿄일렉트론은 ‘성막(成膜)'이나 감광제 도포·현상을 수행하는 '리소그래피’, 박막 형상 가공에 필요한 ‘에칭’, 불순물 제거의 ‘세정’ 등 반도체 전공정 제조 장비에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우리나라 삼성전자와 함께 미국 인텔, 대만 TSMC 등 대형 반도체 제조사에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세계적 AI붐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주춤하면서 상대적으로 AI 성장의 혜택을 받기 어려운 기업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까지 실적 상승의 핵심 원동력이었던 중국 시장도 경제 성장률 하락과 미국의 제재로 인해 앞날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대조적으로 후공정 반도체 시험 장비에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AI용 시험 장비 분야에서 호조를 보이는 어드밴테스트는 22% 상승했다.
리소나홀딩스 다케이 다이키 전략가는 “도쿄일렉트론은 반도체 제조 장비 대기업으로 유명하지만, 고객사에 현재 경영난을 겪고 있는 인텔과 삼성도 포함된다”며 “최첨단 AI용 반도체에 직접 관여하는 기업에 비해 도쿄일렉트론의 실적은 아마 뒤처질 것이라고 본다”라고 분석했다.
블룸버그의 공급망 분석에 따르면, 도쿄일렉트론의 매출 비중은 10% 이상이 삼성에서, 8% 이상이 인텔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중국 시장 점유율은 4~6월 분기 말 기준 약 40%다. 그러나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이 4~6월 분기 94% 감소했고, 인텔도 미국 정부의 출자 계획 공개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기술력 회복보다 비용 절감을 우선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도쿄일렉트론이 이에 대한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도쿄일렉트론은 7월 말 당기(2026년 3월) 영업이익 계획을 기존 대비 20% 이상 하향 조정했다. 일부 첨단 로직 투자 회복과 중국을 포함한 성숙 분야에서의 투자 움직임이 예상보다 낮기 때문이다.
중국 반도체 제조사들은 미국의 수출 규제 강화 우려로 제조 설비를 우선 구매했지만 이 구매 움직임은 점차 둔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정학적 리스크와 평판 리스크도 도쿄일렉트론의 실적과 주가 전망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미국은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용 제조장비 수출 규제 완화를 철회했다.
여기에 더해 중국 정부는 독자 기술 확립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해외 의존도를 낮출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또 최근 도쿄일렉트론 전직 사원을 포함한 3명이 TSMC 기밀 정보를 유출한 혐의로 대만 검찰 당국에 기소된 사건으로 인해 중국의 이런 경계심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다만 도쿄일렉트론의 주요 납품처 중 TSMC가 있다는 것은 그나마 호재라고 보이고 있다. 중국 시장에서 향후 정부의 경기 부양책으로 경제가 회복될 가능성에 대한 낙관적인 시각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블루박스 자산운용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윌리엄 드 게일은 “도쿄일렉트론은 AI 단독 종목이 아니라 업계 전체 트렌드를 타는 종목”이라며 업계 판도 재편이 오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닛세이 자산운용 야마모토 마이토 수석 애널리스트는 “일본 반도체 업계의 인프라를 지탱하고 있다는 점이 자국 반도체 기업들의 강점”이라며 “당분간은 AI 관련 주식들이 주목받고 있으며, 어드반테스트와 반도체 패키지 사업을 하고 있는 이비덴이 핵심 종목”이라고 짚었다.
이용수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iscrait@g-enews.com